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10.08 13:47
몇 달 전이다. 외출에서 돌아오니 책상에 메모가 몇 장 붙어있다.
“000씨 전화요망”

한동안 우리 회사 전화기에 불이 날 정도로 연락을 많이 하는 60대 남성분이다. 사별한 지 5년 되었는데, 최근 막내 아들을 결혼시키고 부모로서 할 일을 다했다며 이제는 자신의 행복을 찾고 싶다고 나를 찾아온 분이다.

최고 명문대 공대를 졸업한 엔지니어로 전자 제품 회사 중견 간부로 퇴직했다. 자기 명의의 집이 있기는 하지만, 퇴직금은 두 아들의 유학과 결혼 자금으로 거의 다 썼고, 남은 돈으로 그럭저럭 생활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두 아들을 잘 키웠다는 것, 그리고 자기 학벌에 대한 프라이드가 대단한 분이었다. 그분은 나이 차이 많이 나고, 인상 좋은 여성을 만나고 싶어했다. 점잖게 생기고 학벌이 좋으니 만남을 원하는 여성들이 있기는 하지만, 4살에서 7,8살 터울의 평범한 여성들로 본인의 이성상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실제로 내가 그분에게 소개한 여성 또한 일찍 사별하고, 식당 운영으로 자식들을 키운 50대 후반의 후덕한 인상을 가진 분이었다. 물론 남성쪽에서는 난리가 났다.
“이대표. 어떻게 그런 사람을···.”
“선생님. 웬만큼 자기 인생 개척하고 살아본 분들에게 학벌은 큰 관심사가 아닙니다.”
“아무리 그래도 수준이라는 게 있는데···.”
“선생님이 원하는 여성들은 선생님을 원하지 않는다는 게 어려운 부분입니다.”

사실 그랬다. 젊었을 때처럼 활동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빠듯하게 살면서까지 굳이 남성을 만나려는 여성은 거의 없다.
“그래도 내가 원하는 걸 좀 맞춰주면 좋을텐데요.”
“알뜰하고 성실하게 살아왔고, 노후 준비가 어느 정도 된 분이고, 그분은 남편이라는 울타리가 필요한 거고, 그래서 남자 덕 보고 살겠다는 분 아니라서 선생님께 부담이 안되는 점에서 선생님께 꼭 필요한 분인 것 같습니다.”
“생각해줘서 고마운데, 내 생각과 너무 달라서···”

그리고는 이후 연락이 없다.
그 남성은 젊은 시절에는 최고 학벌로 좋은 대우를 받고 살아왔겠지만, 그건 자기 만족일 뿐이다. 혼자 그런 추억에 젖어 살 것이 아니라 이성을 만나 여생을 함께 할 계획이라면 현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여성들도 학벌만 좋은 남성은 만나려고 하지 않는다.
60대 재혼 시장에서도 최고의 갑은 재력./일러스트=이철원 기자
60대 재혼 시장에서도 최고의 갑은 재력./일러스트=이철원 기자
공교롭게도 그 분과 비슷한 시기에 내게 소개를 부탁한 60대 남성이 둘 더 있었다. 요즘 이렇게 5~60대, 특히 60대 이상의 고객들을 만나는 일이 많아졌다. 결혼정보회사가 대중화되면서 고객층이 저변 확대된 부분도 있고, 개인의 행복추구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이제라도···”라면서 자발적으로 재혼 내지는 이성교제를 원하는 5~60대 싱글들이 수면 위로 부상한 것이다.

최근 들어 각기 다른 조건을 가진 60대 남성 3명을 연달아 만나면서 이 연령대의 이성상은 젊은 세대와 어떻게 다른지, 나이가 들면 어떤 남성이 킹카일지를 생각해보았다. 60대 중반의 남성B씨는 공기업 임원 출신이다. 최고 학벌은 아니지만, 라이센스가 있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고, 자기 명의의 집도 있다.

“이대표. 나 정도면 재혼상대로 수준이 어떻습니까?”
본인은 내 대답이 궁금한 눈치는 아니었다. 자식이 장성했으니 신경쓸 일 없고, 사는 거 어렵지 않고, 외모도 아직은 봐줄만 하고, 여자들이 싫어할 스타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듯했다.

