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1.26 23:06
1966년 12월 1일 검사에 임명되어 서울지방검찰청에서 근무를 시작한 지 몇 개월 안 된 시점에 나는 묘령의 여성으로부터 연애편지 한 통을 받았다.

벌써 오십년이 훨씬 넘어서 편지 내용은 기억할 수 없으나 “오빠 며칠 전 광화문 지하도를 손잡고 걸으면서 ‘이북에서 피난와서 외롭게 살았는데 당신을 만나고부터 인생이 즐거워졌다’고 하시던 말씀 아직도 생생하게 들리고 있습니다”라는 구절은 지금도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아내와 결혼한 이후 아내 이외의 어떤 여자와도 만난 사실도, 더욱이 최근에 광화문 지하도를 지나간 사실이 없기 때문에 즉각 ‘누가 내 이름을 팔아 가짜 남 검사 행세를 했구나’하고 직감했다.

요즘과는 달리 당시는 사법 시험에 합격하고 판ㆍ검사가 되면 대부분의 사람이 부러워하고 특히 결혼 적령기에 든 여성들은 판ㆍ검사를 신랑감으로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노리는 가짜 검사나 판사들이 많았다. 사기꾼들은 판ㆍ검사가 임명될 때 신문에 인사명단이 발표되는 것을 이용하여 실제 판ㆍ검사 행세를 하면서 여성들을 꾀어 돈을 뜯어내고 결혼하자고 유혹하여 몸을 더럽히는 일이 종종 일어나고 있을 때였다.

나는 편지를 받은 순간, “이 순진한 여성이 가짜 남 검사에게 걸려들었구나!” 직감하고 피해가 커지기 전에 이 여성을 만나서 진실을 밝혀 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즉시 편지 보낸 여성의 주소를 관할하는 경찰 파출소(현재는 지구대로 명칭 변경)에 전화하여 그 여성의 주소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빨리 그 여자 집에 가서 그 여자에게 “남 검사”가 보자고 한다고 말하고 검사실로 데려오라고 지시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행히 그 여성이 집에 있었는지 두 시간도 안 되어 경찰관이 그 여성을 데리고 검사실에 들어왔다.
일러스트=김성규 기자
일러스트=김성규 기자
그 여자는 검사실에 들어와서 자기가 만난 남 검사를 찾느라고 방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다가 내 책상 위에 놓인 “검사 남문우”라는 명패를 보고 내 얼굴을 보더니 금방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였다. 나는 그 여자를 내 앞 의자에 앉게 하고 “내가 남문우 검사인데 나를 만난 사실 있느냐”고 물으니 겁먹은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없다”고 힘없이 말하고 울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나는 “아가씨에게 남 검사라고 말한 사람은 나쁜 사람이기 때문에 나는 그 나쁜 사람으로부터 아가씨를 보호해 주려고 하니 협조해 달라”고 말하고, 그동안 “남 검사라고 사칭한 사람한테 피해당한 것이 있으면 숨기지 말고 말해 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 여자는 대답을 못하고 울기만 하기에 “그자에게 돈도 빼앗기고 또 몸도 준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모깃소리만 한 목소리로 “그렇다”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나는 “가짜 검사가 순진한 여성을 망쳐 놓았구나!” 실망을 하면서 “이왕에 당한 것은 할 수 없지만, 앞으로 더는 피해를 당하지 말아야 하고, 또 다른 선량한 여성이 피해를 보는 것을 막으려면 그 사기꾼을 빨리 잡아야 하니 협조해 달라”고 부탁했다. “앞으로 그 사람한테 연락이 오면 눈치 채지 않게 만날 시간과 장소를 약속하고 그를 만나기 전에 꼭 검사실로 전화하고 만나러 가야 우리가 가서 대기하고 있다가 그 사기꾼을 잡을 수 있다”고 설득과 협조를 부탁했다. 하지만 그여자는 그 이후 어찌된 셈인지 협조를 해 주지 않아서 끝내 가짜 남 검사를 잡지 못하고 말았다.

그 일이 있은 지 한 달 후에 어떤 여성이 전화하여 만나자고 하기에 “어떻게 나를 아느냐”고 물으니 그 여성은 “어제도 만났는데 왜 딴소리하느냐”고 말했다. 그 순간 “이 여자도 가짜 남 검사한테 당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여자를 만나 범인을 잡는데 협조하라고 부탁할 생각으로 “아! 내가 잠깐 딴 생각하느라고 몰라보아 미안하다”고 말한 뒤 “지금 나가서 만날 시간이 없고 꼭 할 이야기가 있으니 검사실로 직접 찾아오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 이후 아무리 기다려도 그 여자는 검사실에 오지도 않고 또 전화도 없어서 또다시 가짜 검사를 잡지는 못했다. 다만 그 여성이 판단을 잘해서 아무쪼록 큰 피해를 보지 않았기만을 빌었다.

남자들도 비슷하겠지만 여성들은 겉모습만 보고 쉽게 상대방을 믿어 버리는 습성이 강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나는 검사다”라고 말하면 냉철하게 판단하지 못하고 그 말을 그대로 믿는 경향이 있다. ‘가짜’에 속아 넘어가 신세를 망치는 것이 아닌가 안타깝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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