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0년 추석 '全州의 학살'… 64년 만에 진혼곡

입력 : 2014.09.26 05:36

9·28 수복 직전 敗退하던 좌익, 全北 지역 인사 500여명을 삽·괭이·몽둥이로 집단 학살
당시에 先親 잃은 이철승씨 "이제라도 추모제 열려 다행… 建國 기념하는 주춧돌 되길"

홍인표(81)씨는 올해도 설과 추석에 선친을 그리며 전북 전주 효자공원 모퉁이의 한 묘소를 찾았다. 묘소엔 '애국지사백칠십오위지묘'라 새겨진 비석이 서쪽으로 기운 채 서 있다. 간략한 추모사가 뒷면에 적혀 있을 뿐 누구의 이름도 새겨지지 않았다. 홍씨는 6·25전쟁 때 끌려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선친이 이곳에 묻혀 있다고 믿고 있다.

충남 서천이 고향인 홍씨의 부친은 공무원이었다. 6·25 직후 피란지인 전북 옥구에서 좌익에게 끌려간 뒤 다시 못 만났다. 전주형무소에 수감됐다는 말을 전해 들은 얼마 뒤 그곳에서 집단 학살이 이뤄졌다는 소문을 듣고 할아버지가 찾아나섰으나 끝내 시신도 못 거뒀다.

1950년 9·28 수복 직전 전주형무소 주변에서 발생한 우익 인사 학살 현장(위).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7~2009년 이 사건을 조사한 뒤 “지방 좌익에 의해 ‘반동분자’로 규정된 우익 인사 1000명 이상이 희생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당시 수습되지 않은 시신 175구가 함께 묻힌 전주 효자공원 애국지사 묘역에 추석이었던 지난 8일 노란 국화 한 다발이 놓여 있다
1950년 9·28 수복 직전 전주형무소 주변에서 발생한 우익 인사 학살 현장(위).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7~2009년 이 사건을 조사한 뒤 “지방 좌익에 의해 ‘반동분자’로 규정된 우익 인사 1000명 이상이 희생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당시 수습되지 않은 시신 175구가 함께 묻힌 전주 효자공원 애국지사 묘역에 추석이었던 지난 8일 노란 국화 한 다발이 놓여 있다. /향토사학자 이인철씨 제공·김창곤 기자
1950년 9·28 수복은 전주에 참극을 안겼다. 북한 인민군과 좌익은 그해 7월 20일 전주 점거 후 형무소에 수감했던 우익 인사 1500여명 중 500여명을 집단 학살한 뒤 패퇴했다. 참살된 인사들은 전북의 제헌 및 2대 국회의원 6명과 공무원·경찰관·판사·언론인·종교인까지 대부분 지역사회 지도자들이었다. 학살은 인민군 패주 직전인 9월 26일 밤부터 27일 사이에 이뤄졌다.

그로부터 꼭 64년이 흐른 26일 이 인사들의 억울한 희생을 기리며 그때 아픔을 돌이키는 작은 행사가 열린다. 희생자 유족 일부와 전북 각계 인사 100여명이 이곳 묘역에서 '6·25 애국 인사 희생자 추모식'을 갖는다. 이영국 한국자유총연맹 전북도지부장은 "대한민국과 해방 전북의 터를 닦은 애국 인사들에 대한 추념을 64년이나 미룬 것은 죄악"이라며 부끄러워했다.

1950년 9월 26일은 추석이었다. 참극은 그날 밤 9시쯤 시작됐다. 간수들이 한 사람씩 불러 감방동 밖에 모이게 했다. 전선에 손목이 묶여 대오를 이룬 우익 인사들은 형무소 담장 밖 화장터와 기와 공장 마당 등 3곳에서 삽과 괭이, 몽둥이 등으로 집단 타살됐다. 시신들은 미리 파둔 구덩이에 던져져 흙으로 덮이기도 했다. 숨이 붙어있던 일부 생존자는 인민군이 떠난 뒤 도망쳐 참극 현장을 증언했다.

국군과 미군, 경찰은 28~29일 전주를 수복했다. 시신들을 유족이 수습해 가는 가운데 미군이 현장에서 헤아린 시신은 360여구였다. 형무소에서 2~3㎞쯤 떨어진 전주경찰서 유치장과 완주군수 관사 방공호, 예수병원 부근 채석장에서도 시신 60여기가 발견됐다. 전북도와 전주시는 훼손돼 가족을 찾지 못한 시신 175구를 형무소 부근에 합동 안장했다가 1976년 효자공원 묘원으로 옮겼다.

시신을 찾은 유족들도 제대로 장례를 치를 수 없었다. 인민군은 패주하며 "곧 돌아온다"고 했다. 전쟁은 2년 9개월 더 이어졌다. 전북에서 산으로 숨어든 공비 토벌은 1954년 말에야 끝났다. 완주갑 제헌의원으로 희생된 류준상씨의 차남 희창(78)씨는 "어머니와 이모가 40리를 걸어 들것에 모셔온 선친의 시신을 바깥채 툇마루에 모시고 소리내 울지도 못했다"고 했다.

가장을 잃은 유가족 대부분은 생계를 위해 뿔뿔이 흩어졌다. 유족들은 저마다 추석 전날 밤 남편과 아버지 제사를 모셔왔다. 그리고 하나둘 세상을 떠났다.

이철승(92) 서울평화상문화재단 이사장의 부친도 전주형무소에서 희생됐다. 해방 직후 반탁전국학생총연맹 위원장으로 좌익에 맞섰던 아들을 뒀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이사장은 "지난 60여년 가파른 세월 속에 모두 정신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만시지탄(晩時之嘆)이지만 이제라도 추모제를 열어 다행"이라며 "추모제가 건국을 기념하고 바른 국가관을 세우는 일에 작은 주춧돌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전북 각계 인사들은 추모 사업을 이어가기로 했다. 향토사학자 이인철(85)씨는 "전문 조사를 통해 비극의 실체를 규명하고 시신을 못 거둔 채 흩어진 유족들을 찾아 그 후손이 기리게 하겠다"고 말했다. 추모식은 육군 35사단 군악대가 진혼곡과 조총(弔銃)을 울리고 무용가 변은정씨가 살풀이를 하는 가운데 1시간여 동안 진행된다.



  •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