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12.04 15:46

"당신들 뭐 하는 군대냐", 전선 무너지자 미8군의 거센 질책

(10) 낙동강 전선

중국말 하는 미 연대장

앞서 소개한 존 마이켈리스 미 25사단 27연대장에 이어 그 후방을 받쳐주는 미군 부대로 2사단 23연대가 추가로 다부동 전선에 도착했다. 23연대의 연대장 폴 플리먼 대령은 이듬해 1·4 후퇴로 한강 이남으로 아군이 밀렸을 무렵 지평리라는 곳에서 중공군 5개 사단 6개 연대와 맞서 싸워 기적적인 승리를 이끌었던 이른바 ‘지평리 전투’의 영웅이었다.

마이켈리스의 27연대에 이어 23연대가 도착하던 무렵이었다. 프리먼 대령이 우리 1사단 사령부로 나를 찾아왔다. 인상이 좋아 보였던 그는 나를 만나자마자 중국어로 “당신 중국말 할 줄 아느냐”고 물었다. 만주군관학교를 나온 내 이력을 그가 알아본 뒤 건넨 중국말이었다.

나도 중국어를 사용해 “할 줄 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프리먼은 “그렇다면 우리 중국어로 이야기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상황이 조금 우스워지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영어도 할 줄 안다”고 했다. 그러자 프리먼은 활짝 웃으면서 “왜 진작 영어를 한다고 말하지 않았느냐”고 화답했다.

자라온 문화적 배경이 전혀 다른 군대가 전우로서 함께 전선에 나서는 상황이었다. 본격적인 한국과 미국의 연합작전을 알리는 장면이기도 했다. 나는 그들의 화력과 전투경험, 물자보급 능력 등이 모두 부러웠다. 당시의 국군 수준은 미군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준이 낮았다. 그런 양국군의 연합작전은 그저 함께 서서 싸운다는 열정만으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무엇인가가 있어 보였다.

프리먼은 중국에 유학한 경험이 있었다. 1931년부터 4년 동안 중국 베이징(北京)에 머물면서 익힌 중국어가 아주 돋보였다. 그는 함께 싸울 한국군 지휘관과의 소통을 먼저 걱정했던 것이다. 그래서 내 이력을 살펴 만주군관 출신이라는 점을 알고서는 중국어를 써서라도 소통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당시 한국군 지휘관 중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던 까닭이다.
1950년 여름, 낙동강 전선에서 적의 공세에 맞서는 국군과 미군.
1950년 여름, 낙동강 전선에서 적의 공세에 맞서는 국군과 미군.
다부동의 전선은 그렇게 큰 모습으로 자리를 잡았다. 다부동 초입의 천평동 계곡에 마이켈리스 대령이 이끄는 미 27연대가 전차와 포병으로 무장한 채 늘어섰고, 그 남쪽으로 프리먼 연대장의 23연대가 역시 막강한 화력으로 부대를 전개했다. 남북으로 향하는 간선도로에 미군이 중첩적으로 늘어서 적의 공격에 대비했다.

다른 나라, 다른 부대

우리 1사단은 동쪽에서 서쪽 방향으로 15연대, 유학산 일대의 12연대, 다부동 초입에서 다시 가산산성 방향으로 11연대가 진을 펼친 채 북한의 막바지 공세에 맞서 분전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남북은 미군, 동서는 국군이 막아서면서 대구를 어떻게든 지켜내야 하는 형국이었다.

27연대의 마이켈리스 대령은 아주 노련한 야전 지휘관이었다. 철저하게 현장을 살피면서 냉철하게 부대를 이끌었다. 내가 전쟁 중에 만났던 전형적인 앵글로색슨 계통의 지휘관이었다. 상견례를 할 때는 부드러웠지만 현장을 돌아보면서 부대를 배치할 때는 매우 냉정했다.

모든 전선은 견부(肩部·어깨부위)가 중요하다. 어깨와 어깨가 서로 잘 맞물려야 한다. 군사용어로는 전투 지경선(地境線)의 문제다. 함께 적을 맞아 싸우는 군대가 서로 경계를 형성하는 이 지경선은 뚫리기가 가장 쉬운 부분이다. 제대로 어깨를 잇지 않으면 적은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아군의 후방을 노릴 수 있다.

따라서 지경선 옆에 선 아군 부대가 제대로 싸우지 못하고 뒤로 물러나면 그 옆의 부대는 곧장 커다란 위기를 맞는다. 적은 제방의 균열을 비집고 들어와 사나운 기세로 돌변하는 물길처럼 변해 아군의 측면과 후방은 금세 요동을 친다. 공황에 빠진 군대는 곧 무너지면서 참혹한 결과를 빚고 만다.

