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12.08 13:35
이 글은 남문우(80) 전 검사가 쓴 자서전 ‘나의 삶 이야기’에서 발췌한 것이다. 그는 “내가 세상을 떠나더라도 자식들만은 내가 많은 은인들 도움으로 인생을 살았다는 걸 알아야 할 것 같아 책을 썼다”고 했다. 비매품으로 1000부를 찍었는데, “가난에도 좌절하지 않은 인생 이야기가 감동적이다. 혼자 보기 아깝다”는 지인들의 권유에 최근 두 차례에 걸쳐 각각 500부씩을 더 찍었다. 그의 동의를 받아 책 내용을 발췌해 연재한다.
<편집자 주>


1970년 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로 있을 때 구속 송치된 한 혼혈소녀의 절도 사건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비록 손목에 수갑을 차고 피부색은 검었지만 유난히 빛나는 까만 눈동자와 가지런한 흰 이를 가진 총명하고 순진해 보이는 열 아홉 소녀였다. 사건 내용은 혼혈소녀가 부산항에 일시 정박한 외국 국적 상선의 선원과 여관에서 매춘행위를 하고, 외국선원이 잠든 사이에 그 선원이 손목에 차고 있던 다이아몬드가 박힌 고급시계(당시 시가 300만원 상당)를 훔친 사건이었다.

당시는 검사인 내가 받는 월급이 3만원이 채 안 되었고, 서울 불광동에 있는 건평 30평 단독주택 값이 150만원가량 할 때였다. 절도 피해액은 집 두 채 값이나 되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혼혈소녀 어머니는 당시 부산에 주둔하고 있던 하야리아 미군 부대 세탁부에서 일하는 한국사람이었는데, 그 부대에 근무하던 미 흑인 병사와 눈이 맞아 혼혈소녀를 낳게 되었고, 그 소녀의 아버지는 군복무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 버려 어머니 혼자서 딸을 키웠다.

그 혼혈소녀는 부산에 있는 혜화여고를 2학년까지 다녔으나 혼혈아란 이유로 친구들의 따돌림과 사회의 냉대를 견디지 못하고 학교를 중퇴하고 말았다. 그녀는 거리에서 방황하다가 외항 선원들을 상대로 매춘 행위를 하면서 외롭게 살았다. 그러나 다행히 하야리아 부대에 근무하는 미 흑인 병사와 사랑을 하게 되어 그 미군 병사가 군복무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갈 때 같이 가서 결혼하기로 언약이 된 상태였다.

당시 검찰에서는 기소율과 구속 기소율이 높은 것을 높이 평가하던 때였다. 2만원도 안 되는 자전거 한 대를 절취해도 구속기소를 원칙으로 하였기 때문에 시가 3백만원 짜리 고급시계 절도범을 기소유예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더구나 검사가 구속 사건을 기소유예나 구약식으로 신병을 석방하고자 할 때는 사건 결정 전에 결재권자인 차장검사와 검사장의 사전승인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그런 사건을 기소유예하겠다고 보고했다가는 정신이상자 취급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처지였다.

일러스트=김성규 기자
일러스트=김성규 기자

그런데 이 사건이 검찰로 송치된 그 다음날 혼혈소녀와 결혼하기로 약속했다는 흑인 병사와 피해자가 검사실로 찾아왔다. 피해자라는 사람도 미국 국적의 흑인이었다. 피해자는 “피의자는 알고 보니 한국에서 피부가 검다는 이유로 사회로부터 냉대를 받아 온 불쌍한 소녀였고, 또 마침 흑인병사가 곧 제대하면 피의자를 미국으로 데리고 가 결혼한다는 말을 들었다”며 “피의자 장래를 위해 용서해 달라”고 했다. 피의자에 대한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내용의 진정서도 제출했다.

