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1.14 11:16 | 수정 : 2015.01.14 22:10
1975년 봄 내가 홍성지청 검사로 있을 때의 이야기다.
예산경찰서에서 간통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여, 구속영장 범죄 사실을 읽어보니 남자 피의자는 스물을 갓 넘은 모 전문대학 학생이고, 여자 피의자는 남자보다 스무살이나 연상인 가정주부로서 둘이 간통하였다 하여 여자의 남편이 고소한 사건이었다.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간통 사건은 남자보다 여자가 나이가 적은 것이 통례였는데, 어떻게 나이 어린 학생이 자기 어머니와 같은 사람과 간통할 수 있을까 기이하게 생각하고 기록을 검토해 보니 남자는 그 여자 집에서 방 하나를 얻어 자취하고 있었다.

집주인 남자는 주로, 밖에 나가 자고 한 달에 집에 들어오는 날이 며칠밖에 안 돼 대부분은 여자 혼자서 살다시피 하였다. 어느 날은 학생이 저녁밥 준비를 하려고 하는데 주인 여자가 “학생! 오늘은 내가 학생 저녁밥을 해 놓을 것이니 따로 저녁밥을 짓지 말고 공부하다가 내 방에 와서 같이 저녁을 먹자”고 친절하게 말했다. 그렇잖아도 저녁밥 짓기가 싫었던 학생은 잘됐다 싶어 “고맙다”고 말하고 자기 방에 들어가 책을 읽다가 주인 여자가 저녁을 다 해 놓고 안방으로 오라고 하여 안방에 가니 주인 여자가 자기와 겸상을 차려 놓고 같이 먹자고 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모처럼 좋은 반찬으로 밥을 맛있게 먹고 “잘 먹었습니다.”라고 인사하고 나오려 했다.

그런데 주인 여자가 “학생! 나도 혼자라 심심하니 오늘 밤은 내 방에서 놀다가 내 방에서 자고 가라”고 은근히 유혹하는 바람에 처음에는 당황하여 거절하다가 끝내 여자의 유혹에 넘어가 같이 한 이불 밑에서 잠을 자게 된 것이다. 처음 시작은 어색하게 이루어졌지만 그 다음부터는 자연스러웠다. 남편이 안 들어오는 날은 같이 저녁을 먹고 함께 잠을 자는 날이 늘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밝혀진다’는 속담과 같이 그들의 불륜은 며칠 안 가서 남편에게 들키고 말았다. 결국 구속영장이 신청된 것이었다.

일러스트 김성규 기자
일러스트 김성규 기자

남자 피의자가 처음에는 어머니 같은 분이라 거절했으나 자꾸 친절히 해 주면서 유혹하는 바람에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고 자백하면서 잘못을 빌었고, 여자에 대한 신문조서를 읽어보니 “남편이 몇 년 전부터 밖에서 젊은 여자와 눈이 맞아 주로 여자 집에서 지내고 한 달이면 일주일 정도 밖에 집에 오지 않고, 집에 와서도 자기를 외면하여 몇 년간 독수공방을 하다 보니 한편 남자가 그립고 또 한편 남편에 대한 복수심으로 여러 번 망설이다가 자기 집에 사는 학생을 유혹하여 잠자리를 같이한 것이다”라고 진술했다. 나는 순간 여자 피의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남편은 몇 년 전부터 젊은 여자와 살림을 차려 간통을 하는 주제에 어찌 자기 처가 독수공방의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여 저지른 행위에 대하여 고소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단 말인가? 과연 그런 남편도 고소할 자격이 있는가? 의문을 갖게 되어 곧바로 구속영장 신청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나는 ‘여자 피의자는 자기 남편이 몇 년 전부터 딴 여자와 간통을 하여 자기도 간통을 하였다고 하니 남편을 조사하여 여자 피의자의 진술이 사실인지 여부를 수사하고 나서 재지휘를 받을 것’이라는 내용의 조건부 기각 결정을 내려 기록을 경찰에 돌려보냈다. 다음날 오전 담당 경찰관이 어제 조건부 기각한 기록을 들고 와서 하는 말이, “검사님 지시대로 남편을 조사해 보니 여자의 말대로 다른 여자와 동거하는 것은 사실인데 그 남자가 경찰에 찾아와 마누라가 자식 같은 학생 놈과 붙어먹어 고소했는데 왜 구속하지 않았느냐, 법치국가에서 왜 법대로 하지 않느냐며 항의하며 영장 기각한 검사를 만나게 해달라고 떠드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라고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남편이 검사를 만나게 해 달라면 잘 되었소, 남편을 나한테 데려오되 그의 처도 함께 데려오시오”하고 돌려보냈더니 한 시간쯤 후에 그 경찰관이 고소인과 그의 처를 데리고 왔다. 나는 먼저 남편에게 “당신이 부인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고 항의하러 왔소?”하고 물으니 “그렇다”고 했다. “그러면 한 가지 더 묻겠소, 당신이 처 말고 다른 여자와 동거하다시피 한다는 것도 사실이오?”하고 물었더니 “그것은 사실이나 남자와 여자는 다르지 않습니까?”하고 반문하는 것을 모른 체하고 그의 처에게 “당신 남편이 당신을 구속해야 한다고 하니 당신을 구속할 수밖에 없는데, 당신 남편도 다른 여자와 간통을 했으니 남편도 같이 구속해야 공평한데 당신 남편을 구속하려면 당신도 이혼 소송을 제기하고 간통으로 고소해야 하니 지금 나가는 대로 사법서사 사무실(당시는 법무사를 사법서사로 불렀음)에 가서 이혼소장을 써서 법원에 내고 간통 고소장을 써서 경찰에 제출하시오”라고 말했다.

