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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장으로 간 '토크'...토크 콘서트에 왜 사람들이 몰리나

입력 : 2014.10.03 11:00
“남편한테 아이들 맡기고 3년 만에 외출해요.”
“암과 싸우고 있는 엄마 모시고 가려고 합니다.”
“사춘기 아이 손 잡고 갈 겁니다.”

비장한 각오로 특별한 외출을 선언한 이들이 가려는 곳은? 강연장을 주름잡던 강사 김미경이 처음으로 도전한 토크콘서트장이다. 무슨 대단한 ‘토크’이기에 이들은 한두 달 전부터 비싼 티켓을 예매해 놓고 거사를 기다리듯 공연 날을 기다리는 것일까.

이뿐이 아니다. 살림 9단의 주부들이 “남편•시댁 잊고 화끈하게 놀아보자”면서 집단 반란을 도모하는 현장이 있다. 반란의 집결지는 연예계의 마당발 박경림의 토크콘서트장이다.

음악 전용무대로 알고 있던 콘서트장을 ‘토크’가 속속 접수하고 있다. 아이돌 가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화려한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마이크 하나 들고 ‘토크’만 주고받는 콘서트에 사람들이 앞다퉈 지갑을 열고 있다. 티켓 값도 웬만한 가수 콘서트보다 비싸다. 5만원 안팎에서 비싼 것은 10만원을 호가한다. ‘토크콘서트’가 새로운 장르로 떠오르면서 대한민국 ‘말발’들이 토크콘서트 무대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대표 도전자는 김미경과 박경림이다. 김미경의 톡앤쇼(TALK & SHOW)는 오는 10월 10일부터 25일까지 서울 삼성동 KT&G 상상아트홀에서 ‘나 데리고 사는 법’이라는 제목으로 17일간 공연을 이어간다. ‘여자를 위한, 여자에 의한 신개념 토크쇼’를 내세운 박경림의 ‘여자들의 사생활’은 오는 10월 1일부터 5일까지 이화여대 삼성홀에서 총 5회 관객과 만난다.
공연장으로 간 '토크'...토크 콘서트에 왜 사람들이 몰리나
김미경씨는 주간조선에 “인터파크와 YES24를 통해 티켓 판매를 시작한 첫째 날과 둘째 날에만 2500장이 예매됐다. 콘서트 티켓 판매 순위 1위를 차지해 나도 깜짝 놀랐다. 포항에서 여수에서 단체로 버스 대절해 올라오겠다는데 큰일났다”면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려고 쳐다보지도 않던 피아노에 앉아 연습하느라 정신없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공연을 앞두고 있는 박경림씨도 전화 인터뷰를 통해 “700석 규모 5회 공연 중 한 회분은 매진이고 두 회분도 거의 매진을 앞두고 있다. 기대 이상이다. 공연에 앞서 9월 15일 맛보기로 프리뷰 공연을 했는데 사람들의 호응이 뜨거워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그동안 토크콘서트의 대표주자는 김제동이었다. 2009년 서울 혜화동 대학로에 있는 소극장 ‘이랑씨어터’에서 시작해 매년 전국투어를 하면서 공연을 이어오고 있다. 올해 초까지 시즌 5를 마친 ‘김제동 토크콘서트 노브레이크’는 이미 ‘브랜드’가 됐다. 첫 회 전석 매진을 시작으로 ‘시즌 5’까지 총 197회 공연에 21만3400명의 관객을 불러 모았다. 김제동의 소속사 디컴퍼니의 윤도현 대표는 최근 자신의 앨범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소속 연예인 중 김제동이 가장 매출을 많이 올려준다”는 발언을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방송 출연도 많지 않고 CF에서도 보기 힘든 김제동 수입의 원천이 토크콘서트이다. 2009년 3만3000원이던 입장료가 ‘시즌 5’ 때는 7만7000원까지 올랐지만 매 시즌 티켓 판매가 시작되기 무섭게 불티나게 팔린다. 시즌마다 공연장의 규모도 커졌다. 대학로 소극장 300석에서 시작해 1000~2000석 객석도 부족해 미어터진다. 김제동 콘서트는 올 12월에도 ‘시즌 6’으로 관객몰이를 할 예정이다.

