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10.17 13:42
이 글은 남문우(80) 전 검사가 쓴 자서전 ‘나의 삶 이야기’에서 발췌한 것이다. 그는 “내가 세상을 떠나더라도 자식들만은 내가 많은 은인들 도움으로 인생을 살았다는 걸 알아야 할 것 같아 책을 썼다”고 했다. 비매품으로 1000부를 찍었는데, “가난에도 좌절하지 않은 인생 이야기가 감동적이다. 혼자 보기 아깝다”는 지인들의 권유에 최근 두 차례에 걸쳐 각각 500부씩을 더 찍었다. 그의 동의를 받아 책 내용을 발췌해 연재한다.
<편집자 주>


나는 1957년 6월 5일 학도병으로 군에 입대해 1년 6개월의 단기복무(당시 학생 현역병에게는 단기복무 혜택이 있었음)을 마치고 1958년 11월 30일 귀휴명령(실제 제대 일자는 1959년 5월 20일)을 받고 다시 사회로 돌아왔다. 당시 우리 시골집엔 할머니, 어머니, 아내가 어린 딸을 데리고 살고 있었고, 서울에는 대학에 다니는 두 동생과 야간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동생이 고학을 하며 자취생활을 하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내게 학업보다는 돈을 버는 것이 급했다.

제대 후 몇 달간 동생들과 같이 살면서 외판원 등 돈벌이를 열심히 했다. 그러나 하루 종일 돌아다니면서 일을 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렇게 매일 노동이나 하며 젊음을 보내면 내 꿈은 언제 이루나’ 하는 생각에 막막했다. 잠을 설칠 때도 많았다. 그래서 하루는 결심을 하고 동생들에게 말했다. “나는 사법시험에 합격해 판·검사하는 것이 꿈인데 이렇게 지내면 영영 내 꿈을 이룰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시골로 내려가 사법시험 공부를 할 테니 너희들끼리 열심히 살아라.”

그해 가을 공주시 유구면 문금리 처가로 책을 싸 들고 가서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엔 처가 윗방에서 하루 종일 틀어박혀 책을 읽었는데, 동네 아줌마들이 놀러 와 안방에서 장모님과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들려 공부를 제대로 못했다. 그래서 처가에서 약 1km 떨어진 조용한 집에 방 한 칸을 얻어 그 곳에서 공부를 하고 식사시간에만 처가에 와서 밥을 먹었다.

겨울에는 해가 짧기도 하고 점심시간에 1km나 되는 처가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 오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아예 점심을 건너뛰고 저녁식사를 하는 경우가 늘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먹다 저녁을 먹으니 과식할 때가 많았다. 결국 그해 겨울 위장병에 걸리고 말았다. 1959년 봄 온양온천에 있는 병원에 가서 진찰을 한 결과 ‘위하수(胃下垂)’라는 진단을 받았다.

돈이 없어 병원에는 못 가고 집에서 민간요법으로 위장병에 좋다는 약을 먹었으나 별 효험이 없었고 오히려 병세가 더욱 악화되었다. 도저히 여러 시간 앉아 공부할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하고 소화도 안 되었다. 통증과 싸우면서 숙소를 처가에서 좀 더 가까운 사촌 처남집으로 옮겨 새로운 마음으로 13회 고등고시 시험을 목표로 책을 읽었으나 점점 통증이 심해져 책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시 1960년 여름 서울대학교 부속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는데 의사는 ‘악성 위궤양’이라며 수술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선고를 했다. 당시 우리 집에는 할머니와 어머니를 비롯하여 일곱 남매 등 11명의 식구들이 있었다. 전 재산이라고는 2000평정도 되는 전답이 전부였는데 위장수술을 받으려면 논 밭 중 하나를 팔아 수술비를 마련해야 할 형편이었다. 나 하나 살자고 온 식구의 생명줄이 걸린 땅을 팔 수는 없었다.

또 당시 의학수준으로는 위장수술은 성공해야 3년 내지 5년 더 산다고 했다. 식구들의 생명줄인 전답을 팔아서라도 내 명줄을 3년 더 연장해야 하는가. 절대로 그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의사에게는 시골에 가서 수술비 마련해 가지고 다시 오겠다고 거짓말을 하고 이번에는 처가가 아닌 아산시 도고면 시전리 나의 집으로 내려왔다.

일러스트=김성규 기자
일러스트=김성규 기자

그렇지 않아도 왜소한 체격에 먹지도 못하여 바짝 말라 고향에 내려온 나를 보고 할머니와 어머니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내는 말도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어머니께서 “젊은 여자가 옆에 있으면 병이 안 나으니 너는 네 남편 병 나을 때까지 친정에 가 있어라”고 하는 바람에 아내는 병간호도 못하고 어린 딸을 데리고 친정으로 갔다. 나는 어머니의 지극한 간병을 받으며 다시 투병생활을 시작했다.

몸은 더 쇠약해져 갔다. 지팡이 없이는 걸을 수도 없을 정도였다. 비록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큰 꿈을 안고 남들이 들어가기 힘들다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해 졸업을 눈 앞에 두었는데 그 꿈을 펴 보지도 못하고 이제 연만하신 할머니와 어머니, 시집와서 하루도 웃어 본 날 없이 고생만 하던 아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딸, 그래도 못난 맏형을 의지하고 살았던 동생들을 남긴 채 이젠 죽는구나 생각하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때 계시라도 받은 듯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 집에서 4km쯤 떨어진 도고 온천수가 위장병에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떠올랐던 것이다. 옆방에서 자고 있는 여동생을 깨워 집에서 1km쯤 떨어진 곳에 사는 육촌 동생 남달우(당시 19세)를 지금 당장 데려오라고 했다.

잠시 뒤 도착한 달우에게 부탁을 하나 했다. “내일 새벽부터 도고 온천에 가서 온천수를 마시려고 하니 새벽에 와서 나를 좀 업고 다녀줘라.” 동생은 선뜻 응했다. 그 다음날부터 새벽에 육촌 동생의 등에 업혀 4km나 떨어진 도고온천에 가서 온천수를 마셨다.

지금은 그 개울을 콘크리트로 막아 물이 솟아오르지 않지만 그 당시에는 도고온천 옆 개울에서 따뜻한 물이 솟아올랐고, 계란 썩는 냄새가 날 정도로 유황성분이 많았다. 도고 온천수는 냄새 때문에 비위에 안 맞는 사람은 한 잔도 마시지 못하지만 냄새가 싫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마셔도 배가 부르지 않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나는 다행히 그 냄새가 좋아 많이 마실 수 있었다.

그렇게 한달이 지났을 무렵, 동생 등에 업혀 도고온천수를 마시고 오는 길에 내 몸에 힘이 생긴다는 느낌이 들었다.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 병이 다 나은 것 같아 동생에게 “네 덕택에 나는 다시 살았다. 이젠 나 혼자 다닐 수 있으니 오지 마라”고 말하고는 다음날부터 혼자 온천수를 마시러 다녔다. 시간이 지나면서 몸은 회복됐다. 온천수를 마시고 집으로 뛰어 올 때도 많았다. 위장병은 그렇게 거의 완치 단계에 이르렀다. 나는 다시 내 꿈을 펼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지금은 도고온천에 고급 호텔과 콘도 등 빌딩이 들어섰고, 약수가 솟아오르던 개울은 콘크리트 바닥으로 변했다. 그래도 나는 내게 새 삶을 준 도고의 온천수를 영원히 잊을 수 없다. 지금도 그 계란 썩는 냄새가 마냥 그립기만 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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