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1.21 09:24 | 수정 : 2015.01.26 15:33
나는 1966년 12월 1일 검사에 임명되어 서울지방검찰청에서 첫발을 내딛게 되었는데, 처음부터 어려운 사건을 맡아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검사가 된 지 일 년도 안된 시기에 현업 원로 변호사에 대한 사기 고소장이 초임검사인 나에게 배당된 것이다. 고소 내용인즉슨 민사사건을 수임한 모 원로 변호사(당시 예순이 넘은 것으로 기억됨)가 맡은 사건을 승소시키려면 담당 판사에게 부탁해야 한다면서 청탁 명목으로 거금을 편취하고 사건은 패소되었다는 요지였다.

나는 법조인에 대한 고소장이기 때문에 경찰에 수사 지휘하지 않고 서울지검 수사과에 지휘하여 송치받아 검토해보니 수사기록 분량은 많았으나 마음에 들지 아니하여 피의자를 불러 직접 조사하면서 구술하여 입회 계장으로 하여금 피의자 신문조서를 작성케 하고 증거 조사한 결과 혐의사실이 인정되어 구공판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그런데 신병처리 문제로 한참 고심 끝에 피의자가 변호사이고, 예순이 넘은 고령자임을 감안하여 불구속 구공판으로 결재를 올렸다.

그런데 조금 후 검사장이 불러 올라갔더니, “남 검사, 사안도 가볍지 않고 요즘 변호사들이 사건 수임 과정에서 부정이 많다는 여론이 있는데 그 변호사한테는 안됐지만 다른 변호사들에게 경고하는 의미에서 일벌백계로 구속 기소하는 것이 어떠냐?”면서 기록을 다시 주었다.

조금 후에 대검 차장 검사실에서 수사기록을 가지고 오라고 하여 다시 검사장에게 가서 “대검에서 기록을 보내라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라고 하니 검사장은 “남 검사! 유죄 판결받을 자신 있나”라고 묻기에 “수사만큼은 자신이 있게 하였고, 혐의도 충분하다”고 했더니 대검에 수사기록을 보내도 좋다고 하여 수사기록을 대검찰청 차장에게 주고 내려왔다.
일러스트=송준영 기자
일러스트=송준영 기자
이틀 후 대검찰청 차장실에서 불러 올라갔더니 대검 차장실에 차장검사뿐만 아니라 전 대검 검사가 모두 모여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순간 기죽지 말고 당당하자고 스스로 최면을 걸고 심호흡을 크게 하고 앞에 섰더니 수사기록을 검토한 것으로 작되는 서주연 대검검사가 수사기록 군데군데 색종이로 된 부전지를 붙여 놓은 부분을 펴면서 “이 부분은 잘못된 것 아닌가?”하고 지적하기에 훑어보니 지적된 부분은 모두 수사과에서 수사관이 조사한 조서이고, 내가 직접 수사한 조서에는 한 군데도 지적된 것이 없어서 “예, 지금 지적하신 부분은 수사과에서 수사관이 조사한 부분인데 미비한 점이 있어 제가 직접 조사를 하였는데 혹시 제가 조사한 조서에 문제가 있습니까?”하고 반문하였더니, 서 검사는 “남 검사가 조사한 조서내용은 잘 되어 있어 지적할 곳이 없었다”고 말씀하여 나는 안심하였다.

대검 차장이 “남 검사, 검사된 지 얼마 되었어? 지금 감찰부에 소속되어 있나?”라고 물어 “저는 검사된 지 일 년도 안 되었고, 현재 “경제부”에 소속되어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니 “왜 경제부 검사가 변호사 사건을 맡았어”하기에 “저도 일 년도 안된 초임 검사인 저에게 왜 이처럼 중요한 사건을 배당했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했더니“인제 그만 가봐”하기에 기록을 가지고 지방검찰청에 내려와, 검사장한테 대검에 갔다 온 내용을 보고했다. 그러자 “기록을 놔두고 가라”고 하기에 기록을 놔두고 내려왔다.

후에 알고 보니 검사장께서는 초임 검사가 혹시 잘못 조사한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됐는지 당시 샤프하기로 이름난 서울지검 모 부장검사에게 수사기록을 검토해 보라고 지시한 것이었다. 다음 날 검사장실에서 오라고 해서 갔더니 검사장은 “수사기록을 검토해 보니 완벽하게 수사하였고, 증거도 충분하니 구속영장을 청구하라”고 지시하여 그날로 구속영장 청구서를 써서 결재를 올렸다. 그러자 차장 검사는 보안을 유지해야 한다면서 법원 접수과에 접수도 하지 않고 직접 서울지방법원 수석 부장판사실로 가서 후에 대법원장까지 지낸 수석 부장판사에게 사건 설명을 하고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집행하였다.

그 다음 날 모든 신문 사회면에 “대한민국 검찰 역사상 최초로 현업변호사 구속”이란 제목으로 톱기사와 내 이름 석 자도 신문에 올랐다. 나는 위 사건을 취급하면서 변호사에 대한 구속 여부를 놓고 고심하였고, 또한 직속상관인 검사장과 상급기관인 대검 차장의 힘겨루기 틈바구니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또한 검사 임관 초기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위 사건을 처리하고 얼마 후 내 기록을 검토한 부장검사가 서울지검차장검사로 승진하여 그 방에 업무보고차 들어갔다. 마침 다른 부장검사 두어 분과 같이 담소하다가 “내가 얼마 전에 검사장 지시로 남 검사가 수사한 기록을 검토해 봤는데 얼마나 수사를 잘했는지 내가 이제까지 본 기록 중에 제일 잘했더라”며 칭찬을 하는 것이었다.

평소 그 차장 검사는 경기고등학교와 서울 법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나오지 않으면 검사 대접을 안 해준다는 평이 있을 정도로 자존심 강하고 권위적인 분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렇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해주는 것을 보고 놀랍고 감사했다. 이 사건 이후 그 차장 검사에 대한 경원심이 없어지고 친근감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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