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10.22 05:34

[9] 게장

죽찰 사진
2009년 충남 태안 해역에서 발굴된 고려시대 선박 마도 1호선에 실려 있던 죽찰(글을 적은 대나무 조각)에서 게장을 뜻하는 '해해(蟹醢)'라는 글자가 발견됐다.〈사진〉 국내에서 현재까지 확인된 게장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원래 가을 별미인 게장은 해장(蟹醬), 해장(蟹腸), 해해(蟹醢), 해서(蟹胥), 해황(蟹黃) 등 다양하게 불렸다. 17세기 중반 쓰인 한글 조리서 '음식디미방'에는 소금물로 담근 '게젓(소금게장)'과 간장으로 담근 '약게젓(간장게장)'이 나온다. 약게젓은 "게가 쉰 마리 정도이면 진간장 두 되, 참기름 한 되에 생강, 후추, 천초를 교합(交合)하여 짜게 달여서 식히고, 게를 깨끗이 씻어 이틀 정도 굶겨서 그 국에 담가 익으면 쓴다"라고 나온다. 지금의 간장게장 담그는 법과 거의 같다.

과거 게장은 주로 참게를 사용했다. 조선시대부터 1960년대까지 최대의 참게 생산지는 경기도 파주였다. 파주게 중에서도 월롱면 덕은리 옥석천에서 잡은 게는 임금에게 진상되는(1935년 10월 3일자 매일신보) 명품이었다. '원래 게장은 특별한 풍미가 있는 음식으로 술상에 밥상에 없으면 안될 진미가 되였으나 실상은 이 맛있는 음식이 해소와 혈담을 자아내는 토질(디스토마)의 원인'(1924년 5월 2일자 동아일보)이 된 탓에 일제는 1924년 참게의 어업과 판매를 전면 중단한다. 파주 주민들의 10년에 걸친 진정으로 1934년에 참게 식용이 다시 허락되면서 간장게장을 통조림에 넣어 판매하는 등 위생이 강조된다.

게장은 가을 특히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10일 23일 무렵) 직전 암게를 최고로 쳤다. 상강 무렵 암게의 게딱지 안에 생기는 노란 내장을 '장(腸)'이라고 불렀다. 싱싱한 장과 오래된 진간장이 섞여 발효된 게장을 햅쌀밥에 비벼 먹는 것은 가을 미식(美食)의 정점이었다. 196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충분히 숙성되지 않은 참게로 담근 게장 때문에 디스토마가 다시 사회문제가 되자 바다 꽃게를 이용한 간장게장이 본격적으로 식탁에 오른다.



박정배 | 음식칼럼니스트·'음식강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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