“무난하십니다. 상황이 안정적이시니까요.”
“다른 건 몰라도 나이가 좀 적었으면 하는데···.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정도?”
“예? 그럼 적어도 10살 이상 차이가 나는데요.”

나름대로 품위가 있고, 아직 현역이니 여성을 만나는 데 웬만큼 조건이 충족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안정권은 아니다.

“여성들이 그 정도 나이차이 나는 만남을 갖는다는 건 단순한 호감만으로는 안됩니다. 그분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점이 있어야지요.”
직업이 안정적이긴 하지만, 언제까지 일을 할 수 있는지 불확실하고, 은퇴 후의 삶도 불확실하다. 현재의 생활수준이 계속 이어질지 장담하지 못하기 때문에 만남에는 변수가 있다.

어쩜 오늘 얘기의 주인공은 C씨일 것 같다. 60대 중반으로 외적인 부분은 직설화법으로 표현하면 열악하다. 여성들이 기피하는 대머리, 키도 165cm가 될까 말까다. 나이보다 노안이고, 모공이 커서인지 피부도 안좋다. 거기다가 학벌이 고졸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외모와 학벌 때문에 피해를 많이 봤다고 한다. 본인은 생활력이 강하고, 성실해서 열심히 사는데, 여자들이 몰라줬다고 했다. 결혼도 어찌어찌 만난 여자와 대충 했고, 몇 년 만에 아이 둘을 떠안은 이혼남이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반전이다. 손재주가 좋고, 머리가 좋은 그는 부품을 만드는 제조업을 했는데, 특허를 받게 되어서 회사가 급성장을 한 것이다. 2-3년마다 규모가 2배로 커져서 지금은 직원이 수백명이나 되는 중견 기업이 되었다. 한창 어려운 시절에 아이들을 제대로 키우지 못해 자녀는 2년제 지방대학을 겨우 나왔는데, 아버지 회사에서 자기 몫을 하면서 성실하게 살고 있다. 이제 걱정이라면 20년 이상 혼자 있다 보니 사는 재미가 없는 것, 그래서 재혼을 조심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사는 게 바빠서 여자는 거의 잊고 살았습니다. 지금도 늦지 않은 거지요? 좋은 분 있을까요?”
물론이다. 누구는 학벌을 보고, 누구는 외모를 보듯 누구는 경제력을 본다.
“돈만 보는 사람 싫습니다.”
“네. 돈이 만남의 조건이 될 수는 있지만, 느낌이 있어야지요. 회사 사장 소리 들으면서 30년 가까이 사신 분 아닙니까? 그 내공이 만만치 않아 보이십니다. 사장님은 여성들이 돈만 보고 만날 그런 분은 절대 아닙니다.”

C씨 역시도 대부분의 60대 남성들이 그렇듯이 나이 차이가 나는 여성을 원했다. 그러면서도 그런 여성들이 있을지 그는 반신반의했다.
뚜껑을 열어 보니 그를 만나겠다는 여성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젊은 시절에는 그렇게도 만남이 어렵더니 이제는 여성들이 선호하는 준비된 남성이 되었고, 선택하는 입장이 되었다. 20대에는 학벌이 중요했고, 30대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직업의 중요성이 커진다. 하지만 60대가 되면 현재의 성취가 중요하다. C씨는 이성으로서의 매력은 떨어지지만, 성공한 남성의 품격이 있었다. 그건 꼭 그가 돈 많이 버는 기업체 사장이라서가 아니었다. 오늘을 열심히 사는 사람이 갖는 그런 매력적인 모습이었다.

세 남성을 소개한 결과, 학벌이 좋은 A씨는 15명, 직업이 좋은 B씨는 20명, 경제력이 있는 C씨는 50명 가량의 여성이 오케이했다. C씨에게 추천된 여성 50명 중에서 남성의 조건이 괜찮다면 나이가 10살, 때로는 15살 이상 차이가 나도 만나겠다는 여성은 10명, 20% 정도였다. 그 조건은 일반적으로 학벌, 직업, 경제력인데, 3가지 중 가장 우선시되는 것은 경제력이었다.

젊은 세대에게는 많은 가능성이 있다. 지금은 가진 게 없더라도 성취할 시간이 많다. 하지만 50대 이후에는 현재를 잘 관리해야 한다. 왕년에 어땠다는 생각은 현재의 결핍상황에 대한 변명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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