입력 : 2015.02.27 16:13
북경의 혼례문화

필자는 서울에서 한국인의 혼례식에 여러 번 참가하였다. 적지 않은 하객은 부조 돈만 낸 후 뷔페만 먹고 가 버린다. 어떤 사람은 부조만 내고 밥도 안 먹고 가버린다. 부조를 안 내면 뷔페에 못 들어간다. 마지못해 아까운 시간을 할애하지만 모두 체면 하나 때문이다. “그럴 바엔 북경의 혼례문화를 배우는 것이 어떠냐?”며 북경의 혼례문화를 소개했더니 “그거 배울 만 하네” 하며 동감을 표시하는 사람도 꽤나 된다. 아래에 북경의 혼례문화를 간단히 소개한다.
한국의 걀혼식/조선일보 DB
한국의 걀혼식/조선일보 DB
대부분 북경인은 다른 사람이 알게 혼례를 치르지 않는다. 가끔 동료 젊은이가 사무실에 들어와 “시탕(喜糖·신혼사탕)”, “시옌(喜煙·신혼담배)” 하며 알사탕 한 줌, 담배 한 갑 주고 나간다. “언제 결혼했지?”라고 물으면 “서너 달 전에 여행으로”라 답한다. “축하한다.” 이것이 결혼 홍보의 전부다. 밥 한 술도 안 먹고, 술 한 방울도 안 마시며 부조 돈은 더더욱 안 쓴다.

20여년 전 어느 날 아침, 필자와 마주 앉아 5∼6년 같이 근무한 여종업원 한 분이 “시탕”, “시옌” 하는 것이었다. “신방은 어디 잡았지? 신방 구경 가도 돼?”하니 “환영!”하여 우리 부문의 종업원 7명은 1인당 1위안씩 모아 보온병 하나 사들고 찾아가 차 한 잔씩 마셨다. 20여년 후 같은 부문의 또 한 분이 “시탕”, “시옌”하여 1인당 50위안씩 모아 그릇 한 세트를 사주었다. 이 51원(약 8000원)이 근 30년 간 필자가 직장 동료를 위해 쓴 부조의 전부다. 필자가 조선족이며 책임자이니 말이지 다른 사람들은 이 51위안도 안 쓴다.

필자가 중국 조선족 사회에서 근 30년 살았다면 어떠했을까? 월평균 대사에 두 번만 참가해도 총 700번에 고농도 술 350근(175킬로)은 마셨고 부조 돈 14만 위안(약 2500만원)은 냈으며 2100시간은 소모했다. 아마 벌써 간경화에 걸려 ‘꼴까닥’했을지도 모른다. 중국 조선족의 결혼잔치는 보통 대형식당에서 치르는데 참석자가 200~300명이고 16가지 이상의 요리에 취하도록 먹고 마신다. 남는 절반 이상의 음식은 다 양돈장에서 실어간다. 조선족사회에서 해마다 돼지 아가리에 밀어 넣는 음식(돈)이 수천만 위안(수십억원)은 됨직하다.

연회가 끝나면 또 무리를 지어 노래방에 가서 맥주 마시며 밤늦게 까지 논다. 아마 한국인도 옛날에는 오늘날 조선족 사회의 결혼잔치와 비슷하였으며 수십년의 변천을 거쳐 지금까지 발전했을 것이다. 총체적으로 말해 혼례는 사회가 발전할수록 점점 간소화하는 방향으로 변해간다. 구미 선진국은 혼례를 아주 간단히 치른다고 한다. 그러면 지금 한국의 혼례문화를 한 걸음 더 발전시켜 현재 북경의 혼례문화처럼 할 수 없을까?
결혼식 문화를 간소화할 필요성을 인정해도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 조선일보 DB
결혼식 문화를 간소화할 필요성을 인정해도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 조선일보 DB
아마 다수 한국인들은 이런 풍속을 좀 더 간소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체면 때문에 고치지 못함은 관념 때문이다. 역시 이에 관한 북경인의 관념을 살펴보자.

첫째, 북경인은 보통 대사를 개인과 집안만의 일로 본다. 필자의 경우 생일날 저녁 평소보다 볶음반찬 4접시 더 해놓고 집 식구끼리 모여 앉아 “생일 축하합니다!”를 외치며 밥 먹는 것으로 끝낸다. 가정 식구끼리 외식하는 수도 있다. 다른 사람 수십명, 백여명을 모아놓고 취하도록 마시며 생일 쇤 적이 없다. 절대 대부분의 북경인은 다 이러하다. 혼례도 마찬가지다. 위에 소개한 것처럼 “시탕, 시옌”이면 그만이다. 고작해야 두 사돈 가정에다 신랑·신부의 불알친구 각각 10여명이 괜찮은 식당에서 3상정도 주문하여 밥 한 끼 먹는 것으로 끝낸다. 이런 경우 친구들은 부조를 2000~5000위안(약 30만~80만원·대략 한 달 봉급)쯤 한다. 한 사람에게 이런 일이 몇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이다.

둘째, 북경인은 ‘못난 놈(사실은 못난 놈이 아니다)’이 혼례를 크게 치른다고 말한다. 이런 사람은 보통 가정이나 본인이 불우하며 ‘평생에 한번밖에 없는 혼례나 성대하게 해 울분을 풀어보자’라는 심리가 강력하게 작용한다. 미국제 붉은색 캐딜락 승용차 한 대를 앞세우고, 독일제 아우디 승용차 8대가 뒤따르며, 북 치고 날라리 불고, 폭죽 터뜨리며, 수백명을 식당에 끌어들여 먹고 마신다. 따라서 부조 돈도 수백만 위안(1000만원 정도) 챙긴다. 그러나 이런 사람이 많지 않다. 일반 문화인, 교원, 공무원, 괜찮은 직장인 등은 절대 이 짓을 안 한다. 누가 결혼 잔치를 크게 했다면 그를 ‘못난 놈이겠구나’ 추측하면 거의 맞아떨어진다. 극히 개별적인 권력가가 크게 하며 부조 돈을 엄청나게 챙기는 경우도 있는데 여론과 저주의 대상이 되기 일쑤다.

결혼 잔치를 크게 하여 자기를 과시하는 시대는 끝났다. 이런 행위를 낙으로 삼는 관념도 거의 사라졌다. 동료의 잔치에 참여했으며 5만~10만원의 부조 돈을 냈다는 것으로 서로간의 끈끈한 관계가 확인된다고 생각하는 자가 몇이나 될까? 오늘날 한국의 사회는 발전하여 이미 이 수준에 이르렀다. 한 발자국만 더 나아가면 북경의 혼례문화처럼 될 것이다. 필자는 이렇게 변하는 것을 좋은 변화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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