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11.28 14:22
이 글은 남문우(80) 전 검사가 쓴 자서전 ‘나의 삶 이야기’에서 발췌한 것이다. 그는 “내가 세상을 떠나더라도 자식들만은 내가 많은 은인들 도움으로 인생을 살았다는 걸 알아야 할 것 같아 책을 썼다”고 했다. 비매품으로 1000부를 찍었는데, “가난에도 좌절하지 않은 인생 이야기가 감동적이다. 혼자 보기 아깝다”는 지인들의 권유에 최근 두 차례에 걸쳐 각각 500부씩을 더 찍었다. 그의 동의를 받아 책 내용을 발췌해 연재한다.
<편집자 주>


1969년 10월쯤 어느 지방검찰청 검사로 있을 때였다. 배당된 사기 사건 기록을 보다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피의자 이름을 기억할 수는 없지만 사기 전과가 여러번 있는 상습 사기범과 관련한 기록이었다. 은행 담당직원을 현장에 데리고 가서 값이 나가지 않는 자기 땅 바로 옆에 있는 값비싼 남의 땅을 자기 땅이라고 속여 쓸모 없는 자기 땅을 담보로 지금 돈으로 10억원이 넘는 돈을 은행에서 대출 받은 뒤 몇 년이 지나도록 한 푼도 갚지 않고 되레 은행 직원을 협박한 사건이었다.

경찰 수사 단계에서 당연히 구속했어야 할 사건이었는데 미진하게 수사한 상태에서 검사 지휘도 안 받고 불기소 송치한 것이 이상했다. 그래서 그 사건을 조사한 담당 형사를 불러 연유를 물었다. 그 경찰관은 “피의자가 소환에 불응해 연행하러 갔더니, 피의자가 검찰청에 전화를 걸어 ‘형님, 형사들이 나 잡아가려고 한다’면서 오히려 나를 때려 맞기까지 했다”고 말했따. 그래서 제대로 조사도 못하고 불구속 송치했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모든 걸 책임질 테니 가서 무조건 임의동행 해오라”고 말했다. 경찰관은 저녁 무렵 피의자를 데리고 검찰청에 왔다. 피의자는 잘 먹어서 그런지 살이 쪄서 몸집이 컸고 둥근 얼굴에선 개기름이 줄줄 흘렀다. 거기다 거만하고 능글능글한 것이 정말 사기꾼 같았다.

일러스트=김성규 기자
일러스트=김성규 기자

그런데 연행해 온 경찰관 얼굴과 손등에 상처가 있어 물어봤더니 연행 과정에서 피의자로부터 맞아서 난 상처라고 했다. 피의자를 연행하려 하자 피의자는 또 검찰청 두어 곳에 전화를 걸어 “형님, 검사실에서 나 잡으러 나왔다”고 말하며 거드름을 피웠다고 했다.

나는 그 경찰관에게 병원에 가서 상해진단서를 끊어오라고 하고는 밤새워 피의자를 조사했다. 피의자는 조사를 받으면서도 거만한 태도로 나의 질문을 교묘하게 피해갔으나 사전에 철저히 준비된 질문에는 당하지 못했다. 그의 사기 혐의는 대부분 확인됐다.

피의자를 조사하는 동안 부산에 연고를 둔 검사나 부장검사, 차장검사들이 사건 내용을 문의하고 관심을 나타냈다. 나는 이를 무시하고 혐의를 뒷받침할 증거를 확보하는데 주력했다.

다음날 아침 피의자에 대해 상습사기와 공무집행방해죄 등으로 구속영장 청구서를 작성하여 차장검사실에 들어갔다. 차장검사는 사건의 줄거리에 대해선 묻지 않고 지엽적인 문제만 내세우면서 “법원에서 무죄가 날 것이 뻔한 사건을 왜 구속하려 하느냐”고 따졌다. 나도 물러서지 않았다. “혐의 입증하는데 증거 충분하고 피해액도 클 뿐 아니라 사기 전과도 많습니다. 죄질이 불량하고 검찰청 고위 간부 이름을 팔면서 담당 경찰관을 폭행까지 했으니 꼭 구속해야겠습니다.”

그래도 차장검사는 “무죄가 뻔한 사람을 구속하는 서류에는 도장을 못찍겠다”고 했다. 나는 “만일 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나면 검사를 그만 두겠다”고 버텼다. 차장검사는 안되겠다 싶었는지 “나중에 무죄나면 책임져”라며 억지로 도장을 찍었다. 그 피의자는 상습 사기죄 등으로 구속 기소됐고,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이 확정됐다.

그로부터 2년 후, 징역형을 복역한 그 사기꾼이 예고도 없이 검사실로 찾아왔다. 인상이 독특한 사람이어서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혹시 나에게 보복하러 오지 않았나 잠시 긴장했다.

그런데 그는 내 앞에 오더니 바닥에 무릎을 꿇고는 “검사님 덕분에 2년 동안 사람이 되어 돌아와서 감사의 인사말씀을 드리러 왔습니다”하는 것이 아닌가. 너무 반가워 그의 손을 잡아 일으켜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나 때문에 고생했는데 나를 원망하지 않고 고맙다고 하니 오히려 내가 감사하다. 앞으로 인간답게 잘 살라”고 위로하고 돌려보냈다.

지금 그 사건을 다시 생각해 보면 어떻게 검사라는 사람들이 그렇게 사기전과가 많고 검사 이름을 팔며 사기치는 사람과 가까이 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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