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10.24 13:43
이 글은 남문우(80) 전 검사가 쓴 자서전 ‘나의 삶 이야기’에서 발췌한 것이다. 그는 “내가 세상을 떠나더라도 자식들만은 내가 많은 은인들 도움으로 인생을 살았다는 걸 알아야 할 것 같아 책을 썼다”고 했다. 비매품으로 1000부를 찍었는데, “가난에도 좌절하지 않은 인생 이야기가 감동적이다. 혼자 보기 아깝다”는 지인들의 권유에 최근 두 차례에 걸쳐 각각 500부씩을 더 찍었다. 그의 동의를 받아 책 내용을 발췌해 연재한다.
<편집자 주>


도고온천 약수 덕분에 건강이 어느 정도 회복되어 식사를 조금씩 할 수 있을 무렵인 1960년 가을, 1961년도 대학 졸업 예정자 중에서 국토개발대 요원으로 1500명을 선발해 각 행정부처에 배치한다는 공무원 채용시험 공고가 신문에 났다. 당시 4·19혁명 덕택에 자유당 정권을 무너뜨리고 장면 정권이 들어선 후, 부패하고 무능한 공무원 조직을 개혁하기 위해 처음 시도한 장면 정권의 처음이자 마지막 역점 사업이었다.

자유당 정권에서는 시험을 보아 공무원을 뽑는 제도는 소위 자격시험인 보통고시와 고등고시 뿐이었고, 일반 공무원들은 여당 국회의원 등 소위 실세들의 추천 명함이나 메모를 가지고 뒷문으로 들어가는 길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뒷문으로 들어간 공무원들은 승진을 위해 권력 가진 자에게 아부하거나 돈으로 자리를 사는 매관매직이 성행했다. ‘빽’이면 다 되고, 빽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던 시대였다.

나는 군에서 제대한 후 13회 고등고시를 목표로 무리하게 공부를 하다가 위장병을 얻어 시험을 포기했었다. 겨우 죽을고비를 넘기고 조금 좋아졌으나 그 당시 집안 형편상 내가 고시 공부만을 할 수는 없었다. 나는 1961년 봄에 졸업하면 우선 공무원 시험을 보기로 했다.

병이 완쾌된 게 아니어서 특별히 공부하지 않은 상태로 시험을 봤는데 다행히 1500명 안에 들어 합격했다. 국토개발대 요원 시험을 치른 후 합격자 발표가 나기 전에 대법원에서 법원서기보(현 9급 공무원) 모집 공고가 났다. 대검찰청에서도 대검 중앙수사국을 신설하고 서기관(4급) 4명, 수사관(5급) 10명, 서기(7급) 24명을 뽑는다는 공고가 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 시험도 봤는데 모두 합격했다.

고등고시 합격 때까지 가족들의 생계비를 조금이라도 보태야 하는 나로선 취직이 급했다. 내가 최종적으로 택한 곳은 대검 중앙수사국. 1961년 4월 9일 첫 출근을 했다. 그런데 45일 만에 5·16혁명을 맞았다.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중앙정보부가 생겨 중앙수사국이 하려던 모든 업무를 중앙정보부에서 하게 됐다. 중앙수사국은 탄생한 지 45일 만에 할 일을 대부분 잃고 말았다.

그해 5월 25일 첫 월급을 받던 날, 아내는 시골집에서 둘째 딸 정숙을 낳았다. 그로부터 넉달 뒤 시골집에서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와 단칸방에서 동생들과 함께 살게 되었다. 결혼한 지 8년 만의 일이었다. 그동안 아내는 시골집에서 할머니와 어머니를 모시고 경제적 어려움과 마음 고생을 하면서 힘들게 살다가 비로소 남편과 함께 살게 되었다. 하지만 다시 단칸방에서 다 큰 시동생들과 함께 나의 적은 월급 봉투를 가지고 살림을 꾸려가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

