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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 유학파 20代가 끌기 시작… 北村 골목길 누비는 '청춘 인력거'

입력 : 2014.11.01 07:32

서울 한복판에 등장한 '아띠인력거' 누가 끄나

청년 사장의 '무모한 도전'
외국계 증권社 2년前 때려치워… 인력거 2대 사들여 고난의 행군

인력거, 봄날이 왔다
손님 몰려들고 입소문 좍~ 28개월간 탑승 고객 2만명
대학원생·요가 강사 등… 열혈 청년들, 인력거꾼 합류

인력거, 디지털 시대의 소통
손님들, 저희에게 미안해하며 "방금 밥 많이 먹고 왔는데…"
우린 답하죠 "돌덩이 안드셨죠? 걱정 말고 편하게 즐기세요"

지난 28일 인력거 6대가 서울 안국동 풍문여자고등학교 앞에 나타났다. 커다란 세발자전거에 파란색 차양을 덮은 인력거가 등장하자 사람들이 "이게 뭐냐"며 몰려들었다.

요즘 서울 북촌에 등장한 '아띠인력거'이다. 북촌은 종로구 재동·가회동·삼청동이 있는 지역이다. 2년 전부터 '아띠인력거'라고 쓰인 파란 후드티를 입은 인력거꾼들이 관광객을 태우고 서울 서촌과 북촌 일대를 돌아다닌다. 인력거는 커다란 세발자전거 뒤쪽에 성인 2명이 탈 수 있는 푹신한 의자를 놓은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 관광지에서 보던 풍경이 서울 한복판에서 펼쳐진다.
美 유학파 20代가 끌기 시작… 北村 골목길 누비는 '청춘 인력거'
서울 종로구 안국동 풍문여고 담벼락에 선 라이더들이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겉모습만큼 살아온 궤적도 서로 다른 이들은 이름 대신‘별명’을 만들어 부른다. 나이는 묻지 않는다. 왼쪽부터 정주한(별명: 초한), 형우일(형씨), 송정훈(앤드류), 김혜민(튼튼), 이인재(아이제이), 정선종(키아누), 김동현(온)씨. / 김지호 기자
'아띠인력거'에는 총 20대의 인력거가 있다. 이곳에선 인력거꾼들을 라이더(rider·자전거를 타는 사람)라고 부른다. 현재 라이더는 총 28명. 인력거를 한 시간 타는데 요금은 1인당 2만5000원이다. 하루 약 50명이 이 인력거를 이용한다. 아직까진 한국인 손님이 많지만, 외국인 관광객도 늘고 있다.

라이더들은 이날 총 4차례에 걸쳐 홍콩에서 온 관광객 47명을 인력거에 태웠다. 파란 인력거가 노랗고 빨간 단풍이 든 돌담길 사이를 지나 안국동, 북촌 한옥마을 등으로 내달렸다.

지금이야 하루 수십 명이 타는 도심의 명물로 자리 잡아가고 있지만 불과 2년 전만 해도 인력거 사업은 창업하자마자 폐업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고전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인력거를 끌겠다는 생각을 한 사람은 이인재(29) 대표. 회사에 잘 다니다가 문득 창업해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시행착오 그리고 추운 겨울

美 유학파 20代가 끌기 시작… 北村 골목길 누비는 '청춘 인력거'
3년 전 그는 외국계 증권사에 다니고 있었다. 어느 날 서울 소공동의 사무실에서 덕수궁 돌담길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당시 그는 미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한 후 귀국해 남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회사에 다니는 젊은이였다. 이씨는 "그때는 정신은 나가 있고 '고깃덩어리' 같은 몸만 회사를 왔다 갔다 했다"고 말했다. 그는 불쑥 '인력거로 덕수궁 돌담길을 달리면 어떨까'라고 생각했다.

그에게 인력거는 엉뚱한 생각이 아니었다. 실제로 인력거를 끌어본 일도 있었다. 미국 유학 시절인 2010년 보스턴의 인력거 회사 '보스턴 페디캡'에서 라이더로 3개월간 아르바이트를 했다. 한국에서 자신만큼 인력거를 잘 아는 사람도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돈벌이도 될 것 같았다. 그는 그렇게 인력거를 창업 아이템으로 정했다.

6개월 뒤 이씨는 회사를 나왔다. 부모님께는 말도 꺼내지 못하고 한 달 동안 매일 출근하는 척했다. 정장을 입고 집을 나선 후엔 동업자를 찾으러 다녔다.

뒤늦게 깨달은 사실은 당시 그가 알던 사람들은 세 부류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서울 강남구 아파트촌에서 함께 어울리던 동네 친구들, 미국 유학 시절 만난 친구들, 회사에서 알게 된 사람들. 모두 좋은 환경에서 자라 열띤 교육열의 수혜를 받은 '엘리트'였다. 다시 말하면 그와 함께 인력거 사업이란 '모험'에 뛰어들 만한 사람들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때 나타난 구세주는 유학 시절 만난 미국인 친구 빈센트 모나코(28·이하 비니)였다. 그의 도움 요청에 비니는 2주 만에 미국에서 한국으로 날아왔다. 창업 자금은 1000만원. 서울 종로구 원남동에 월세 70만원짜리 창고를 얻고 인력거 두 대를 샀다.

2012년 7월 21일 이씨는 중구 청계천에서 첫 인력거 운행에 나섰다. 신기해하는 사람은 많았어도 타겠다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운행 첫날 이씨는 3만원, 비니는 3만4000원을 벌었다.