그리고 밖에서 기다리던 담당 경찰관을 불러“남편도 간통해 부부를 모두 구속해야 공평한 처리가 될 것이니 부인을 데리고 가서 간통 고소장을 제출케 한 후, 두 사람 모두 구속영장을 신청하시오”라고 지시하고 그들을 돌려보냈다. 그랬더니 그 다음 날 경찰관이 기록을 들고 또 찾아와서 “부인이 고소장을 준비하려 하는 것을 알고 남편이 간통 고소를 취소했습니다”고 보고했다. 기록을 살펴보니 정말로 남편의 고소 취소장이 붙어 있어 ‘공소권 없음’ 의견으로 송치하라고 지휘하였다.

나는 위 결정을 함에 어느 누구의 부탁을 받은 일 없고, 또 남자 학생이 다니는 전문대학의 전신인 농업고등학교를 내가 졸업했기 때문에 후배로 생각하여 봐 준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다만 남자라고 해서 자신은 밖에 나가 나쁜 짓을 골라 하면서도 자기 아내만큼은 순결을 지키기 강요하는 그 당시의 나쁜 행태를 바로 잡기 위함이었고, 자기 자신이 간통을 범하는 사람은 자기 처를 간통죄로 고소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공정을 기하기 위해 위와 같은 조처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을 처리하고 나서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사건 처리 후 얼마 되지 않아 예산전문대학 교수로 계시는 은사와 선배 교수 두 분이 사무실로 찾아오셔서 “남 검사! 고맙네. 고향에 와서 후배를 봐 주느라고 간통 사건을 기각시켜 주어서 학교에서는 남 검사가 후배 사랑이 대단하다고 지금 칭찬이 자자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그 간통 사건의 내용을 설명하고 “부부간 공평하게 처리하다 보니 남학생은 어부지리로 덕은 봤는지 모르지만 절대로 후배 학생을 봐 주기 위하여 기각 결정을 한 것은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고 학교에 가셔서 잘 설명하여 이상한 소문이 퍼지지 않도록 하십시오”하고 신신당부하였다.

하지만 헛소문은 더욱 빨리 퍼지는 법이고 그 위력 또한 대단한 것이어서 예산에서 “남 검사는 후배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죄진 학생을 처벌하지 않았다”는 소문이 한동안 나돌아 나를 곤혹스럽게 하였다.
가난했지만 꼿꼿했던 한 검사 이야기(22)] "요즘 변호사들 부정이 많다는 데 경고 차원에서 구속 기소하지?" 남문우
[가난했지만 꼿꼿했던 한 검사 이야기(20)]절도로 구속된 외아들 뒷바라지 하느라 장사까지 접은 부모를 보고는… 남문우
[가난했지만 꼿꼿했던 한 검사 이야기(19)]초임검사 심재륜과 아파트 부정추첨 사건 수사에 착수했으나… 남문우
[가난했지만 꼿꼿했던 한 검사 이야기(18)]1970년 박정희 대통령 '불호령'으로 시작된 병역비리 수사에서 겪었던 황당했던 일 남문우
[가난했지만 꼿꼿했던 한 검사 이야기(17)]강도살인 혐의 부인하던 일흔살 노인을 3일 밤 새며 설득했더니… 남문우
[가난했지만 꼿꼿했던 한 검사 이야기(16)]매춘에 절도까지 했던 가련한 혼혈소녀를 눈물로 풀어준 사연 남문우
[가난했지만 꼿꼿했던 한 검사 이야기(15)]여러 검사들과 가까웠던 사기꾼을 구속하려 했더니… 남문우
[가난했지만 꼿꼿했던 한 검사 이야기(14)]천사같이 예뻤던 여성 피의자, 하지만 그 속에 숨은 본성은… 남문우
[가난했지만 꼿꼿했던 한 검사 이야기(13)]내가 직접 본 어느 사형수의 최후 모습 남문우
[가난했지만 꼿꼿했던 한 검사 이야기(12)]"오빠~" 검사 임관 직후 묘령의 여성이 보낸 연애편지 한통 남문우
[가난했지만 꼿꼿했던 한 검사 이야기(11)]거만했던 법무부 차관, 너무나 겸손했던 법무부 장관 남문우
[가난했지만 꼿꼿했던 한 검사 이야기(10)]사법시험 도중 깜빡 잠들어 침까지 흘리며 자다 깨보니… 남문우
[가난했지만 꼿꼿했던 한 검사 이야기(9)]고시 공부 중 생긴 '악성 위궤양'으로 죽는 줄 알았던 나를 살린 도고 온천수 남문우
[가난했지만 꼿꼿했던 한 검사 이야기(8)]절대로 법대 출신을 사위로 삼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이유 남문우
[가난했지만 꼿꼿했던 한 검사 이야기(7)]1년간 나를 감쪽같이 속였던 서울대 법대 가짜 대학생 남문우
  •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