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9.30 05:31

맹렬히 퍼지며 국내 생태계 교란, 남산서 첫 발견 후 외곽으로 번져
'아무리 제거해도 돌아서면 또…' 다른 귀화종과 달리 숲속까지 침범
그런대로 예뻐 한때 일부러 심어… 보이면 즉시 뽑아내는 것이 좋아

김민철 사회정책부 차장 사진
김민철 사회정책부 차장

29일 비에 젖은 서울 남산 야생화공원에서 정상 쪽으로 가는 길목 주변은 마치 눈이 온 듯했다. 허리 높이까지 자란 식물에는 흰색의 자잘한 꽃송이들이 뭉쳐 피어 있었고, 꽃마다 가는 실 모양의 꽃술이 두 개로 갈라져 있었다. 좀 작은 깻잎처럼 생긴 잎은 마주나고 있었다. 생태계 교란 식물인 서양등골나물이었다.

서양등골나물은 길가만이 아니라 음지인 숲 속까지 50m 정도 침범해 있었다. 야생화공원 화단에도 요즘 연보라색 꽃이 한창인 배초향, 막 꽃망울이 생기는 산국 무리 사이로 서양등골나물이 하얀 꽃을 피운 채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잎이 달린 곳마다 가지 갈라지기를 반복해 꽃송이가 많기도 했다.

서양등골나물은 남산만 점령한 것이 아니다. 인왕산·안산·우면산 등 서울 시내와 근교 산에도 무서운 기세로 파고들고 있다. 남산을 관리하는 서울 중부푸른도시사업소 관계자는 "그나마 주기적으로 제거 작업을 하고 있어서 이만한 것"이라며 "번식력이 워낙 강해 지속적으로 제거 작업을 하는데도 돌아서면 또 있고 그렇다"고 말했다. 현재 상황에서는 거의 속수무책인 셈이다.

세계화 추세로 동·식물 이동이 활발해지면서 귀화식물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외국에서 들어온 식물이 국내 생태계 균형을 교란하거나 그럴 우려가 있다면 문제가 다르다. 환경부는 서양등골나물을 비롯해 가시박, 돼지풀, 단풍잎돼지풀, 도깨비가지, 애기수영, 서양금혼초, 미국쑥부쟁이 등 12종을 생태계 교란 식물로 지정했다. 이 중 산에서는 서양등골나물이, 강 주변에서는 가시박이 자생식물에 큰 피해를 주고 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귀화식물은 많지만 대개 울창한 숲에는 들어가지 않고 햇볕이 잘 드는 나대지나 길가에서 자란다. 또 대개 한해살이풀이나 두해살이풀이어서 사람들이 마음먹고 관리하면 제어가 가능하다. 공터에 흔한 개망초와 망초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그러나 서양등골나물은 좀 다르다. 우선 음지에서도 견디는 힘이 강해 나무 밑 그늘까지, 그러니까 숲 속까지 들어가 대량 번식해 자생식물들이 살 공간을 차지하는 것이다. 게다가 여러해살이풀이라 제거하지 않는 한 한번 뿌리를 내리면 계속 퍼질 수밖에 없다. 또 한 개체에서 바람을 타고 퍼지는 씨앗이 워낙 많고 발아력도 강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서양등골나물은 분포 중심지가 서울이다. 1978년 서울 남산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 변두리로 퍼져나갔다. 요즘 서울 거리나 야산을 걷다가 작은 깻잎 모양의 잎에 흰 꽃이 피어있는 식물이 있다면 서양등골나물로 봐도 무방하다.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 일대로 맹렬하게 퍼져 현재는 동강 유역 등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까지 자라고 있다.

서양등골나물이라는 이름은 자생하는 등골나물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은 것이다. 자생 등골나물은 산에서 자라고 키도 서양등골나물보다 큰 편이다. 서양등골나물보다 좀 일찍 피고 약간 붉은 기운이 도는 것도 다르다.

서양등골나물은 눈부신 흰색인 데다 5개로 갈라진 꽃잎들이 뭉쳐 있는 것이 그런대로 예쁜 편이다. 이 꽃을 보고 "어머, 예쁜 꽃이 피었네"라고 말하는 사람을 많이 보았고, 꺾어서 꽃병에 꽂아 놓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김태정 한국야생화연구소장은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꽃이 보기 좋다고 서울시에서 서양등골나물을 무더기로 가로변에 심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것이 바람을 타고 급속하게 퍼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는 뻘건 흙이 드러난 곳이 있으면 뭐라도 심어 감출 때였다. 행사에 맞추어 하얀 메밀꽃이 피도록 100일 전 김포공항에서 화곡동까지 길가에 메밀 20가마니를 뿌리기도 했다.

서양등골나물은 우유병(milk sickness)을 일으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19세기까지 이 식물의 고향인 북아메리카에서는 우유를 먹으면 토하고, 손발을 떨며, 침을 흘리다 사망하는 사례가 많았다. 링컨 대통령의 어머니인 낸시 링컨의 사망 원인으로도 유명하다. 켄터키 주의회는 1830년 이 병의 원인을 밝혀내는 데 600달러를 내걸었다. 결국 서양등골나물을 섭취한 소나 말, 염소 등을 통해 우유에 들어간 독성물질이 사람을 사망하게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다행히 우리나라에서는 이 식물이 자라는 곳에서 목축을 하지 않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서양등골나물이 보이면 즉시 뽑아버리는 것이 좋다. 뽑으려면 줄기의 아래쪽을 잡고 끌어당겨 뿌리까지 뽑아야 한다. 그리고 열매를 맺기 전인 지금 뽑는 것이 좋다. 열매가 맺힌 후에는 괜히 건드려 씨앗을 확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가을 산에 가득한 들꽃 대신 서양등골나물 얘기를 쓰자니, 더구나 주로 꽃이 예쁘다고 쓰다가 꽃이 보이면 뽑아내야 한다는 글을 쓰자니 기분이 착잡하다. 그러나 남산이나 우면산 등에 갈 때마다 서양등골나물이 욕심 사납게 자생식물의 터전을 잠식하는 것을 보면 서둘러 제거 대책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서양등골나물
서양등골나물
서양등골나물
서양등골나물
가시박
가시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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