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12.22 16:04 | 수정 : 2014.12.23 10:17
1970년 3월, 어느 지방검찰청 검사로 있을 때 나는 모 군 부대 지부에 파견 나가 부대에서 내사한 병무비리 사건 20여건을 인계 받아 석달 동안 수사한 적이 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사회지도층 자식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병역을 기피하는 일이 많아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자, 모 군 부대장에게 병역 비리자를 적발하라고 명령했다. 경찰이나 검찰을 믿을 수 없다는 이유로 군에 직접 지시한 것이다.

군 수사관들이 전국적으로 사회지도층 자식들의 병역비리 사건을 내사, 많은 병역 비리자를 적발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그런데 그 대상자들이 모두 민간인이어서 군 부대 수사기관은 그들을 입건하거나 기소할 수 없었다. 대통령은 다시 검찰총장에게 군 부대에 검사들을 파견해 군 부대에서 내사한 기록을 넘겨 받아 수사하도록 지시했다. 나도 군 부대 파견 검사의 한 명으로 수사에 참여했다. 대통령이 얼마나 경찰이나 검찰을 못 믿었으면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도 없는 군부대장에게 먼저 그런 지시를 했을까. 검찰의 처지가 참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1998년 6월 시민단체 회원들이 서울 국방부 앞에서 병무비리 진상공개를 촉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1998년 6월 시민단체 회원들이 서울 국방부 앞에서 병무비리 진상공개를 촉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내가 제일 먼저 조사에 착수한 것은 모 시멘트 제조회사 사장이 병무청 담당자에게 돈을 주고 아들 3형제의 병역을 면제받은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쉽게 풀렸다. 그런데 나머지 사건들은 수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군 부대에서 자백했던 피의자들이 모두 한결같이 고문에 못 이겨 허위 자백한 것이지 부정한 방법으로 병역을 면제받은 건 아니라고 부인했기 때문이다. 별다른 보강 증거도 없어 한 건도 인지하지 못하고 말았다.

이런 현상은 다른 검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군 부대장이 대통령에게 “우리는 병역비리자들로부터 모두 자백을 받아 검찰에 넘겼는데 검찰에서 뭐 하는지 수사 성과가 없다”고 보고했다. 그러자 대통령은 고문으로 허위 자백 받은 사실은 모른 채 검찰총장을 질타했고, 곧바로 수사검사들에게도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런데 내가 군 부대에 한 달가량 있어 보니 문제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군 부대 수사관들이 처음엔 사건 당사자들을 고문해서 허위 자백을 받아 놓고, 나중엔 그들로부터 청탁을 받았는지 자신들이 처리한 사건에 대해 선처를 부탁하는 것이 아닌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상부의 강력한 지시가 있더라도 죄 없는 사람을 마구 입건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일단 군 부대에서 넘어온 사건은 제쳐놓고 병무청에서 몇 년간 병역 면제를 받은 사람의 병적 카드를 모두 가져와 그 중에서 허위진단 여부를 제일 판별하기 쉬운 폐결핵으로 병역 면제를 받은 사람의 카드를 골라냈다. 그리고 이들을 차례로 소환, 그 지역 대학교 의과대학에 보내 다시 엑스레이를 찍게 해 폐결핵을 앓은 흔적이 있는지를 가려냈다. 폐결핵을 앓은 사람은 치유된 후에도 엑스레이 사진에 그 흔적이 남는다. 이 방법은 큰 효과를 발휘했다. 사건 관련자들로부터 병무청 담당자에게 돈을 주고 부탁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이런 식으로 총 15건을 입건해 구속 기소하고 병무사범 처리를 일단락지었다.

2005년 서울병무청의 징병검사장 모습.
2005년 서울병무청의 징병검사장 모습.

병역비리를 수사하면서 잊혀지지 않는 일화가 하나 있다. 당시 야구 국가대표 에이스 투수에 관한 것이다. 당시 그가 부상당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는데, 팔꿈치 골절상으로 병종 판정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군 부대 수사관에게 당장 서울에 가서 그를 데려오라고 지시했다.

며칠 뒤 아침에 출근해보니 덩치가 큰 젊은 사람이 사무실 바닥에 꿇어앉아 있었다. 누구냐고 물었더니 수사관은 “문제의 야구 선수인데 어제 저녁에 서울에 가서 야간 화물열차에 태워서 새벽에 왔다”고 했다.

그는 야구 선수이면서 은행 직원의 신분도 갖고 있었다. 그해 여름 아시아 야구선수권대회에 선수로 나가기로 돼 있었다. 그를 의자에 앉힌 뒤 한 달 수입이 얼마냐고 물었다. 지금 기억은 정확치 않지만 의외로 적은 액수였다. 그는 실제로 서울 삼양동 판잣집에서 살고 있었다.

순간, 잘못 짚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처음엔 그가 은행직원이자 국가대표 선수로 호의호식하면서 군대에 안 가려고 술수를 쓰는 나쁜 사람으로 생각했다. 한데 박봉으로 판잣집에 살면서 고생한다는 말을 듣고는 동정심이 생겼다. 그를 구속하는 것보다 국가대표로 뛰게 하는 게 국가에 더 큰 이익이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의 행위를 불문에 부치기로 했다. “야구선수를 계속하게 해 줄 테니 그 대신 열심히 해서 올해 아시아 야구선수권 대회에서 꼭 우승하라”고 하고는 그를 돌려보냈다. 직원들도 나의 결정에 모두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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