일러스트=김성규 기자
일러스트=김성규 기자

그 때부터 아내의 내조를 받으며 공부를 시작했으나 몸이 완전히 낫지 않아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모든 과목 책을 한번씩 읽어보지 못한 상태에서 14회 고등고시 시험을 봤다. 경험을 쌓자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그런데 신경이 예민해서인지 시험 전날 잠이 오지 않았다. 밤새 뒤척이다가 다음 날 시험장에 앉으니 머리가 띵하고 몽롱하여 답안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오전 시험을 치르고 오후 시간에 형법 과목 시험을 보는데 두번째 문제에 대한 답안을 쓰던 중 나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시험 마감 15분 전에 울리는 종소리에 깨어보니 쓰던 답안지에 침까지 흘리면서 잠을 자고 있었다. 너무 어이없고 당황한 나머지 부랴부랴 답안을 써내려 갔으나 시간이 모자랐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지만 나중에 확인해보니 점수가 괜찮아 열심히 공부하면 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가졌다. 1962년 봄에 실시 예정인 15회 고등고시를 위해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낮에는 사무실에서 책을 읽고 퇴근 후와 휴일에는 아현동에 있던 갱생보호위원회의 빈 사무실에서 공부했다. 그러나 또 낙방.

1962년 9월부터는 정보부로 파견 명령을 받고 경운동에 있는 경제기획원 통계국 2층에 있는 중앙정보부 범죄분석과에서 일하면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낮에는 일하고 일이 없을 때는 서류창고 복도에 책상을 놓고 공부를 했다. 또 직원들이 퇴근한 밤에는 혼자 남아 공부를 했다. 잠도 사무실에서 잤다. 책상을 붙여 놓고 그 위에 요를 깔았고,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에 이불을 치우고 책상을 원래 위치에 옮겨 놓는 일을 반복했다.

그때 가장 큰 고통은 외로움이었다. 직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사무실에서 밤에 혼자 공부할 때의 외로움과 고독감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알지 못할 것이다. 한겨울엔 고독감과 추위라는 이중고에 시달려야 했다.

16회 고등고시는 자신감을 가지고 응시했으나 또 떨어졌다. 시험 명칭이 고등고시에서 사법시험으로 바뀐 후에도 1, 2회 모두 낙방했다. 그 때의 좌절감이란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나마 다행인 건 당시엔 두번 또는 세번씩 사법시험이 있어 기회가 계속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곰곰이 원인 분석을 해봤다.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신경이 예민해 시험 전날 잠을 잘 못자는 것도 큰 문제였다.

앞서 언급했듯이 고시 14회 때는 잠을 못 자고 시험장에 나가 시험 중에 잠이 드는 어처구니 없는 실수로 떨어진 적이 있었다. 15회 때부터는 시험 전날 약방에 가서 수면제를 사서 억지로 잠을 청하기도 했는데, 악몽을 꿀 때가 많았다. 그러면 아침에 일어나도 밤새 잠을 안 잔 것 같이 머리가 무거워 시험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래서 사시 제3회 시험 전날엔 약방에 가서 이런 사정을 얘기하고, 부작용 없는 수면제를 달라고 했다. 약사는 좁쌀만 한 알약을 주면서 “잠자기 30분 전에 먹으면 잠을 편히 잘 것”이라고 했다. 그날 편하게 잠들었다. 효과를 본 덕분인지 다음날엔 약을 먹지 않고도 잠에 들 수 있었다. 아마도 잠을 자야 한다는 강박이 시험 전날 수면을 방해한 듯했다.

덕분에 나는 1964년 8월 20일 드디어 제3회 사법 시험 합격자 10명 중에 내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투병생활을 하면서 고시공부를 시작한 지 사년 만이었다. 32살, 늦은 나이에 얻은 합격 소식이었다. 내 뒷바라지를 위해 온갖 고생을 하면서 나 이상으로 사법시험 합격을 고대하던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중에 집에서 아내와 얼싸안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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