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12.26 09:47
1973년 4월쯤 국내에서 처음으로 컴퓨터를 이용한 아파트 부정추첨 사건을 수사한 일이 있다. 당시 주택공사에서 시공한 2차 반포아파트 입주자 당첨을 정부 전자계산소 컴퓨터로 시행했는데 주택공사 관계직원과 컴퓨터 담당자들이 짜고 컴퓨터 추첨을 조작하여 돈 받고 부정 당첨자를 만들어 냈다는 정보를 검찰청 직원으로부터 입수했다.

나는 당시 서울지검 감찰부에 근무하고 있었다. 심재륜 검사가 신규 임명되어 감찰부에 배치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초임 검사에게 범죄 인지도 경험하게 할 겸, 업적도 쌓게 할 생각으로 심 검사에게 좋은 정보가 있으니 합동으로 수사할 의사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좋다고 동의해 같이 수사하기로 했다.

1997년 5월 당시의 심재륜 대검 중수부장.
1997년 5월 당시의 심재륜 대검 중수부장.

우리는 우선 수사관들을 주택공사와 정부 전자계산소에 보내 반포아파트 당첨 관계 서류와 펀치 카드를 압수하여 검토하고, 주택공사와 전자계산소에서 반포아파트 추첨업무를 담당한 관계자들을 불러다가 밤늦게까지 조사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정당하게 추첨업무를 진행했을 뿐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나와 심 검사는 어디서부터 실마리를 풀어야 할지 몰라 일단 피의자들을 돌려보내고 수사를 중단하자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괜히 초임검사를 불러 들여 고생시킨 것이 미안해 내가 자주 가던 술집에서 심 검사와 술 한 잔을 했다. 그리고 밤늦게 집에 들어가 잠을 청하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그까짓 것도 하나 해결 못하고 당신이 무슨 검사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전화 건 사람은 사건 내용을 알고 있는 듯했다. “지금 당장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했더니 “내가 왜 능력도 없는 검사를 만나느냐”며 거절했다. 간곡히 부탁해 새벽 2시쯤 한 여관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뜻밖에도 그는 나와 안면이 있던 사람이었다. 검사가 되기 전 내가 검찰 일반직으로 전자계산소 전신인 경제기획원 통계국 사무실에서 대검 범죄 분석지를 만들 때 만난 사람이었다. 당시 경제기획원 통계국의 컴퓨터 조작을 담당했던 계장이었다.

그는 범죄 내용을 자신이 제보했다고 했다. 급한 마음에 범죄 단서가 뭐냐고 물었더니 그는 “남 검사님이 그 전에 경제기획원 통계국에서 대검 직원으로 파견 왔을 때 하던 일인데 왜 모르느냐”고 반문했다. 나는 솔직히 그때 컴퓨터에서 뽑은 통계 자료만 분석했기 때문에 통계자료가 어떻게 나오는지는 몰랐다.

“힌트를 달라”고 했지만 그는 입을 쉽게 열지 않았다. 술이라도 한 잔 사주면서 달래보려고 그를 몇 시간 전까지 심 검사와 술 마셨던 집으로 데리고 갔다. 심 검사도 나오도록 했다. 새벽 6시까지 술집에서 설득했는데도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할 수 없이 목욕탕에 가서 목욕이나 하려고 술집에서 나와 신발을 신는데 그가 옆으로 오더니 한마디 툭 던졌다. “검사님, 카드 숫자는 세 보셨어요?”

“아, 그거였구나.” 사건을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번개같이 머리를 스쳤다. “고맙다”고 말하고 해장국으로 대충 식사를 때우고는 사무실로 바로 달려갔다. 사무실에 보관된 카드를 가지고 전자계산소로 가서 컴퓨터에 카드를 넣어 세어보니, 실제 카드 매수가 아파트 추첨지원자 수보다 10장이나 많았다.

1970년대 초반 서울 반포지역에 지었던 한 아파트 단지.
1970년대 초반 서울 반포지역에 지었던 한 아파트 단지.

카드 숫자와 아파트 추첨자 수가 똑같아야 되는데 카드 숫자가 10장 많다는 것은 누군가가 카드를 더 만들어 추첨에 넣었다는 얘기였다. 이는 일부 특정인을 부정 당첨시키기 위하여 10장을 더 만들어 아파트 추첨 지원자 카드 속에 넣었다는 증거였다.

아침 일찍 전자계산소 담당 직원을 불러 아파트 추첨 신청자 숫자보다 많은 열 장의 카드는 누가 만들었느냐고 추궁했다. 그동안 완강하게 부인했던 그도 증거 앞에선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그는 주택공사 직원의 부탁을 받고 특정인이 당첨되도록 하기 위해 카드를 더 만들어 넣었고, 그들이 부탁하는 열 명을 당첨시킨 대가로 돈을 받았다고 자백했다.

그 자백을 토대로 주택공사 직원과 전자계산소 직원 등 3~4명을 구속 기소하는 성과를 올렸다. 다음날 여러 일간지엔 ‘검찰사상 처음 컴퓨터를 이용한 아파트 부정추첨 사건’이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그 당시 초임검사였던 심재륜 검사는 수사에 큰 공을 세웠다. 그는 이후 서울지검 특수부장, 대검 중수부 과장, 대검 중수부장 등으로 승승장구해, 한국 검찰의 특수 수사통 일인자로 인정받았다. 검찰총장의 자질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그 직전에 검찰을 떠나 나를 포함한 모든 이들이 아쉬워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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