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10.20 08:23 | 수정 : 2014.10.20 08:29
스포츠맨으로 알려진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우리의 대법원장에 해당하는 북한 최고재판소장에 스포츠맨 출신 박명철 전 체육상을 임명했다. 박명철은 법(法)의 法자도 모르는 스포츠맨 출신으로, 이번 인사는 김정은식 ‘난폭 인사’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올해 4월 최고인민회의 13기 1차 회의에서 최고재판소장에 임명된 박명철은 조선체육대학 체조경기과 출신이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평양시 체육선수단 등 선수단 단장을 지내다 1998년 체육상에 임명됐고 1999~2004년 내각 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그후 2004년 장성택 계열로 숙청됐다가 2009년에 복귀돼 8개월간 국방위원회 참사를 지냈다.
북한 체육상을 거쳐 최고재판소장에 오른 박명철.
북한 체육상을 거쳐 최고재판소장에 오른 박명철.
김정은이 후계자로 공식 등장한 2010년 9월 체육상에 임명됐고 조선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을 맡는 등 평생을 체육계에서 활동한 인물이다. 조선체육대학 출신의 한 탈북자는 “박명철의 대학때 별명이 ‘돌대가리’였다”며 “공부와는 담을 쌓은 인물이기 때문에 입학때부터 졸업때까지 전과정 낙제점을 맞았다”고 했다. 그런 박명철이 출세하게 된 것은 장인과 아버지 덕이다. 장인은 일본 프로레슬링의 황제로 불리던 역도산(김신락)이었으며 아버지는 김일성과 인연이 깊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명철의 부친 박정식은 1945년 해방 당시 평양에만 여러 채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양복점을 운영하고 있던 사업가였다고 한다. 박정식은 김일성에게 지금의 북한 노동당 창건기념관인 3층짜리 건물을 바치고 양복도 지어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공로로 박정식은 북한의 초대 재정상을 지냈고 1948년 귀순형식으로 한국에 침투해 국회의원까지 하며 대남공작활동을 하던 중 6·25전쟁 이후 북한군의 서울 점령 이틀 전 체포되어 사형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박명철은 1950년대 아버지 박정식이 남한으로 월남한 반동분자라는 죄명을 쓰고 양강도로 추방됐다. 그러다가 1960년에 김일성이 박정식의 행적을 소개하며 가족을 데려오라고 지시하면서 박명철은 평양에 올라갈 수 있었다고 한다. 김일성이 박명철에게 “뭘 하고 싶냐”고 묻자 “운동을 하고 싶다”고 대답해 조선체육대학에 보내졌다고 한다. 아버지 덕분에 출세한 박명철은 역도산의 딸과 결혼하면서 다시 한번 인생의 황금기를 맞이 하게 된다.
북한 노동신문은 작년 12월 31일자 1면에 김정은이 완공된 마식령스키장을 돌아보고 있는 사진을 게재했다. 수행자 중 숙청된 장성택의 측근이었던 박명철(가운데 맨뒤 모자 안쓴 사람)의 모습도 보인다.
북한 노동신문은 작년 12월 31일자 1면에 김정은이 완공된 마식령스키장을 돌아보고 있는 사진을 게재했다. 수행자 중 숙청된 장성택의 측근이었던 박명철(가운데 맨뒤 모자 안쓴 사람)의 모습도 보인다.
김일성·김정일 시대 북한 스포츠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를 차지했던 박명철은 김정은에 의해 최고재판소장에 임명됐다. 김일성·김정일 시대에는 최고재판소장을 노동당 출신 인사가 맡았으나 김정은은 법과는 전혀 상관 없는 스포츠맨을 최고재판소장에 앉혔다. 북한에서 재판소와 검찰소 등 사법기관은 노동당의 사법정책을 집행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강력한 무기'로서, 시키는 역할만 하면 되기에 전문지식과 법무 능력은 필요 없다고 하지만 사법기관 최고수장을 스포츠계 인사가 맡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는 김정은체제 들어 북한 사법부의 거수기 역할이 더 강화된 것으로 해석된다.

김정은의 농구코치인 최부일 인민보안부장은 최고인민회의 법제위원장 자리까지 꿰찼다. 스포츠맨으로 알려진 김정은이 개인적 취향을 넘어 스포츠를 정치에 적극 활용하고 있는 모습이다. 문학·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김정일이 음악정치·예술정치를 했다면 김정은은 스포츠로 국가를 리드해 가고 있다.
일본에서 활동한 프로레슬러 역도산.
일본에서 활동한 프로레슬러 역도산.
강원도 마식령 스키장, 평양 문수물놀이장, 평양 미림승마구락부, 평양 국제축구학교, 체육인 전용 아파트 등을 건설하는 한편 전국 각지에 수영장, 배구장, 롤러스케이트장을 조성하고 다양한 체육경기를 수시로 열고 있다. 인천아시안게임에서 국가별 종합순위 7위의 좋은 성적을 거두고 귀환한 북한 선수단은 수십만 평양 시민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김정은·리설주 부부를 만났다. 김정은이 스포츠에 관심을 돌리는 것은 경제강국은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지만 스포츠는 아시안 게임에서 금 11개를 따고 7위까지 들어가는 등 단번에 좋은 성과를 거두는 등 반짝 효과를 올릴 수 있기에 지도자의 업적을 과시하기 좋은 분야이기 때문이다.

히틀러와 구 소련· 동독 등 전체주의 국가들도 모두 올림픽과 같은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체제 우월성을 드러내려고 했다. 김정은이 데니스 로드먼을 평양에 불러들여 농구경기를 벌인 것도 스포츠 정치외교의 일환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김정은이 체육 경기에서 아무리 성공한다해도 북한 정권이 억압적인 독재체제이며 북한 주민들이 고통스러운 삶과 암울한 미래로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감출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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