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10.31 05:46
이 글은 남문우(80) 전 검사가 쓴 자서전 ‘나의 삶 이야기’에서 발췌한 것이다. 그는 “내가 세상을 떠나더라도 자식들만은 내가 많은 은인들 도움으로 인생을 살았다는 걸 알아야 할 것 같아 책을 썼다”고 했다. 비매품으로 1000부를 찍었는데, “가난에도 좌절하지 않은 인생 이야기가 감동적이다. 혼자 보기 아깝다”는 지인들의 권유에 최근 두 차례에 걸쳐 각각 500부씩을 더 찍었다. 그의 동의를 받아 책 내용을 발췌해 연재한다.
<편집자 주>


1964년 8월 20일 제3회 사법 시험에 합격했다. 합격자 10명 중 내가 제일 나이가 많았다. 그 이유로 모든 일간지에 나에 대한 프로필 기사가 났다. KBS방송국에서 내가 사는 셋방에 찾아와 인터뷰를 요청했다. 내가 자라온 환경과 가족 관계, 앞으로의 계획 등을 담은 내용이 1964년 8월 26일 ‘오늘이 있기까지’란 제목으로 라디오 방송에 나왔다.

시골에 계신 할머니와 어머니는 “옛날 과거 시험에 합격했다”고 기뻐하셨고, 아내와 동생들은 “이제 우리 집안은 살아나게 됐다”면서 기뻐했다. 어머니는 얼마 후 충남도지사로부터 표창장을 받기도 하셨다. 어려운 가정 환경 속에서도 큰아들을 서울법대와 사법 시험에 합격시켰고, 둘째와 셋째 아들도 모두 서울대학교를 졸업시켰다는 공로라고 했다.

내가 다니던 대검찰청에서도 검찰청 직원이 사법시험에 합격했다고 축하해줬다. 검찰총장을 비롯한 대검 검사들과 법무부장관 등 법무부 간부들에게 합격인사를 다녀야 한다고 해서 나는 직속 상관이던 송용재 수사관(후에 이사관까지 승진하여 대검 사무국장까지 역임)의 안내로 인사를 다녔다.

인사를 받은 모든 분들이 “어려운 시험에 합격했다”며 축하하고 기뻐해 주셨는데, 그 중에 인사 받는 방법이 너무도 달라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두 분이 있었다. 먼저 당시 법무부 차관. 차관 비서실에 들어가 송 수사관이 비서관에게 “대검찰청 중앙수사국에 근무하는 남문우 계장이 이번 사법시험에 합격해 인사 드리러 왔다”고 하니, 그 비서관은 환하게 웃으면서 “차관님께서 반가워하실 것”이라며 빨리 들어가라고 했다.

송 수사관과 같이 차관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한 분은 소파에 앉아있고, 키 큰 한 분은 책상 앞에 서서 어딘가 전화를 하고 있었다. 송 수사관이나 나는 법무부 차관의 얼굴을 몰라 그 앞에 서서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소파에 앉아있던 분이 턱만 위로 젖히면서 무슨 일이냐는 듯 물었다.

송 수사관은 그 분이 차관이라고 판단하고 앞으로 다가가 “이번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남 계장이 차관님께 인사왔다”고 말했다. 우리 둘은 차관에게 머리 숙여 인사를 했다. 그런데 예상 외의 반응이 나왔다. 차관은 아무 말도 없이 한동안 나의 위 아래를 훑어보더니 또 고개를 뒤로 젖히며 나가라는 몸짓을 하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나는 그대로 물러 나오고 말았다.

아무리 높은 자리에 앉아있다고 하더라도 부하직원이 사법시험에 합격했다고 인사를 갔는데 어떻게 그런 반응을 보일 수 있을까. 모욕감을 느꼈다. 그 분이 아무리 높은 자리에 앉아있다 해도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인격은 갖추지 못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그를 보면서 경멸심만 생겼다.

얌전한 송 수사관도 기분이 나쁜 듯했다. 그런데도 그는 “법무부 장관님께는 인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더이상 무시당하기 싫으니 장관 인사는 하지 않겠다”며 돌아섰는데, 그가 내 팔을 잡아 끌었다. “장관님은 훌륭한 분이니 그렇게 냉대를 하지 않을 거요.”

그와 함께 장관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20m 안쪽 소파에 앉아있던 장관은 벌떡 일어나 나를 향하여 뛰다시피 달려오더니 두 손으로 내 손목을 잡고 흔들었다. “고생 많이 했소.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그는 내 손을 잡은 채 소파로 데리고 가서 앉으라고 권하고 비서에게 차를 가져오라고 했다. 차를 마시면서도 “어떻게 바쁜 업무를 하면서 어려운 시험에 합격했느냐”며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그 장관은 민복기 장관님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법조인들이 존경하는 분이었다. 그는 법무부 장관뿐 아니라 대법관, 검찰총장, 대법원장 등 수십 년 간 중요 관직을 거쳤다. 그렇게 오랜 동안 관직에 있을 수 있었던 건 모든 사람으로부터 존경받을 만한 높은 인격과 덕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한다.

이 일 이후 나는 차관 같이 거만하거나 아랫사람을 무시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장관처럼 겸손하고 친절하며 아랫사람을 배려하는 자상한 상사가 되리라 결심했다. 그러나 부족한 점이 많아 공직생활을 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오만하거나 아랫사람을 무시하는 처신을 하지는 않았는지 두렵기만 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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