피의자의 약혼자인 미군 흑인병사도 “나는 이 소녀를 사랑하여 결혼까지 약속하였고, 한 달 후에 제대하면 미국에 데리고 가서 행복하게 살겠으니 용서해 달라”고 사정했다. 나는 “네가 이 소녀의 애인인 사실을 어떻게 믿으며, 또 네가 이 소녀를 미국으로 데리고 가서 결혼하겠다는 약속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며 “부대에 돌아가 네 말을 보증할 상급자를 데리고 오라”고 했다. 그 병사는 얼마 뒤 백인 미군 육군 대위를 대동하고 검찰청으로 왔다. 내가 그 대위에게 “이 흑인병사가 이 소녀와 결혼한다고 하는데 그것을 보증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 대위는 “모든 것이 사실이며, 만일 선처해 준다면 한 달 후에 흑인병사가 제대하고 미국으로 돌아갈 때 꼭 이 소녀를 데리고 가도록 주선하고 보증하겠다”며 그런 내용의 보증서를 작성하여 제출했다.

나는 여전히 의심스러워 그 자리에서 흑인병사에게 “네 애인이 다른 남자와 매춘 행위를 하다가 물건을 훔쳤는데 그 사실을 알고도 결혼하겠느냐”고 물었다. 그 병사는 “그런 사실을 알기에 더더욱 빨리 미국으로 데리고 가서 안정된 가정을 이루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 마음은 변함이 없고 앞으로 이 여자와 꼭 결혼해 행복하게 살겠다는 각서를 썼다. 나는 그 소녀의 어머니로부터도 저간의 사정을 들었다. 그 어머니는 한참을 울고 나서 그동안 겪었던 서러움을 토로했다.

나는 그 소녀의 처리 문제로 밤잠을 설치며 고심했다. 법대로 한다면 두말 할 것 없이 구속기소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나는 편할지 모르지만 그 혼혈소녀와 그 어머니의 장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 소녀가 징역형을 살고 풀려 나더라도 사회의 냉대는 변하지 않을 것이고 그 소녀와 어머니가 설 곳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 그 소녀는 또 뒷골목에서 외국 외항 선원들을 상대로 매춘 행위를 계속 할 것이고, 그 어머니는 그런 딸의 무너진 모습을 보면서 평생을 죄책감과 슬픔 속에서 살 것이다.

앞날의 불행이 훤히 보이는 결정을 하는 것이 법의 올바른 집행인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사안은 무겁지만 흑인 병사가 그 소녀를 미국으로 데리고 가서 약속대로 결혼을 한다면 그 소녀의 삶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고, 혼혈 딸을 낳은 죄의식과 슬픔 속에서 살아왔던 어머니의 근심도 조금은 덜 수 있지 않을까. 그게 진정한 법의 정의 아닐까.

나는 밤새워 고민한 끝에 그 소녀와 어머니에게 절망 대신 희망을 주는 결정을 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출근하자마자 밤새워 고민한 내용을 담아 기소유예 결정문을 써 내려갔다. 그 당시는 타자기나 컴퓨터가 없던 시절이라 검사가 공소장이나 불기소 결정문을 쓸 때는 직접 펜으로 불기소 결정용지에 써야했다.

나는 소녀의 범행 동기, 소녀가 겪어야 했던 냉대와 멸시, 어머니가 겪어야 했던 정신적 고통, 그리고 왜 그 소녀에게 기회를 줘야 하는지를 담은 장문의 결정문을 썼다. 결정문을 쓰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서 눈물방울이 결정문 위에 떨어져 글씨가 번져 나가기도 했지만 다시 쓰지 않고 내버려두었다.

결재를 올린 뒤 나는 차장 검사실이나 검사장실에서 내 결정문을 보고 도장을 찍기 전에 틀림없이 불러 올리리라는 생각을 하고 긴장된 마음으로 퇴근시간까지 기다렸다. 예상과 달리 결정문은 무사통과됐다. 결재권자들도 결정문에 공감했기 때문에 아무런 이의를 달지 않고 도장을 찍은 것으로 믿고 있다.

나는 사건을 결정한 후 지금까지 그 소녀가 정말로 미국에 가서 그 흑인 병사와 결혼했는지 확인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들의 약속대로 미국에 건너가서 아들 딸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기를 간절히 빌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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