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10.30 05:56
김대식 KAIST 교수 사진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Deutschland, Deutschland über Alles(독일, 독일, 모든 것 위에 있는 독일). 1841년 호프만 폰 팔러슬레벤이 작곡한 독일 국가 1절이다. 물론 가사의 의도는 나쁘지 않았다. 19세기 중반까지 수십개 소수 왕국들에 흩어져 살던 독일인들이 통일된 독립공화국으로 합쳐져야 한다는 뭐 그런 의미였다. 하지만 1, 2차 세계대전을 거쳐 유럽의 악몽으로 변신한 통일독일. 반복된 침략에 시달리던 주변국 국민들에게 독일의 'über Alles'(위버 알레스)는 더 이상 자유의 노래도, 독립의 찬양도 아니었다.

위버('무엇의 위')라는 단어가 해외에 알려진 건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 덕분이기도 하다. 허무주의자였던 그는 현재의 인간을 능가하는 '위버멘슈'(인간 위의 인간)를 추구했고, '위버'는 영어권에서 '무엇을 능가하는' '매우' 같은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위버'(국내에선 '우버'로 통용)라는 이름의 택시 서비스가 관심을 끌고 있다. Airbnb(에어비엔비)를 통해 개인이 소유한 집을 빌려 쓸 수 있듯 위버를 통하면 품질 좋고 안전한 개인 소유의 차와 운전자를 택시같이 사용할 수 있다는 '공유경제(sharing economy)' 사업 모델이다. 공유경제란 무엇인가? 소유 위주가 아닌 자신이 가진 능력과 자원을 필요한 사람과 공유하는 사회가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내가 공유하려는 서비스가 이미 타인의 직업이라면? 택시 기사들 대부분이 위버를 반대하는 이유다. 더구나 노동조합, 최저임금, 안전 장비, 이 모든 것이 공유경제에서는 무의미하다. 어차피 개인이 책임지고, 개인이 원해서 할 테니 말이다. 본인만 원하면 하루 24시간 일할 수도 있고, 본인만 괜찮다면 무보험으로 손님을 태우고 숙박시킬 수 있다.

독립과 통일이라는 19세기 독일의 합리적 목표가 전쟁과 침략으로 끝났듯 공유경제 역시 정부가 규제하는 근무시간도, 사회보장도 없는 그냥 힘없는 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19세기식 사회로 변신하지 않을까 걱정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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