사람들은 왜 토크콘서트장으로 몰리는 걸까. 언제부터 대한민국은 ‘토크’에 목말랐던 것일까. 김미경씨는 “강연장에서는 말이 일방통행이지만 공연장으로 가면 쌍방향이 된다. 객석과 무대 구분 없이 같이 이야기하고 같이 웃으면서 소통할 수 있다. 이게 토크콘서트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다”고 말했다. “10년 전이라면 사람들이 토크콘서트를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강연 등을 통해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면서 ‘말’을 듣는 데도 돈을 낼 준비가 됐다고 본다. 책을 사보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말’도 글을 압축한 것만큼 나한테 뭔가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공연장에 왔다는 것은 내 시간과 돈을 투자한 것이다. 그만큼 듣고 싶은 욕구가 강렬하다는 뜻이다. 문화에도 공연에도 사람들의 마음이 많이 열렸다. 강연 같은 경우 내 마음을 안 들키고 조용히 듣고 가지만 콘서트는 공연적인 요소가 많기 때문에 사람들이 마음을 내려놓기가 훨씬 편한 것 같다.”

박경림씨도 “이해받고 싶고 위로받고 싶은 마음 때문에 돈을 내고 ‘토크’를 보러 오는 것이라고 본다. 노래나 음악을 통해 마음을 치유받을 수 있지만 말을 통해 소통할 수 있다는 기대감은 또 다른 것 같다.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나 블로그, 홈피, 카페 등 온라인 대화만 나누던 사람들이 직접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더 깊은 공감을 주고받고 싶어 한다. 그만큼 진짜 대화가 그리웠던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박경림의 토크콘서트 프리뷰 공연
박경림의 토크콘서트 프리뷰 공연
‘토크의 끝장’을 보여 주겠다는 김제동의 토크콘서트에 다녀온 관객들이 인터넷에 남긴 공연 후기를 보면 사람들이 ‘토크콘서트’에서 뭘 원하는지 알 수 있다.
‘사람이 그리워 그의 공연을 보러 갔습니다. 오랜만에 사람 냄새 나는 사람다운 사람을 만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진솔한 이야기들로 유쾌한 웃음과 깊은 위로를 얻은 콘서트였습니다.’
‘혼자 떠드는 콘서트가 아니라 소통하고 공감하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다음에 부모님도 꼭 보여드리고 싶은 공연입니다.’
‘웃고 울고, 진정한 힐링을 얻었습니다.’

관객의 공연 후기 내용은 비슷하다. 김제동은 토크콘서트를 시작하면서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없다. 여러분이 있는 곳이 무대고 제가 있는 곳이 객석이다”는 말로 공연을 시작하곤 한다. 무대•객석 경계 없이 하나가 돼서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하고, 배꼽 잡고 웃다 보면 옆 좌석의 관객 또한 나처럼 외롭고 힘들구나 하는 동질감이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는 것이다. 재구매율도 높다. “웃겨서 죽일 수도 있다”고 큰소리치는 김제동을 다시 보기 위해 다음 시즌을 손꼽아 기다리고, 가족과 함께 친구와 함께 다시 공연장을 찾는다. 대중가수나 음악 콘서트와는 다르게 관객 층도 넓다. ‘인터파크 티켓’에서 집계한 김제동 콘서트 예매자 연령별 집계를 보면 20~40대가 고루 분포돼 있고 10대, 50대도 5% 안팎의 수치를 보이고 있다.

뮤지컬, 콘서트의 홍보를 맡고 있는 ‘㈜창작컴퍼니다’의 최미나 대표는 “대중가수의 콘서트는 그 가수의 팬들이 관객의 90%를 차지하는 반면 토크콘서트는 내가 박경림의 팬이 아니라도 김미경의 팬이 아니라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폭이 넓다. 그래서 직장, 모임 단위의 단체 관객이 많다. 토크콘서트 무대에 서고 싶어 하는 연예인이 많지만 웬만한 내공이 아니고서는 도전하지 못한다. 2~3시간을 한 사람이 끌고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김제동•김미경•박경림 토크의 성격도 각각 다르다. 김제동은 폭넓은 지식을 통해 재미와 감동을, 박경림은 여자들의 스트레스 해소를, 김미경은 고민 해결과 희망을 말한다. 누적관객수 220만명을 자랑하는 컬투쇼는 개그콘서트에 가깝다”고 분석했다.

