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1.08 03:05
김대식 KAIST 교수 사진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지난 2014년은 "트라우마의 해"라 해도 과장이 아닐 듯하다. 그렇다면 과연 트라우마란 무엇인가? 유대인 수용소를 경험한 이탈리아 작가 프리모 레비는 2차대전이 끝난 후 수십년 동안 끝없이 반복되는 악몽과 기억에 시달린다. 짐승보다도 못한 대우를 받던 수용소에서는 살기 위해 바둥거렸지만, 전쟁이 끝나고 최고 소설가가 된 그는 결국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2001년 9·11 테러를 경험한 사람들 역시 여전히 기억상실, 악몽,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전쟁, 테러, 고문, 자식의 죽음.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악의 경험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경험이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거, 현재, 미래 모두 송두리째 단 한 번의 순간으로부터 영원한 지배를 받게 되니 말이다. 아이의 죽음을 처음 알게 된 그 순간, 내 눈으로 처절한 죽음을 모습을 목격한 그 순간, 유대인 수용소에서 죽음의 두려움에 떨던 그 순간…. 영원히 반복되는 그 순간이 미래, 현재, 과거를 하나로 묶어버리기에 삶도, 시간도 더 이상 흐르지 않는다. 망가진 테이프가 끝없이 반복된 음악을 틀어주듯 트라우마를 경험한 뇌는 경험하고 싶지 않았던 그 한순간을 영원히 반복할 뿐이다.

스위스 정신과 의사 퀴블러 로스는 자신 또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5단계로 나눈 바 있다. 우선 부정('절대 그건 거짓일 거야!')과 분노('왜 하필이면 나에게 이런 일이!')로 시작해 타협('그날 보내지만 않았더라면…')과 우울('나는 이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을 통해 마지막으로 그 믿을 수 없는 사실을 수용하게 된다는 가설이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일까? 2008년 조지아주립대학교가 소개한 연구에 따르면 자식의 죽음을 경험한 부모들은 비교 그룹보다 더 자주 병에 걸리고, 더 많은 부부 갈등에 시달린다고 한다. 특히 자식을 잃은 지 20년 넘은 부모들 역시 여전히 우울증과 트라우마 증세를 보인다. 아무리 수용해도 또다시 분노하고, 타협하려 해도 여전히 믿어지지 않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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