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12.25 03:04

미나마타病을 美學으로 다룬 걸작에 대한 비판은 일리 있어
가난·고통 속 아동을 보는 시선… 同情과 同等, 어느 쪽이 옳을까
슬픔 전하는 宿命 안은 사진가… 비난 무릅쓰고 또 그리로 간다

조인원 멀티미디어영상부 차장
조인원 멀티미디어영상부 차장
크리스마스다. 약하고 힘없는 이들을 돌보신 예수처럼 많은 사진가도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 카메라로 기록했다. 수많은 다큐멘터리 사진이 어둡고 고통스러운 사람들의 모습에서 나왔다. 카메라는 빛이 충만한 세상보다 어둠을 밝히는 빛에 더 가까워 보인다.

최민식은 가난하고 힘들게 살던 시절 우리의 모습을 강렬한 흑백사진으로 기록한 사진가였다. 어린 동생을 등에 업고 동냥젖을 구걸하는 소녀, 맨발로 바닥에 기대어 자는 엄마와 아기, 판자촌의 코흘리개 아이들, 손님을 기다리는 짐꾼, 하품하는 노점상 등 어렵게 살아온 우리의 과거를 최민식의 사진은 날것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황해도가 고향인 최민식은 6·25전쟁 후 피란민으로 정착한 부산에서 겪고 목격한 가난한 이웃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화가의 꿈을 접고 독학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휴먼(Human)'이라는 사진집 14권을 내는 50년 동안 그는 "세상 사람이 지겹게 무관심했던 후미진 곳을 찾아서 세상에 알리는 것에 한 번도 주저함이 없었다"고 했다. 그의 사진을 볼 때면 사진가가 얼마나 카메라에 확신을 갖고 있기에 이렇게 과감히 다가갔을까 하는 경외감이 든다.

미국 사진가 브루스 데이비드슨은 1960년대 미국 전역을 돌면서 뿌리 깊은 미국 사회의 흑인 차별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목화를 따는 흑인 소년, 카페 안 백인 여자들 사이에 앉아 눈치를 보며 점심을 먹는 흑인 여성, 공원 벤치에서 백인 아이들을 돌보는 흑인 보모…. 그는 당시 흑인 인권 운동의 상징이던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인권 운동 집회뿐 아니라 대도시 빈민 지역의 가난한 흑인을 찾아다니며 따뜻한 시선으로 사진을 찍었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인간애가 담긴 시선으로 촬영한 사진가로 W. 유진 스미스를 빼놓을 수 없다. 인간의 고통스럽고 비극적인 모습을 그처럼 아름답게 찍은 사진가도 없을 만큼 그는 빼어난 사진가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라이프지의 종군(從軍) 사진기자로 전장을 누볐던 그는 전쟁 후에 시골 의사나 아프리카에서 의술을 펼친 알베르트 슈바이처 등의 사진을 통해 인간애를 담은 사진을 세상에 알렸다. 후대에 많은 사진가가 그의 사진을 보고 감동해서 그처럼 약하고 소외된 이들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가장 유명한 그의 사진은 1975년에 전시된 미나마타병에 걸린 환자들을 찍은 사진이었다. 그중 '목욕하는 도모코'라는 사진은 미나마타병에 걸려 손발이 뒤틀린 기형아 딸을 안고 엄마가 목욕을 시켜주는 사진이다. 완벽에 가까운 광선과 구도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이미지였다.

[조인원의 사진산책] 어둡고 苦痛스러운 곳을 향하는 카메라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하지만 예술 평론가 수전 손태그는 저서 '타인의 고통'에서 이 사진을 언급하며 사진가의 태도를 비판했다. 수은중독의 고통으로 죽어가는 환자 앞에서 피에타를 연상케 하듯 사진을 미학적 구도에 맞춰 찍었다는 이유에서였다. 손태그의 지적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다른 사람의 슬픔과 고통스러운 순간을 코앞에서 찍어야 하는 사진가라면 누구나 이런 고민을 마주한다.

10년 전 경험이 생각난다. 2004년 이라크 전쟁이 막 끝나고 대한적십자사 의료팀과 함께 현지 의료 지원을 위해 수도 바그다드에 한 달간 가 있었다. 당시 바그다드는 사담 후세인의 24년 독재와 반미(反美) 정책으로 외국과 교역이 거의 중단된 상태였다. 사담의 얼굴이 그려진 이라크 지폐는 휴지 조각에 가깝게 가치가 떨어졌고, 의료품과 다른 생필품이 한참 모자란 상태에서 한국의 많은 구호 단체에서 원조가 이어졌다. 함께 갔던 우리도 치약과 칫솔 같은 생필품을 나눠주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대한적십자사 윤병학 과장이 뼈아픈 충고를 던졌다. "원조 물품을 던지면서, 받으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 사진을 찍지 마세요. 저들도 인간입니다. 만일 저들의 아이들이 커서 그 사진을 보며 가난했던 자기들 부모를 발견한다면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윤 과장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동정의 시선이 아니라 동등한 인간으로서 예의를 갖추고 그 사람 처지가 되어 다가가는 자세가 먼저라고 강조했다. 그날 이후 많은 가난과 고통의 현장에서 카메라를 들면서 이런 고민과 싸워야 했다.

귀국한 다음해에 끼니를 거르는 결식아동을 찍느라 서울 변두리의 한 동네를 찾았다. 고등학생 누나가 밤새 아르바이트로 일하고 남겨온 햄버거를 남동생이 먹고 있는 집을 찾아갔다. 할머니와 아이만 있던 그 집에서 슬쩍 소년의 뒷모습이라도 찍을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사진을 찍어서 아직도 굶고 있는 아이가 많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는 것도 중요했지만 만에 하나 누군가가 소년을 알아본다면 그는 친구들로부터 동정이나 놀림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의 슬픔을 알리는 것은 사진가의 숙명(宿命)이다. 올해도 대형 사건·사고의 현장에서 사람들의 고통을 찍던 사진기자와 사진가들은 '나쁜 놈들'로 욕을 먹었다. 새해가 되어도 그들은 또 욕을 먹으며 사진을 찍고, 어둡고 고통스러운 모습을 세상에 알릴 것이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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