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12.09 05:30
“우리 모두 언젠가는 세상을 떠야 되고 일도 마쳐야 되는데,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 일을 안 하고 뭘 하겠어요? 영원히 이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저는 오로지 그 하나로 지금까지 살아왔고 앞으로 마치는 날까지 그 일로 살아갈 겁니다.”

“그 목적 이외에 제 개인적인 삶의 목적이 없어요. 그런 꿈을 이루기 위해 하루하루 살고 있는 저에게 겁나는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오로지 그 걱정뿐이에요… 그러면 제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365일 마음 속에 바라는 게 뭐가 있겠어요? 그런 목적 외에 나머진 다 번뇌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7일 청와대에서 새누리당 지도부 및 예결특위 소속 여당 의원들과 만났을 때 했던 발언들이다. 정윤회씨의 국정개입 의혹 논란에 여당이 흔들리지 말 것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이유’까지 언급한 강한 톤의 메시지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7일 청와대로 새누리당 지도부 및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들을 초대한 자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박근혜 대통령이 7일 청와대로 새누리당 지도부 및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들을 초대한 자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박 대통령은 지난 2일에도 “성경에도 그런 얘기를 한 것으로 기억되는데 사람들이 고난이 많다. 항상 어려움도 있고 고민도 하고…그래서 ‘세상 마치는 날이 고민이 끝나는 날’이라고 말할 정도로 어려움이 많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이를 놓고 정치권에선 “박 대통령이 최근 삶과 죽음을 연상시키는 표현 등의 ‘충격 어법’을 통해 자신의 힘든 심경을 표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는 말이 나온다.

여권(與圈)의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볼 때는 최근 불거진 정윤회씨 의혹 논란은 전혀 사실무근인데도 계속 정치권이 여기에 발목이 잡혔다고 보는 것 같다”며 “이에 여당을 향해 삶의 유일한 목적이 나라가 잘 되기만 바라는 자신을 믿고 흔들리지 말라는 것 아니겠느냐. 그러면서 집권 3년차가 되는 내년에는 확실한 국정운영 성과를 내자는 절실함을 내비친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지난 2012년 7월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이번 대선이 내가 국민에게 봉사할 마지막 기회”라고 했다. 자신이 국민들에게 한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여당이 국정 뒷받침을 잘해달라는 부탁의 의미를 담았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자신이 고독하다는 마음을 내비친 것”이란 해석도 있다. 정치학자인 신율 명지대 교수는 “인간적인 배신감과 억울함이 교차된 것처럼 보인다”며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박 대통령의 입장에서 보면, 한때 자신의 청와대에서 일했던 공직자가 사실무근인 청와대 문건을 외부로 유출했을 뿐 아니라 자신이 문화부 장관으로 임명했었던 사람이 의혹을 부추긴 것처럼 보이지 않겠느냐. 결국 고독한 자신은 오직 국민과 역사만 바라보고 나가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처럼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이 7일 청와대에서 열린 새누리당 지도부 및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오찬에서 의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뉴시스
박근혜 대통령이 7일 청와대에서 열린 새누리당 지도부 및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오찬에서 의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뉴시스
반면, 박 대통령이 각종 의혹 논란 속에서 자신의 의연함을 보여주려는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 대통령의 평의원 시절과 2012년 대선 과정에서 비서실장이었던 이학재 의원은 “나도 박 대통령의 어제(7일) 발언이 나온 오찬 자리에 있었는데, 오히려 의연함과 편안함을 느꼈다”며 “여당 의원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자신의 삶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안심 시켜주는 모습이었다”고 했다.

또다른 친박 인사도 “박 대통령은 이미 박정희 대통령 시절 퍼스트레이디를 대행하면서 권력 중심부에도 가봤고, 18년 간 은둔의 세월을 보면서 배신이 뭔지도 느껴봤다”며 “이러한 자신이 국민 행복 바라는 걸 제외하곤 무슨 다른 권력욕이 없다는 점을 각인시키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권력의 무상함을 절실히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지난 1990년대 초반 헌인릉(태종의 묘)에 다녀온 뒤 적었던 소감문에서 “이생에는 한계가 있고 임금조차 영원히 이 땅의 주인은 될 수 없다. 태종이 남길 수 있는 것은 그가 어떻게 이 생을 살다 갔는가 하는 것일 뿐”이라고 적었다. 또 1990년 9월 2일 일기에선 “권력은 클수록 예리한 칼”이라며 “수양을 많이 한 사람, 하늘의 가호를 받는 사람이 아니면 누구도 자기의 큰 권세를 제대로 다룰 수 없다. 잘못 사용하면 자신을 죄어온다”라고 했다. ‘권세’를 술·담배·도박 등과 함께 열거하면서 “우리가 가슴이 타도록 원하고 탐내고 집착하는 것들은 우리를 희롱하고 얽어매는 역할을 한다. 이를 얻기 위해 정신을 파는 동안 참으로 우리를 존재하게 하고 평안하게 하는 것들은 우리 곁을 떠나간다”고도 했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여권 내 반응과 달리 “이런 식의 충격 어법을 통한 심경 토로는 일반 국민들에게 박 대통령이 자신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여 줄 것을 강요하는 식으로 비쳐질 수 있다”, “평소 박 대통령은 절제된 표현으로 잘 알려져왔는데, 이런 식의 충격 어법은 국민들을 놀래킬 수 있다”는 부정적 반응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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