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11.14 08:15
이 글은 남문우(80) 전 검사가 쓴 자서전 ‘나의 삶 이야기’에서 발췌한 것이다. 그는 “내가 세상을 떠나더라도 자식들만은 내가 많은 은인들 도움으로 인생을 살았다는 걸 알아야 할 것 같아 책을 썼다”고 했다. 비매품으로 1000부를 찍었는데, “가난에도 좌절하지 않은 인생 이야기가 감동적이다. 혼자 보기 아깝다”는 지인들의 권유에 최근 두 차례에 걸쳐 각각 500부씩을 더 찍었다. 그의 동의를 받아 책 내용을 발췌해 연재한다.
<편집자 주>


내가 1966년 12월 1일 검사로 임명돼 서울지방검찰청에서 근무를 시작한 지 3개월 만인 1967년 3월 4일 할머니께서 86세를 일기로 돌아가셨다. 내가 어렵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검사가 되자 “우리 손자가 장원 급제했다”고 그렇게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하셨던 할머니였다.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같이 슬펐다. 어렵게 사신 할머니는 입고 싶은 옷도 제대로 못 입고,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못 드셨다. 할머니가 제일 좋아하시던 조기새끼정도는 밥상에 올려드릴 수 있게 됐는데 그렇게 돌아가시니 더욱 가슴이 아프고 슬펐다.

젊어서 할아버지를 여의시고 60여년을 독수공방하신 할머니를 저승에서나마 할아버지와 함께 사시라고 공주시 신풍면 대룡리에 있는 할아버지 산소에 합장해드렸다. 할머니 장례를 치르고 출근했더니 사형 집행을 지휘하라는 명령이 내려와 있었다. 할머니 장례를 치르고 아직 슬픔에 잠겨 있는 사람에게 사형 집행을 지휘하라니 참으로 상급자들이 야속하였다.

사형 집행 지휘는 검사 누구나 기피하는 일이다 보니 그전부터 말석 검사들이 도맡아왔다. 그 당시 나도 말석 검사였기에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당시 서울 서대문 근처에 있던 서울교도소로 가서 사형 집행을 지휘하게 되었다.

사형을 집행하는 교도관들의 애환을 그린 영화 '집행자'의 한 장면.
사형을 집행하는 교도관들의 애환을 그린 영화 '집행자'의 한 장면.

사형수에 대한 판결문을 읽어보니 범죄 내용이 ‘갑돌이와 갑순이’ 이야기 같았다. 충남 어느 시골 한 농촌 마을에서 머슴살이를 하던 총각(사형수)과 그 마을에 사는 처녀의 애정 행각으로 빚어진 사건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좋아했으나 여자가 부모의 강권에 못 이겨 같은 마을에 사는 다른 총각한테 시집가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여자는 결혼한 뒤에도 먼저 사귄 총각을 못 잊어 마을 뒷동산에서 몰래 그 총각과 만났다.

그러던 어느 날 총각이 “네 신랑이 없으면 우리 둘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텐데”라고 말을 꺼냈다. 여자도 동조하자 그는 “네 남편 죽여 버리고 같이 다른 데로 도망가서 행복하게 살자”고 제의했다. 두 사람은 다음날 저녁 여자가 남편에게 산보 가자고 꾀어 산으로 데리고 오면 총각이 숨어 있다가 남편을 돌로 내리쳐 죽이기로 했다.

총각은 다음날 저녁 계획대로 남편을 죽였다. 그런데 그는 남편을 죽인 뒤 여자도 살해했다. 순식간에 부부를 살해한 것이다. 나는 판결문을 읽으면서 인간의 본성이 이다지도 잔인할 수 있다는데 전율했다. 사랑하는 여자의 남편을 없앤 뒤 여자마저 죽였다는데 소름이 끼쳤다.

추측컨대 그가 그렇게 돌변한 건 불안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살인하고 난 뒤 두려움 때문에 현장을 목격한 여자까지 죽였을 수 있다. 완전 범죄를 만들기 위해 사랑하는 여자마저 죽인 것이다. 그 점에서 그 총각의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고 색정에 불과했던 것이다.

나는 분노심을 억제하고 사형수 앞에서 인적 사항을 확인하고 판결문을 낭독하는 사형 집행 절차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 모습이 또 가관이었다. 그는 금방 얼굴색이 파랗게 변하더니 “이X 때문에 내가 죽는구나”라며 여자를 원망하고 발광했다.

그는 판결이 확정된 후 사형 대기하는 동안 천주교에 귀의하여 세례까지 받은 듯했다. 마침 신부가 옆에 앉아 “앉아서 기도합시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는 “이 XX야, 지금 사람이 죽을 판인데 무슨 얼어 죽을 기도냐”고 하면서 앉아 있던 신부를 발로 걷어찼다. 신부가 일어나 다시 “기도합시다”고 했으나, 그는 또 발로 걷어차며 난동을 부렸다.

나는 평소 “사람이 죽기 전에 파랗게 질린다”는 말은 들었지만 실제로 보지는 못했는데, 그 사형수는 정말로 얼굴빛이 파란색으로 변하여 죽기 전까지 난동을 부렸다. 판결문 낭독 절차와 최후 진술 절차가 끝나자 교도관들이 달려들어 그에게 올가미를 목에 걸고, 두건을 머리에 씌운 후 스위치를 누르자 사형수가 서 있던 마루 바닥이 밑으로 떨어졌다.

그걸로 사형 집행은 끝났다. 마지막으로 검사가 의사를 대동하고 아래층에 내려가 사형수가 숨을 거두었는지 확인하는 절차가 남아 있었다. 나는 기분이 내키지 않았다. 의사에게만 시신 확인을 부탁했다.

과거 자유당 시절 조봉암 선생이 사형 집행을 당할 때 검사가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느냐”고 묻자 “시원한 막걸리나 한 잔 마시고 갔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아무런 동요 없이 조용하게 사형 집행을 당했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 의연한 모습을 기대하진 않았지만, 내 눈 앞에서 사형 집행을 당한 그 사형수는 끝까지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살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을 보이다 세상을 떠났다.

과거 선배 검사 한 분이 사형 집행 지휘를 하고 차를 타고 돌아오는 중에 사형수가 차 앞바퀴 속으로 기어 들어오는 환상을 본 후 정신이상에 걸려 끝내 검사를 그만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도 무척 걱정했으나 그런 환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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