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11.18 13:44
정조 임금(1752~1800)이 상당히 장수한 편에 속한다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49세에 세상을 떠난 정조대왕이 과연 당시 형편으로는 상당히 장수한 편에 속할까요? 그 때와 지금의 나이를 같이 볼 수 없는 데다 당시의 평균수명이 아주 낮았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83세까지 살았던 영조대왕(정조의 할아버지), 81세까지 살았던 혜경궁 홍씨(정조의 어머니)는 도대체 얼마나 장수했다는 표현을 써야 될까요? 상당히 장수한 편이라면 2% 이내에는 속해야 할 것인데, 200여년 전에 50세 넘게 산 사람들이 2% 정도밖에 되지 않았을까요?
정조의 어진.
정조의 어진.
조선 임금들의 수명은?

조선 임금 27명의 평균수명은 47세이고 왕비들의 평균수명은 46세였습니다. 그러니 정조대왕은 평균보다 조금 더 살았던 셈이죠. 그런데 17세에 수양대군으로부터 죽음을 당한 단종, 31세에 반정을 당해 왕위에서 쫓겨나 교동도에 귀양간지 두 달 만에 돌림병에 걸려 죽은 연산군처럼 예외적인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정조를 비롯하여 인종(31세), 선조(57세), 효종(41세), 현종(34세), 경종(37세), 고종(67세), 순종(53세) 등 독살 의혹이 있는 왕들이 8명이나 되기에 만약 그 중 일부라도 독살당하지 않았다면 평균수명이 50세를 훌쩍 넘어서게 됩니다. 아울러 60세 넘게 장수한 왕이 영조, 태조 이성계(74세), 고종, 광해군(67세), 정종(63세), 숙종(60세) 외에 몇 분 더 되었겠죠.

왕들의 건강 장수에 유리한 여건과 불리한 여건은?

왕은 당대 최고의 명의들을 주치의로 두고 세심한 건강관리를 받으면서 최상의 음식과 한약, 약차를 수시로 복용했으니 누구보다 건강을 지키는데 유리한 편이었습니다. 당연히 정기적으로 진찰을 받게 되어 있으니 닷새마다 한 번씩 승지가 내의원의 의원과 함께 왕의 처소를 찾아뵙고 문안드리는 ‘문안진후(問安診候)’가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왕의 건강상태를 세밀하게 점검했는데, 한의학의 종합진찰인 ‘망문문절(望聞問切)’의 사진(四診)을 모두 했던 것이죠.

반면 왕들이 장수하기 쉽지 않은 여건도 많긴 했습니다. 막중한 국정의 중요 사항에 대하여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하고, 신하들의 왕권에 대한 도전과 역모에 늘 노심초사했을 뿐만 아니라 왕비와 후궁 및 왕자들의 문제로 시달리는 등 스트레스가 엄청났기 때문입니다. 또 궁중에는 좋은 술과 미녀가 가득하기에 술에 취하지 않고 여색에 빠지지 않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었죠. 조선의 임금 중에 술과 여색으로 인해 건강에 큰 해를 입고 요절한 왕으로는 성종, 철종 그리고 연산군을 들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일반 백성들의 평균수명은?

조선시대의 평균수명은 30세가 채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1906년에서 1910년 사이의 통계를 검토한 결과에 의하면 24세 정도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을 처음 조사했던 때는 왜정시대인 1926년이었는데, 33.7세에 불과했습니다.
평균수명이 그렇게 낮았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태어난 지 오래되지 않아서 사망하는 아이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생후 1년 내에 사망하는 비율이 높았을 뿐만 아니라 5년 내에 사망하는 비율도 엄청 높았습니다. 조선시대의 통계가 없기에 1930년대의 통계를 보면 5년 내에 사망하는 비율이 무려 41%나 되었습니다. 자식을 5명 낳으면 둘은 5세를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는 것이죠. 5-9세 사이의 아이가 이후 5년 안에 죽을 확률은 2%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흉년이 자주 들어 굶어죽는 사람도 많았고, 특히 질병으로 죽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조선시대에 가장 무서운 병이었던 두창, 즉 천연두와 홍역을 비롯하여 호열자(콜레라), 한센병(나병) 등이 많은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말라리아, 발진티푸스, 매독, 독감, 결핵, 장티푸스, 세균성이질 등으로 죽는 사람도 많았었죠.

