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12.12 07:56
이 글은 남문우(80) 전 검사가 쓴 자서전 ‘나의 삶 이야기’에서 발췌한 것이다. 그는 “내가 세상을 떠나더라도 자식들만은 내가 많은 은인들 도움으로 인생을 살았다는 걸 알아야 할 것 같아 책을 썼다”고 했다. 비매품으로 1000부를 찍었는데, “가난에도 좌절하지 않은 인생 이야기가 감동적이다. 혼자 보기 아깝다”는 지인들의 권유에 최근 두 차례에 걸쳐 각각 500부씩을 더 찍었다. 그의 동의를 받아 책 내용을 발췌해 연재한다.
<편집자 주>


1970년 여름 일흔살 남자 노인의 강도살인 및 특수절도 사건을 배당받아 수사한 일이 있다. 그는 부산 판자촌에서 밤중에 주인이 잠든 틈을 이용하여 식칼을 들고 침입, 탁상시계 등 별로 값나가지 않는 물건을 매일 훔쳐 팔아 끼니를 연명하느라고 절도 범행이 100여회에 이르렀다. 그러던 중 한 집에 들어가 훔칠 물건을 찾다가 주인 여자에게 발각되자 여자를 식칼로 찔러 살해한 혐의였다.

그는 경찰에선 절도 뿐만 아니라 강도 살해 사건도 순순히 자백했다. 그런데 검찰로 송치된 이후에는 다른 범죄는 모두 자백하면서 강도살해 사건에 대해선 절대로 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그는 경찰에서 위협용으로 식칼을 들고 판자촌에 다니면서 탁상시계 등을 훔쳐 그날그날 좀도둑질을 하여 먹고 살았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의 그날, 옷장 문을 열고 훔칠 물건을 찾고 있던 중에 옷장 문 여는 소리를 듣고 주인 여자가 잠에서 깨면서 살인까지 이르렀다고 했다.

보통 여자 같았으면 무서워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아무 소리도 못하고 벌벌 떨고 있었을 터인데, 스무살 후반의 이 여자는 일흔살 노인의 허벅지를 붙잡고 늘어지면서 “내 물건 내놔”라고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여자는 부산에 있는 양말공장 직원이었다.

이쯤 되자 그가 오히려 “내 다리 놓으면 그대로 갈 테니 다리를 놔 달라”고 사정했으나 그 여자는 다리를 놓지 않았다고 한다. 칼로 찌른다고 위협해도 마찬가지였다. 도망가려고 칼로 한 번 찔렀는데도 다리를 놓지 않았다. 그래서 그때부터 도망가기 위해 사정없이 여자의 몸을 칼로 찔렀다는 것이다.

나는 이 사건을 수사하면서 노인이 일흔살이 넘도록 도둑질을 하고 살았지만 머리만큼은 천재 못지 않게 좋은 사람이라고 느꼈다. 왜냐하면 경찰관이 그에게 여죄를 추궁하자 1년 전부터 자기가 판자촌에서 100여 회에 걸쳐 좀도둑질 한 것을 일시, 장소, 훔친 물건 등을 하나도 틀리지 않게 자백했기 때문이다. 경찰관이 그가 자백한 대로 피해자 집을 찾아가 확인했더니 피해 일시와 피해 물건 등이 자백과 정확히 일치해 놀랐다고 했다. 범행일지를 써 놓은 것도 아니고, 어떻게 머릿속으로 100여 회나 범행한 것을 일일이 기억해 낼 수 있었을까 참 신기하였다.

어쨌든 그가 100여 회의 절도 행위는 자백해 놓고도 강도 살인사건은 끝까지 부인해 큰 골칫거리였다. 증거를 찾아야 기소할 수 있었다. 강도살인 사건 증거로는 피해자를 찌른 부엌칼과 범행 당시 피의자가 입고 있던 피 묻은 옷이었기 때문에 경찰에서 자백할 때 그 행방을 물어서 증거물을 찾았다면 쉽게 사건을 마무리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경찰에서는 그가 자백하자 증거를 찾을 생각을 하지 않고 그대로 송치해 사건 해결에 어려움을 겪었다.

2009년 경찰이 경기 군포 여대생 납치 살해범이 추가로 살해해 암매장한 한 여인의 사체를 발굴하고 있다.
2009년 경찰이 경기 군포 여대생 납치 살해범이 추가로 살해해 암매장한 한 여인의 사체를 발굴하고 있다.

처음에는 몇 시간 그를 붙잡고 달래면 쉽게 식칼과 피 묻은 옷의 행방을 말할 것이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달래기도 하고 야단도 쳐봤으나 그는 입을 다물고 요지부동이었다. 하는 수 없이 장기전을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설렁탕을 시켜 그와 마주앉아 끼니를 때우면서 같이 밤잠을 안 자고 달래기도 하고 설득하였으나 모두 허사였다.

나는 그에게 당신도 참 독한 사람이지만 나도 지고 싶지 않으니 한번 해 보자며 사흘 밤을 꼬박 새우면서 대화와 설득을 하였다. 나흘 째 밤을 새던 날 새벽 3시쯤이었다. 그는 나와 마주 앉아 있다가 “내가 졌다. 내가 칠십 평생 사는 동안 당신 같이 독한 검사 처음 봤다. 나는 당신이 밥을 사주면서 인간적으로 대접해 주었기에 그 답례로라도 식칼과 피묻은 옷을 감추어 놓은 곳을 가르쳐 줄 터이니 같이 가자”고 했다.

나는 너무 기뻐 “고맙습니다”고 한 뒤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그가 안내하는 대로 금정산 너머로 차를 내달렸다. 근무시간에 갈 수도 있었으나 혹시 그의 마음이 또 변할까봐 서둘렀다. 한참을 가다가 그가 정지하라고 하는 지점에서 차를 세우고 내려서 그가 알려준 보리 짚무더기를 파헤쳤다. 그 속에 부엌칼과 그가 입었던 피 묻은 옷이 있었다. 곧바로 식칼과 옷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보내 피해자 혈액과 일치하는 걸 확인한 뒤 그를 구속기소했다. 자칫하면 영구 미제 사건이 될 뻔했던 사건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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