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10.23 05:27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마치 공상과학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소리 없는 시소, 웃음 없는 목마, 아이들 없는 그네만 텅 빈 아파트 놀이터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그 많던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물론 영어·수학·논술·중국어 학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것이다.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미래를 준비하고.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 그렇다면 아이들의 웃음으로 가득 찬 놀이터 대신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고 있는 것일까?

얼마 전 만난 대기업 임원 한 분이 말씀하셨다. 말단 직원으로 근무할 때 가장 중요한 능력은 지식과 팩트였지만, 지금은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 결국 인간관계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하지만 친구들과 맘껏 놀아보지도 못한 대한민국 아이들은 타인과의 관계를 배울 수도, 경험할 수도 없다. 결국 아이의 미래를 위해 놀이터를 희생하는 대한민국 부모들은 아이를 임원이 아닌 말단 직원으로 키우고 있다는 말이다.

인간의 뇌는 절대적 가치를 인식할 수 없다. 상황, 문제, 필요성에 따라 인식의 폭을 재구성할 뿐이다. 무엇이 가장 좋고 무엇이 가장 나쁜지를 정한 후 나머지 가치들을 재배치한다. 그것이 바로 '개인의 생각과 삶의 폭'이다. 놀이터, 소설책, 사랑. 모든 걸 포기하고 오로지 공부와 시험만을 반복하는 대한민국 아이들. 그들에게 '삶의 폭'이란 어쩌면 A+에서 D-까지 정도일 수도 있다. 성적이 좋으면 모든 게 용서되지만, 성적이 나쁘면 이 세상 그 무엇도 위안이 될 수 없는.

세상의 폭은 물론 무한에 가까울 정도로 넓고 다양하다. 전교 일등을 하더라도 겸손한 전 세계 최고 천재들을 직접 경험한다면 자신도 스스로 겸손해질 거고, 아프리카에서 깨끗한 물 한 모금 없어 죽어가는 신생아들을 경험한다면 D-에 좌절하지 않을 것이다. 삶과 세상의 진정한 폭을 알게 된다면 대한민국 아이들 역시 드디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행복할 수 있을지 알게 될 것이고, 자신이 원해서 하기에 이 세상 누구보다 더 잘해야만 대한민국에도 미래가 있을 것이다.

김대식 | KAIST 교수·뇌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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