두 사람은 '고난의 행군'을 계속했다. 허탕치는 날이 많았다. 정 안 되면 손님들을 공짜로 태워줬다. 처음엔 미국에서처럼 팁을 받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주고 싶은 만큼 '팁'을 달라"고 하면 사람들은 돈 대신 커피나 먹을거리를 내밀었다. 그래 가지고는 70만원 창고 월세 내기도 빠듯했다. 두 달 뒤에 비니는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었다. 중국에 가서 인력거 4대를 더 샀다. 그러는 사이 겨울이 왔다. 그해 겨울은 왜 그렇게 추웠는지, 이씨는 양말을 두 겹으로 신고 비닐장갑도 발에 몇겹씩 덧씌운 채 페달을 밟았다.

◇봄과 함께 온 손님

美 유학파 20代가 끌기 시작… 北村 골목길 누비는 '청춘 인력거'
화려한 외관을 자랑하는 프랑스 인력거. 해외 유명 관광지에서는 인력거가 명물로 꼽힌다. / 이인재 대표 제공
인력거 사업을 구해준 건 뜻하지 않게 일찍 찾아온 봄 날씨였다. 2013년 3월 1일, 날씨는 이상고온이었다. 봄으로 가는 문턱에서 맞은 첫 공휴일. 반팔을 입을 만큼 따뜻해진 날씨는 겨우내 움츠렸던 사람들을 밖으로 불러냈다. 인력거 4대가 이날 30팀의 손님을 태웠다. 일주일 내내 손님을 찾아다녀도 될까 말까 한 '실적'이었다.

소문은 금세 퍼졌다. 손님 수가 전달의 2배로 뛰었다. 소문도 났다. 동시에 라이더 지원자도 늘었다. 2013년엔 한국관광공사의 '창조관광 사업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이 대표는 "'너희는 안 돼'라는 말을 지겹도록 듣던 우리가 '된다'는 이야길 들은 거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순간이다"고 말했다.

인력거꾼들의 가장 큰 보람은 뒤에 앉은 사람들의 변화. 희한하게도 인력거에 올라탄 사람들은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고 거리를 바라보고 같이 탄 사람과 대화를 나눈다.

인력거는 손님뿐 아니라 자전거를 모는 라이더들도 변화시켰다. 서울 종로구 가회동의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일하던 김동현(31)씨는 우연히 가게에 들른 아띠인력거 사람들을 보고 합류했다. 그는 "예약 손님을 만나러 가면 연예인을 기다리는 팬의 눈빛처럼 기대에 가득 찬 얼굴을 하고 있다. 그 따뜻한 성원과 관심을 받으며 일하니 어떻게 즐겁지 않겠느냐"고 했다.

두 달간 인력거 페달을 밟은 대학원생 송정훈(30)씨는 다음 주부터 컨설팅 회사에 출근한다. 그래도 틈나는 대로 인력거를 끌고 있다. 송씨의 부모는 "왜 더운데 고생하느냐"고 했고 친구들은 "괴짜"라고 했다. 하지만 인력거를 끄는 일은 그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줬다. 그는 "언덕을 올라가고 있으면 모르는 분들이 '수고한다'며 뒤에서 밀어준다. 인력거에 탄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처음엔 낯설고 부끄러워하다가 점점 행복해하는 걸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인재 대표도 "손님들이 저희가 힘들까 봐 미안해하며 '방금 밥 많이 먹고 왔는데'라는 말을 많이 한다"면서 "그럴 때면 '밥으로 돌덩이 먹은 거 아니죠? 걱정하지 말고 편하게 즐겨요'라고 말한다"고 했다.

◇인력거의 매력
美 유학파 20代가 끌기 시작… 北村 골목길 누비는 '청춘 인력거'
'키아누'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정선종(29)씨는 이날 첫 운행에 나선 신입 라이더다. 그는 부산에서 카카오톡 해외 서버 관리 업무를 하다가 지난해 11월 회사를 그만뒀다. 친구와 로봇 사업을 함께 하기도 했다. 그런데 스트레스는 여전했다. "앞으로 내가 30~40년은 더 일을 해야 할 텐데… 뭔가 새로운 게 없을까." 외국어 방송 채널에서 '아띠인력거' 기사를 봤던 게 생각났다. 그는 "몸은 좀 더 피곤하고, 돈도 덜 벌겠지만 더 늦기 전에 컴퓨터가 아닌 사람과 소통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여성 라이더 김혜민(33)씨는 지난 9월부터 인력거를 끌고 있다. 그는 '여자도 괜찮다'는 구인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다른 라이더들에 비하면 작은 체격이라 손님들이 걱정을 하지만 그는 "할 만하다"고 했다. 심재훈(29)씨도 평일에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근무하고 주말에는 인력거를 끈다. 2012년 9월부터 주말마다 인력거를 끌어온 심씨는 이인재 대표를 제외하고 현재 활동하는 라이더 중에 가장 고참이다.

서울 종로구 사직동에 있는 아띠인력거 사무실은 46.2㎡(약 14평) 크기이다. 사무실에 들어서면 쉴 새 없이 전화가 울려댄다. 이 대표는 자전거 바퀴를 손보고, 전화를 받고, 신입 라이더를 교육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인력거 회사를 창업한 지 2년 4개월, 12대의 인력거와 28명의 라이더는 지금까지 2만명 이상을 태우고 다니며 서울 구경을 시켰다.

이 대표는 최근 아띠인력거 창업기를 담은 '즐거워야 내 일이다'라는 책을 냈다. '멀쩡하게' 회사 잘 다니다가 뛰쳐나와 인력거 회사 만드는 과정에서 겪은 이야기를 담았다. 이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알았으면 못했다! 몰랐으니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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