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1.02 07:34 | 수정 : 2015.01.02 10:11
이 글은 남문우(80) 전 검사가 쓴 자서전 ‘나의 삶 이야기’에서 발췌한 것이다. 그는 “내가 세상을 떠나더라도 자식들만은 내가 많은 은인들 도움으로 인생을 살았다는 걸 알아야 할 것 같아 책을 썼다”고 했다. 비매품으로 1000부를 찍었는데, “가난에도 좌절하지 않은 인생 이야기가 감동적이다. 혼자 보기 아깝다”는 지인들의 권유에 최근 두 차례에 걸쳐 각각 500부씩을 더 찍었다. 그의 동의를 받아 책 내용을 발췌해 연재한다.
<편집자 주>

대전지검 홍성지청 검사로 있던 1975년 8월, 보령경찰서에서 송치한 절도 사건을 맡게 되었다. 서울에서 친구들과 같이 대천해수욕장으로 피서 온 대학생이 일주일 간 놀다가 돈이 떨어지자 남의 텐트에 들어가 물건을 절취한 사건이었다. 서울 S대 2학년 학생이었다.

학생이 수갑을 차고 경찰관에게 끌려 검사실로 들어서는데 중년 남녀가 따라 들어왔다. 학생의 부모라고 했다. 아버지는 서울 동대문시장에서 포목장사를 하는 분이었다. 절망한 듯한 표정으로 아버지가 말했다. “외아들을 어렵게 공부시켜 대학까지 보냈습니다. 아들 하나 잘 되는 걸 바라고 이제까지 장사를 했는데, 아들이 구속됐다는 얘길 듣고 모든 희망이 사라져 가게문을 닫고 보령으로 내려왔습니다.”

아버지는 보령의 허름한 여인숙에서 묵고 있었다. 경찰서 근처에 있는 여인숙에서 지내다가 아들이 홍성지청으로 송치된다는 얘기를 듣고 검사실로 따라 들어왔다고 했다. 그는 아들이 풀려날 때까지 보령에 있으려고 여인숙을 장기 예약해 놓고 있었다. “왜 하필 여인숙에 계시냐”고 물었더니 “아들이 유치장과 감방에서 고생하는데 어찌 부모가 좋은 방에서 편히 잠 잘 수 있겠느냐”고 했다.

2012년 6월의 충남 보령시 대천해수욕장 해변.
2012년 6월의 충남 보령시 대천해수욕장 해변.

순간, 저렇게 자식에게 열성적인 부모가 있다면 구태여 죄를 졌다고 해서 교도소에 감금할 필요 없이 부모에게 맡겨도 재범을 하지 않고 개과천선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사 기록을 읽어보니 학생은 다행히 초범이었다. 범행동기도 악질적인 것은 아니었다. 친구들과 해수욕장에 놀러와 1주일간 지내다가 용돈이 떨어지자 집에 갈 차비를 마련하려고 우발적으로 남의 천막에 들어가 카메라 한 대를 절취한 것이었다.

피해자도 자신의 카메라를 돌려받고는 학생에 대한 처벌을 원치 않고 있었다. 학생도 반성하고 있었다. 사안 자체는 구속기소보다는 기소유예 처분하여 용서하는 것이 타당한 사건으로 생각됐다.

문제는 당시 검찰 관행이었다. 그 때만 해도 아무리 용서할 사건이라도 구속송치된 이상 경찰관이 가지고 온 피의자 수용지휘서에 서명을 하여 일단 교도소(구치소)에 유치시킨 뒤 시간을 두고 완전히 조사가 끝난 다음에 본인과 부모를 불러 서약서를 받고 기소유예 처분하는 것이 통례였다.

하지만 이 사건에선 부모로부터 자식을 잘 교육시키겠다는 서약서를 받고, 학생으로부터도 앞으로 절대 법을 어기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아 풀어주는 게 재범 방지에 더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자식에 대한 부모들의 절절한 애정, 반성하는 학생의 모습을 보고 그 결심을 굳혔다.

간단히 피의자 신문조서를 받은 후 학생에게 말했다. “네 부모님은 하나 뿐인 자식을 가르치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장사를 하면서 너를 대학까지 공부시키고 있는데, 너는 부모의 은공도 모르고 이렇게 죄를 지어 부모를 고생시키는 게 얼마나 불효인지 아느냐?” 학생은 머리를 푹 숙였다. “부모님께 정말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부모님 속 썩이지 않고 효도하겠습니다.” 학생에게 반성문을 쓰라고 하고, 부모님으로부터는 앞으로 가정교육을 철저히 하여 다시는 아들이 탈선하는 일이 없게 하겠다는 각서를 받은 뒤 학생을 그자리에서 돌려보내기로 했다.

경찰관에게 수용지휘서 용지를 달라고 하여 그 자리에서 찢어 버리고는 “교도소에 이 피의자를 수용할 필요 없으니 그냥 경찰서로 돌아가라”고 했다. 경찰관은 이제까지는 없던 일이라 몹시 당황하면서 “검사님이 수용지휘서에 서명을 안 하시고 찢어버리면 어떻게 합니까”라고 말했다. “내가 책임질 터이니 빨리 돌아가라”고 하고는 그 경찰관을 돌려보냈다.

나는 다시 부모와 아들을 앞에 앉혔다. 학생에게 먼저 말했다. “너는 오늘 교도소로 가야 하지만 너의 부모님들이 네가 구속되고부터 지금까지 동네 여인숙에서 고생하시는 것을 보고 오늘 너의 부모님을 따라갈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니 앞으로 공부 열심히 하여 부모님께 효도해야 한다.” 그리고 학생 부모에게 말했다. “자식에 대한 두 분의 지극한 관심을 보니까 아들을 나라에서 관리하지 않고 두 분께 맡기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어 오늘 석방합니다. 아들 교육 잘 시키시고 장사도 열심히 하세요.”

학생은 검찰청에 송치된 지 한 시간 만에 석방됐다. 나는 기소유예 결정문을 작성한 뒤 지청장실로 들어가 석방 사유를 설명했다. 지청장은 처음에는 의아해하다가 내 결정을 이해하고 결재를 해주었다.

검찰 업무가 주로 이해 당사자 간의 이해 관계가 대립되는 사건을 다루다 보니 실질적인 측면을 중시하기보다는 형식적인 절차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간혹 실질적인 정의구현을 그르치는 경우가 있는 것을 종종 보아 왔다. 나는 사심없이 내린 그때의 결정이 옳았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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