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11.21 14:10
1966년 12월 1일 검사에 임명돼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로 근무한 지 얼마 안 되어 겪은 이야기다. 당시는 청사가 좁아 한 방에 검사 3명이 근무하였고, 오후 3시가 되면 새로 경찰에서 송치한 구속 피의자들이 검사당 평균 3 명 정도는 되었기 때문에 구속 피의자들에 대한 구류신문(첫 신문)을 할 때는 검사실이 시골 장터나 다름없이 붐비고 떠들썩하였다.

그 붐비는 피의자들 틈 속에서 고운 스카프를 머리에 쓰고 검사실에 들어서는 여성 피의자를 발견하고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또렷한 이목구비, 하얀 피부, 초롱초롱한 까만 눈동자, 하늘에서 갓 내려온 선녀 같은 모습이었다.

그가 내 앞에 섰다. “검사님, 용서해 주세요.” 옥 같은 고운 목소리로 애원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남자의 마음을 뇌쇄시키고도 남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저렇게 예쁜 여자가 죄를 지으면 얼마나 큰 죄를 지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서울중앙지검의 강력부 검사실.
서울중앙지검의 강력부 검사실.

흔들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아가씨, 조사해 보고 큰 죄가 아니면 용서해 줄 것이니 일단 자리에 앉으시오.” 그리고 나서 피의자에 대한 기록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기록을 읽어보니 그녀가 외모와는 다르게 상습범이고, 상상할 수 없는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또 한 번 놀랐다.

확실한 기억은 없으나 그녀는 스물 남짓한 여자로, 금은방에서 목걸이만 전문적으로 훔치는 상습 절도범이었다. 싸구려 가짜 목걸이를 목에 걸고 금은방에 들어가 금은방에 진열된 황금목걸이를 목에 걸어보는 등 흥정을 하는 척하다가 가짜 황금목걸이를 진열대에 놓고 대신 진짜 목걸이를 자기 목걸이인 양 목에 걸고 금은방을 빠져 나오는 수법을 썼다.

그런데 기록 중간 쯤에 조사 담당 경찰관이 아닌 다른 경찰관 명의진술서가 붙어 있어 읽어 보니 정말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진술서는 대체로 이런 내용이었다. 자기는 부산에 있는 경찰서에서 근무하다가 최근에 서울에 있는 경찰서로 전근 와서 수사과에서 근무하게 되었는데, 부산경찰서에 근무할 때 금은방에서 목걸이 절도범으로 여자를 검거해 조사하던 중 그 여자 피의자가 여러 경찰관들이 지켜보는데 옷을 모두 벗고 알몸으로 사무실 바닥을 뒹굴면서 집에 보내 달라고 떼를 써서 애를 먹은 일이 있다. 그런데 서울에 있는 경찰서로 전근 와서 근무하고 있다가 비슷하게 생긴 여자 피의자가 옷을 모두 벗고 사무실 바닥에서 뒹굴면서 난동을 부리길래 자세히 보니 자기가 부산에서 본 바로 그 여자였다는 것이다.

나는 기록을 다 읽고 어떻게 이렇게 예쁘게 생긴 처녀가 그런 짓을 할 수 있을까 믿을 수 없었다. 그 피의자에게 “자네 안 되겠구만”하고 차갑게 말한 뒤 반응을 살폈다. 그랬더니 “검사님께서 용서해 주신다고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지금 당장 용서 안 해주면 이 자리에서 한 발짝도 물러가지 않겠습니다”라며 대들고 악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조금 전까지도 천사같이 예쁘고 순하게만 보이던 그 여자의 얼굴이 무서운 마귀할머니 같은 악마의 얼굴로 바뀔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조사를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어 대기하고 있던 경찰관을 불렀다. 그 여자의 저항이 어찌나 강한지 급기야 4명의 경찰관이 그의 양팔과 양발을 하나씩 잡고 나서야 밖으로 데리고 나갈 수 있었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얼마 뒤 검사실 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어 보니 그 여자가 옷을 모두 벗고 복도 바닥에 누워 검사를 만나게 해 달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닌가. 나는 더 이상 그 피의자와 대화는 불가능하다 싶어 빨리 여자에게 옷을 입히고 교도소에 수감하라고 지시했다.

그 후 몇 번 그녀를 불러 조사하려고 했으나 교도관들은 그녀가 교도소 감방에서도 옷을 벗고 시위를 하는 바람에 도저히 검찰청으로 호송할 수 없다는 보고를 해왔다. 하는 수 없이 피해자 조사 등 증거조사를 한 후 피의자 신문조서 없이 그녀를 구속 기소하고 말았다. 천사와 악마의 모습이 혼재된 그녀를 보면서 절대 외모로 사람을 예단해선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가난했지만 꼿꼿했던 한 검사 이야기(22)] "요즘 변호사들 부정이 많다는 데 경고 차원에서 구속 기소하지?" 남문우
[가난했지만 꼿꼿했던 한 검사 이야기(20)]절도로 구속된 외아들 뒷바라지 하느라 장사까지 접은 부모를 보고는… 남문우
[가난했지만 꼿꼿했던 한 검사 이야기(19)]초임검사 심재륜과 아파트 부정추첨 사건 수사에 착수했으나… 남문우
[가난했지만 꼿꼿했던 한 검사 이야기(18)]1970년 박정희 대통령 '불호령'으로 시작된 병역비리 수사에서 겪었던 황당했던 일 남문우
[가난했지만 꼿꼿했던 한 검사 이야기(17)]강도살인 혐의 부인하던 일흔살 노인을 3일 밤 새며 설득했더니… 남문우
[가난했지만 꼿꼿했던 한 검사 이야기(16)]매춘에 절도까지 했던 가련한 혼혈소녀를 눈물로 풀어준 사연 남문우
[가난했지만 꼿꼿했던 한 검사 이야기(15)]여러 검사들과 가까웠던 사기꾼을 구속하려 했더니… 남문우
[가난했지만 꼿꼿했던 한 검사 이야기(13)]내가 직접 본 어느 사형수의 최후 모습 남문우
[가난했지만 꼿꼿했던 한 검사 이야기(12)]"오빠~" 검사 임관 직후 묘령의 여성이 보낸 연애편지 한통 남문우
[가난했지만 꼿꼿했던 한 검사 이야기(11)]거만했던 법무부 차관, 너무나 겸손했던 법무부 장관 남문우
[가난했지만 꼿꼿했던 한 검사 이야기(10)]사법시험 도중 깜빡 잠들어 침까지 흘리며 자다 깨보니… 남문우
[가난했지만 꼿꼿했던 한 검사 이야기(9)]고시 공부 중 생긴 '악성 위궤양'으로 죽는 줄 알았던 나를 살린 도고 온천수 남문우
[가난했지만 꼿꼿했던 한 검사 이야기(8)]절대로 법대 출신을 사위로 삼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이유 남문우
[가난했지만 꼿꼿했던 한 검사 이야기(7)]1년간 나를 감쪽같이 속였던 서울대 법대 가짜 대학생 남문우
[가난했지만 꼿꼿했던 한 검사 이야기(21)]하숙집 여주인과 남자 대학생의 간통사건 남문우
  •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