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1.13 08:30 | 수정 : 2015.01.20 15:31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가 물을 마시는 모습이 최근 화제가 됐다. 유리잔에 담긴 이 물은 사람의 배설물을 끓여서 만든 것이다. 배설물을 끓일 때 나오는 수증기를 정화(淨化)해 식수로 만들고, 나머지 찌꺼기는 태워서 전기를 만든다. 이 처리 장치는 ‘재니키바이오에너지’라는 미국 회사가 개발했다. 게이츠와 부인이 설립한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은 이 기기로 저개발국가에 식수와 전기를 공급하는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다.
사람의 배설물로 만든 물을 마시는 빌 게이츠./게이츠노트(빌 게이츠 블로그)
사람의 배설물로 만든 물을 마시는 빌 게이츠./게이츠노트(빌 게이츠 블로그)
게이츠는 이 외에도 전세계의 의료, 교육 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에이즈 예방을 위해 차세대 콘돔 개발을 지원하고 있고, 10억명에 달하는 ‘정보 빈민(information poor)’들을 위해 전세계 공공 도서관 32만곳을 지원하는 사업도 하고 있다. ‘세계 최고 부자’로 불리던 빌 게이츠는 이제 ‘세계 최고 자선가’라는 수식어가 더 익숙한 사람이 됐다. 그를 이렇게 변모시킨 것은 누구일까.

돈 아닌 가치관을 물려준 아버지

빌 게이츠는 자선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된 중요한 이정표(milestone)로 1993년에 읽었던 한 보고서를 꼽는다. 이 보고서의 그래프에는 로타바이러스로 한 해 어린이 50만명이 사망한다는 사실이 나타나 있었다. 게이츠는 “비행기 사고로 100명이 사망해도 모든 언론이 대서특필하는데, 50만명이 사망하는 질병에 대해서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본격적인 기부 활동에 나서면서 빌 게이츠는 아버지 윌리엄 H. 게이츠(90)의 도움을 구했다. 1994년에 자선단체 ‘윌리엄 H. 게이츠 재단’을 설립한 아버지가 기부 활동에 있어서는 선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설립한 재단은 6년 후인 2000년에 ‘게이츠 교육 재단’과 합쳐져서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으로 통합된다. 윌리엄 게이츠는 현재 이 재단의 공동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윌리엄 게이츠는 돈에 대한 아들의 가치관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윌리엄 게이츠는 부유한 변호사였지만, 돈을 그냥 물려주면 자식을 망친다는 생각으로 빌 게이츠에게 창업 자금을 주지 않았다. 빌 게이츠와 아내 멜린다 역시 세 자녀에게 각각 1000만달러(약 108억원)씩만 물려주고 재산의 나머지 95%는 기부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기부 권유 운동’ 설득한 아내

빌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 직원이었던 멜린다 게이츠와 1994년 결혼했다. 멜린다도 결혼 전까지 기부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빌 게이츠를 설득해 자선가로 변신시킨 인물로 언급돼 왔다. 빌 게이츠는 지난 2010년부터 다른 백만장자들에게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도록 권유하기 시작했는데, 이 활동에 멜린다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절반의 힘(The Power of Half)’이라는 책을 읽고 감명을 받은 멜린다가 게이츠에게 ‘기부 권유 운동’을 시작하도록 권했다는 것이다. 절반의 힘은 월스트리트저널 기자였던 케빈 살윈(Kevin Salwen)이 자신의 집을 팔고 판매금의 절반을 기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게이츠 부부는 살윈의 아내를 초대해 더 자세한 기부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빌 게이츠와 아내 멜린다 게이츠(오른쪽)./ AP뉴시스
빌 게이츠와 아내 멜린다 게이츠(오른쪽)./ AP뉴시스
게이츠 부부는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과 함께 기부 권유 운동을 시작했다. 현재까지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 전기차 업체 테슬라 CEO 엘론 머스크, 록펠러 가문의 수장인 데이비드 록펠러, 페이스 북 CEO 마크 저커버그 등 120여명이 참가 의사를 밝혔다.

미국의 1세대 부호들

‘석유왕’ 록펠러, ‘철강왕’ 카네기, ‘자동차왕’ 포드 등 미국의 자본주의를 개척한 초기의 부호들도 빌 게이츠의 변신에 영향을 미쳤다. 게이츠는 2013년 열린 한 행사에서 자신의 자선 활동과 관련, “1세대 대(大) 자선가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이 중에서도 게이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으로 꼽히는 인물이 존 D. 록펠러(1839~1937)다.
석유왕 록펠러, 자동차왕 포드, 철강왕 카네기(왼쪽부터)./ 조선일보 DB
석유왕 록펠러, 자동차왕 포드, 철강왕 카네기(왼쪽부터)./ 조선일보 DB
록펠러와 게이츠는 비슷한 점이 많다. 정유회사 ‘스탠더드 오일’을 설립한 록펠러는 저가 공세로 경쟁사를 차례차례 무너뜨리며 석유업계를 독점했다. 그래도 생전에 교회에 십일조는 꼬박꼬박 냈고, 이후 아들 세대에 막대한 기부를 하면서 무자비한 자본가라는 오명(汚名)을 씻었다. 게이츠가 창업한 마이크로소프트도 초창기에는 ‘윈도’ 운영체제 안에 웹브라우저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기본 탑재해 시장을 독점한다는 논란에 시달렸다. 게이츠는 과거 인터뷰에서 “돈을 버는 것과 번 돈을 남에게 그냥 줘버리는 일을 동시에 한다는 것이 혼란스럽게 느껴졌다”고 말한 적이 있다. 자선가로 변신하기 전까지는 기부나 자선 활동에 관심이 별로 없었다는 이야기다.

교육과 의료 사업에 집중적으로 기부했다는 점도 비슷하다. 록펠러는 록펠러 재단을 세워 황열병 치료 등을 지원했고 시카고 대학교, 록펠러 대학교를 설립했다. 게이츠 앤 멜린다 재단의 활동도 교육과 보건의료 분야에 집중돼 있다. 저개발 국가 주민들의 생활을 개선하는 효과가 가장 큰 분야이기 때문이다. 이 재단은 “특정 개인에게 직접적인 지원을 제공하지는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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