미군은 그런 점에서 당시의 국군을 잘 믿지 못했다. 국군의 전투력이 우선 크게 떨어지는 상태였고, 전투 경험이 풍부한 지휘관이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이켈리스 대령과 프리먼 연대장 둘 모두는 나와 부드럽게 상견례를 했으나 그런 염려를 불식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마이켈리스는 앞에서 언급한 대로 전차와 포병 등 막강한 화력을 지닌 제 부대 병력을 배치하면서 철저하게 무엇인가를 따지는 눈치였다. 그 뒤를 따라다니면서 미군이 어떻게 부대를 배치하는지 관찰하던 내게 아무런 말도 건네지 않았다.
미군 전차의 야간 포격..
미군 전차의 야간 포격..
프리먼 대령도 마찬가지였을 게다. 오죽하면 내 이력을 먼저 살핀 뒤 영어로 소통하는 일이 어렵다고 판단해 먼저 중국어로 말을 건넸을까. 함께 싸워야 하는 한국군의 지휘관과 그렇게라도 소통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던 것이다. 전선에 나서는 군대에게는 함께 어깨를 댄 채 싸워야 하는 옆 부대의 역량이 매우 중요했다.

적군의 공세는 아주 집요하게 벌어졌다. 처참한 인명의 희생이 날로 늘어갔다. 그럼에도 우리 국군은 고지에서 적을 맞아 용감하게 싸우고 있었다. 8월 21일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천평동에서 다부동과 대구로 이어지는 축선의 간선 도로는 앞에서 소개한 대로 미 27연대와 23연대가 지켰다. 동서로는 우리 11연대가 천평동 계곡 북쪽 초입의 양쪽 산에 포진해 있었다.

“우리도 철수한다”

북한군은 전차를 앞세워 천평동 계곡 초입 지역 돌파에 안간힘을 기울였으나 마이켈리스의 27연대에 의해 번번이 꺾이고 말았다. 계곡 양쪽에 포진한 1사단 11연대도 분전을 거듭하며 고지를 확보하는 등 나름대로 선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돌연 내가 있던 1사단 사령부에 전화가 걸려왔다. 대구의 미 8군 사령부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부관한테서 건네받은 전화통 안에서는 대뜸 호통이 튀어 나왔다. “사령관, 지금 당신들 뭐 하고 있는 거야! 한국군이 정말 이래도 되는 거야!” 거의 고함에 가까웠다.

당시 미 8군의 작전 참모 중 한 명이었을 그 미군은 “당신들이 이러면 우리는 철수한다. 계곡에 적이 들어오고 있는데 이렇게 한국군이 물러난다면 미군 또한 그냥 물러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이어 “천평동 계곡 좌측방 고지가 뚫렸다. 한국군이 물러나고 말았다. 한국군에 실망했다. 27연대가 ‘이런 상황이라면 우리는 철수한다’고 통보해왔다”라고 말했다.
낙동강 전선에서 붙잡힌 북한군 포로가 미군 지프에 앉아 있는 모습.
낙동강 전선에서 붙잡힌 북한군 포로가 미군 지프에 앉아 있는 모습.
전투의 지경선, 가장 우려했던 어깨 부분이 무너지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군의 맥없는 후퇴라는, 신경질 가득 섞인 지적이었다. 상황이 아주 급했다. 그곳에서 한국군이 물러나고 북한군이 계곡 좌측을 뚫고 진입하면 미군은 바로 고립을 면치 못한다. 계곡 위의 고지에서 공격을 퍼붓는다면 미군은 전멸 위기에 몰릴 수도 있었다.

나는 지프에 올라타고 곧장 천평동 계곡 초입으로 달렸다. 11연대 1대대가 방어하는 곳이 문제가 생겼는데, 그리로 가기 위해서는 산길을 올라가야 했다. 산자락 근처에 도달했을 때였다. 어디선가 날아온 포탄 파편이 운전병의 팔을 뚫었던 모양이다. 지프를 몰던 운전병이 갑자기 “억!”하는 소리를 지르면서 운전을 멈췄다.

운전병은 제 팔뚝을 감싸 쥐고 있었다. 선혈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나는 그를 살필 겨를도 없이 차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는 1대대 방어지역을 향해 달려갔다. 몇 백 미터의 평지를 달렸고, 이어 나타난 산길을 타고 올랐다. 마음속으로는 이제 닥친 가장 큰 위기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느냐라는 생각만 했다.

뭔가에 좀체 기대지 않는 게 내 성정(性情)이다. 따라서 종교적인 심성도 내겐 그리 발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는 어딘가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다. 산길을 뛰어오르다 잠시 숨을 고르던 순간에 먼저 어머니가 떠올랐다. 아버지는 내가 7살 때 세상을 떠났다. 그 뒤로 어린 삼남매를 꿋꿋하게 돌보신 어머니였다. 마음은 어느새 어머니의 그런 굳건함을 찾고 있었다.

이어 그전까지는 제대로 다니지 않던 교회도 떠올렸다. 그리고는 하느님께 기도를 올렸다. ‘이번 위기를 구해주신다면 앞으로 교회에 열심히 다니겠습니다’라는 내용의 마음속 기도였다. 그때는 그런 생각만이 들었고, 그저 그런 기도만이 떠올랐다. 저 멀리에 11연대 1대대가 보였다. 고지에서 밑으로 무질서하게 밀려 내려오는 부하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계속 그쪽으로 달려 올라갔다. 점점 다가서면서 부하들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이어 후퇴의 선두에 선 1대대장 김재명 소령이 얼굴이 보였다. 나는 그를 불렀다. 그들은 눈앞에 나타난 사령관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정리=유광종, 도서출판 ‘책밭’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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