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10.02 05:44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대한민국에 인문학 바람이 불고 있다. 그것도 정말 강하게 말이다. 학생들은 물론이고 CEO, 직장인, 정치인, 전업주부 모두 인문학 콘서트, 인문학 강연, 인문학 캠프에 열광한다. '지금 하는 인문학''계속하는 인문학''너도나도 하는 인문학'…. 물론 반가운 현상이다. 인문학이 무엇이었던가? 무엇이 옳고, 틀리고, 무엇에 진정한 가치가 있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학문이다. 수치스러운 가난과 미개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오로지, 무조건, 앞만 보고 달려야 했기에 '왜?'라는 질문이 허락되지 않았던 대한민국. '왜?'라는 '사치스러운'질문을 우리도 이제는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우리조차 놀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무언가 찜찜하기도 하다. '인문학이 중요하다!'가 어느 한순간 '인문학만 중요하다'로 변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습관처럼 'IT 과학기술 강국'이라고 생각하는 우리. 빠르고, 크고, 눈에 보이는 성과만을 추구하던 '과학기술적'대한민국에 대한 실망에서부터 지금의 인문학 열광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과학 강국도, 대부분 기술의 생산 국가도 아니다. 단지 남들이 만들어 놓은 지식을 소비하고 있을 뿐이다. 과학의 핵심은 과학적 세계관이다. 그게 무엇이었던가? 첫째, 과학적으로 상관관계는 인과관계가 아니다. 둘째, 내 눈에 확실히 보인다 해도 다른 사람 역시 관찰할 수 없다면 과학적으로 무의미하다. 셋째, 아무리 원하는 결과라도 반복된 관찰을 통해 재현할 수 없다면 무의미하다. 넷째, 오래만 기다린다면 정말 신기한 일들도 우연히 벌어질 확률이 있다. 다섯째, 복잡한 설명보다 단순한 설명이 더 좋고, 하나만 설명하는 가설보다 최대한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을 선호한다. 그리고 여섯째, 나의 생각과 믿음 역시 틀릴 수 있다.

인문학에 열광하는 학생, 주부, CEO 그리고 국회의원. 냉철한 논리와 과학적 접근이 빠진 인문학은 개개인의 막연한 믿음과 편견을 우아하게 포장해주는 '인문학 코스플레이'에 불과하다.


김대식 | KAIST 교수·뇌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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