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9.26 05:38
안석배 사회정책부 차장
안석배 사회정책부 차장
북유럽 국가를 방문하면 대부분 국민이 영어를 불편 없이 구사하는 것을 보게 된다. 글로벌 영어 교육기관인 EF가 지난해 발표한 '국가별 영어능력지수(EPI· English Proficiency Index)'를 보면 1위 스웨덴, 2위 노르웨이, 3위 네덜란드 등 '영어 잘하는 나라'는 북유럽에 몰려 있다. 특히 스웨덴은 국민 중 89%가 영어 소통이 가능한 나라이다. 길거리나 수퍼마켓에서 만나는 사람은 나이와 학력, 직업에 관계없이 영어로 대화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상황이 엇비슷한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북유럽, 특히 스웨덴 국민이 영어를 잘 구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 나라 교육 시스템도 큰 몫을 하고 있다. 초등학교에서 시작되는 스웨덴의 영어 교육은 회화 위주로 진행된다. 학교와 학년에 따라 영어 과목 아닌 과목도 영어로 수업하는 경우가 많다. 고등학교 화학 수업을 영어와 스웨덴어를 섞어서 강의하는 식이다. 이런 수업을 교육 당국이 간섭하지 않는다.

학교 밖에서는 TV를 통한 영어 교육이 진행된다. 스웨덴 TV 방송에는 더빙이 없다. 미국과 영국 영화를 방영할 경우 원어를 그대로 방송하고, 화면 아래 스웨덴어 자막을 넣는다. 이렇게 해서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영어를 듣고 말하는 '살아있는 영어 교육'이 이루어진다.

'영어 교육'에서 수많은 시도와 실패를 반복해 온 한국 입장에서는 부러울 뿐이다. 국가별 EPI 순위를 보니 우리나라는 지난해 60개국 중 24위였다. EF 측은 한국에 대해 '막대한 투자를 하고 미미한 효과를 얻은 국가'라면서 최근 몇 년간 한국인 영어 실력이 전반적으로 하락했다고 밝혔다. 취학 전부터 영어 학원으로 몰려가고,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2만여 시간을 영어 공부에 투자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외국어 울렁증'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이렇게 된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널뛰는 영어 정책'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영어 교육과정은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매번 영어 교육의 목표가 바뀐다.

2008년 초 정부는 '실용 영어' 교육을 강조했다. 학교 내 원어민 교사를 대폭 늘리고, 교민 학생을 방학 때 초빙해 농어촌 영어 교사로 활용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대학 입시에는 문법·독해 중심의 수능 영어 대신 한국형 토플(영어능력평가 국가시험)을 도입한다고 했다. 그땐 무언가 확 바뀔 것처럼 술렁거리더니 대부분 '없던 일'이 됐다. 원어민 교사는 줄었고, 농어촌 지역의 교민 교사 활용 사업도 규모가 축소됐다. 한국형 토플은 개발 예산 390억원만 낭비하고 사라질 판이다.

그리고 올해 발표된 것이 '쉬운 수능 영어'이다. 사교육비를 줄이고 학생들의 과잉 경쟁을 막겠다는 취지다. 올해 수능에선 듣기 문제 비중을 줄였다. 6년 전 교육부가 말했던 영어 교육과 지금의 교육부가 말하는 영어 교육이 이렇게 다를 수는 없다. 정부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글로벌 시대를 살아갈 우리의 미래 세대는 학교 문을 나선다. 정부 말 믿고 공부했던 학생들은 또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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