토크콘서트의 수요는 늘었지만 김제동, 컬투처럼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화하기는 쉽지 않다. 15년 만에 다시 토크콘서트에 도전하는 박경림씨는 “가수 콘서트 진행을 쫓아다니다 보니 내 콘서트를 하고 싶어 1999년 서울 대학로에서 토크로 콘서트를 시도했다. 국내 처음이라고 들었다. 주변에서 ‘미쳤다고 돈 주고 토크 들으러 오겠느냐’는 반응이었다. 다행히 입석까지 들어올 정도로 성공했지만 어려서 겁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결혼을 하고 나이가 들수록 다시 토크콘서트에 도전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라디오 ‘두시의 데이트’를 진행하고 주부로 7년째 살다 보니 주부의 마음을 누구보다 이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주부들에게 그들만의 시간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주부들한테 이런 기획을 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많이 들었다. 시즌 2, 시즌 3으로 이어가고 싶은 욕심이 있지만 사람들이 원해야 가능한 일이다”고 말했다.

‘내 편 아닌 남편•시월드 스트레스로 문드러진 속을 시원한 욕으로 날려주겠다’고 나선 박경림은 ‘실컷 웃어본 적이 언제인가? 아무 눈치 안 보고 신나게 놀아본 기억은 있느냐?’고 묻고 아내, 엄마, 딸, 며느리가 아닌 몇 시간만이라도 ‘여자’가 되어보라고 외친다.

수천 명의 관객을 휘어잡으며 ‘국민강사’로 불렸던 김미경은 수백 명의 소극장 공연이 훨씬 긴장이 된다고 했다. 김미경씨는 “일방적인 강연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관객 속으로 뛰어들어가 그들의 숨소리를 느끼고 감정을 교류하고 싶었다. 강연장의 말이 맨몸이라고 하면 공연장에서는 말에 옷을 입히는 것이다. 다양한 도구와 연출로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관객의 리액션을 순간순간 캐치하고 이어가려면 굉장한 에너지와 노하우가 필요하다. 40대였다면 아마 엄두를 못 냈을 것이다. 50대가 되면서 남녀노소를 아우르면서 그들의 인생을 공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도전하고 싶었다”면서 “토크쇼를 계속 이어가고 싶다. 관객과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공연 수를 늘리더라도 규모는 300~400석의 소극장을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수천 명의 관객을 몰고 다니던 강사 김미경이 소극장 토크콘서트에 도전한다. /이덕훈 조선일보 기자
수천 명의 관객을 몰고 다니던 강사 김미경이 소극장 토크콘서트에 도전한다. /이덕훈 조선일보 기자
김미경씨는 토크의 주제를 ‘꿈, 슬럼프, 행복’이라고 했다. 지금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슬럼프를 경험한 게스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힘을 주고 싶어서 인맥들을 총동원해 17명의 게스트를 섭외했다고 한다. 음악이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는 반면 ‘토크’는 미래에 대한 단서를 주고 살아갈 힘을 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토크가 콘서트의 한 장르로 자리 잡으면서 다양한 토크콘서트들이 줄을 잇고 있다. 가수 전진, 서문탁처럼 노래에 ‘토크’를 가미하는가 하면 뮤지컬 배우 김호영은 9월 22일 대학로에서 스타들의 스타일 노하우를 함께 나누는 이색 토크쇼 ‘호이의 스타일 매거진 쇼’를 시작했다. ‘패션 잡지를 무대에 올려 놓겠다’는 호이의 토크쇼도 매달 공연을 이어갈 계획이다.

외주제작사 ‘지토패밀리’의 손영곤 대표는 “1~2년 새 토크쇼를 내건 콘서트가 엄청 늘었다. 연예인뿐만 아니라 방송 경험이 있는 의사, 리포터 출신 등도 힐링, 멘토를 콘셉트로 토크콘서트를 열고 있다. 수익이 목적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프로모션 창구의 역할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토크’를 찾아 콘서트장으로 몰려드는 시대. SNS로 인터넷으로 말이 쏟아지고 자신의 말을 쏟아낼 수 있는 공간이 넘쳐나고 있지만 진짜 ‘토크’는 공연장에서나 들을 수 있는 것인지. 무대에 선 ‘토크’가 ‘말의 힘’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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