정조대왕은 상당히 장수했다고 볼 수 있을까?

조선 후기에 40세가 넘게 살았던 사람이 별로 없었다면 정조대왕은 상당히 장수한 편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평균수명은 그토록 낮았지만 보통 50대 중반 나이에 세상을 떠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죠. 어릴 때 죽지 않고 돌림병에 걸려 죽지 않는다면 50세는 넘게 살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60세까지 살아서 회갑연을 하는 사람은 드물었고, 고희 즉 70세 넘게 산 사람은 매우 드물었으며, 80세 넘도록 장수한 사람은 극히 드물었습니다. 그러니 당시에도 60세를 넘겨야 장수한 편, 70세를 넘기면 상당히 장수한 편, 80세를 넘기면 대단히 장수한 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조의 어진.
영조의 어진.
조선의 임금 중에서 가장 장수했던 영조대왕이 80세가 된 것을 기념하여 장수자를 조사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 때가 240년 전으로서 인구가 600만명 정도였는데, 80세 넘는 사람이 1천여명이고, 100세 이상도 20여명이나 되었습니다. 물론 그 중에는 상을 받으려고 나이를 조작해서 신고한 경우도 더러 있었다고 합니다. 1906년 통계에 의하면 60세 이상 인구는 전체의 5%에 미치지 못하는 67만 명으로 남자가 36만명, 여자가 31만명이었습니다. 그리고 70세 이상은 1% 정도인 14만8천명으로서 남자 7만명, 여자 7만8천명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80세가 넘는 사람은 13,500명이었습니다.

중세 서양의 평균수명은 얼마나 되었나?

오랜 인류 역사에서 평균수명이 50세를 넘은 것은 불과 100여 년 전입니다. 15~18세기에 프랑스인 평균수명은 25세 안팎이었고, 19세기 말 서유럽인의 수명은 37세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20세기 초만 해도 미국인의 수명은 평균 45세 정도에 지나지 않았죠. 사실 18세기까지만 해도 동서양의 평균수명은 별 차이가 없는데, 세균이 발견되고 전염병을 예방할 수 있게 된 100여년 전부터 늘어나게 된 것입니다. 하수도 시설이 보급되고 위생관념이 대중화된 탓도 있겠죠.

300년 전의 49세는 요즘으로 보면 몇 살 쯤 될까?

당시의 나이를 요즘으로 환산한다면 대략 20년 정도를 더해야 하니 70세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요즘 70세에 돌아가시면 장수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 정조대왕은 장수했다고 하기 어렵죠. 조선시대에는 적어도 70세는 넘겨야 장수했다고 할 수 있고, 80세를 넘겨야 상당히 장수한 편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조선시대 인물 중에 70세, 80세 넘게 장수한 분이 꽤 많습니다. 황희 정승(1363~1452, 90세)은 18년이나 영의정에 재직하고 87세가 되어서야 물러났고, 농암 이현보(聾巖 李賢輔, 1467~1555, 89세) 선생도 76세에 왕의 만류를 뿌리치고 스스로 벼슬을 그만두었습니다. 그밖에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 70세), 오리정승 이원익 (1547-1634, 88세), 김상헌(金尙憲, 1570~1652, 83세), 김육(金堉, 1580~1658, 79세), 윤선도(尹善道, 1587~1671, 85세), 송시열(宋時烈, 1607~1689, 83세), 이익(李瀷, 1681~1763, 83세), 정약용(丁若鏞, 1762~1836, 75세), 서유구(徐有榘, 1764~1845, 82세), 김정희(金正喜, 1786~1856, 71세) 등 장수한 분들이 많습니다.
황희 정승의 초상화.
황희 정승의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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