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9.26 14:12 | 수정 : 2014.09.26 14:52
이 글은 남문우(80) 전 검사가 쓴 자서전 ‘나의 삶 이야기’에서 발췌한 것이다. 그는 “내가 세상을 떠나더라도 자식들만은 내가 많은 은인들 도움으로 인생을 살았다는 걸 알아야 할 것 같아 책을 썼다”고 했다. 비매품으로 1000부를 찍었는데, “가난에도 좌절하지 않은 인생 이야기가 감동적이다. 혼자 보기 아깝다”는 지인들의 권유에 최근 두 차례에 걸쳐 각각 500부씩을 더 찍었다. 그의 동의를 받아 책 내용을 발췌해 연재한다.
<편집자 주>


이렇게 나의 대학생활은 여러 사건과 고비를 겪으며 지나갔는데, 대학생활 동안 겪었던 일 중에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는 몇 가지 일화를 더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 이야기는 가짜 대학생 이야기다. 나는 입학하자마자 충남에서 올라온 학생 10여 명과 자주 어울리게 되었고, 그 중에서도 나의 고향 인근 군에서 왔다는 한 학생과 더욱 가까이 지냈다. 그 학생의 이름과 고향은 알지만 밝히지 않는 것이 도리인 것 같다.

그는 새로 생긴 교복을 단정하게 입고 윗옷에 서울법대 배지를 달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강의를 듣는 열성적인 학생이었다. 어느 교회의 주일학교 선생으로 매주 일요일 교회에 나가 학생들을 지도한다고 했다. 그는 학교에서 강의 시간이 끝나면 나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아주 친하게 지냈다. 그와 나는 만나면 고향이야기,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 교회 이야기, 장래희망 등에 관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1년을 마치고 2학년이 됐는데 그가 보이지 않았다. 궁금하던 참이었는데 한 친구가 그의 얘기를 꺼냈다. “문우야, 너랑 친하게 지내던 친구 있잖아. 그 사람 가짜 학생이야.” 믿기 어렵다고 했더니 그 친구는 학생과에 가서 입학생 명부를 확인해보면 될 것 아니냐고 했다.

입학생 명부를 확인해봤더니 정말로 그 학생 이름은 없었다. 어처구니없었고, 배신감에 화도 났다. 그렇게 착하게 보이던 사람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신앙심이 돈독한 그가 무엇 때문에 가짜 학생 노릇을 했는지도 궁금했다. 가짜 학생 노릇을 하면서 얼마나 마음의 고통을 받았을까 생각하니 그가 가엾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는 나에게 자기도 홀어머니 밑에서 외아들로 자라 국가에서 학비를 부담하는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뒤 서울법대에 합격했다고 말한 일이 있다. 그는 아마도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나온 뒤 어머니나 학교에 실망을 안겨주기 싫어 불합격했다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그가 어머님과 주위 사람들에게 불합격된 것을 알리고 1년 간 열심히 공부를 하여 서울법대에 합격하는 길을 택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 본다. 아무쪼록 그가 어디에선가 가짜가 아닌 진짜 인생을 찾아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기를 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서울법대 동기생이던 한백군에 대한 것이다. 나는 공주고등학교를 나온 그와 친하게 지냈다. 그는 당시 후암동에 있는 친척집에서 하숙을 하고 있었는데 집이 어찌나 크고 호화스러운지 판잣집에 세 들어 사는 나로서는 그 집에 가려면 항상 기가 죽었다.

나는 앞서 언급했듯이 1953년에 결혼하여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큰딸을 낳은 애 아버지였다. 그런데 대학에서 처음 만난 친구들에게는 내가 결혼한 애 아버지라는 것을 알릴 기회가 없어서 동기생들은 모두 나의 결혼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한군과 사귄 지 일년이 지난 어느 날 친구 집에 놀러 갔더니 그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다음 일요일에 시간 낼 수 있지? 내 이종 여동생이 있는데 얼굴도 예쁘고 착실해. 너에게 소개하려고 이미 이모부 내외와 이종 여동생에게 네 이야기를 해 두었으니 다음 일요일에 그 집에 놀러 가자.”

나는 순간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고마운 친구에게 더 큰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해 결혼한 사실을 실토했다. 그는 “야 임마, 왜 결혼했다고 진작 말하지 않았냐”며 크게 화를 냈다. 그래도 나는 마음 속으로는 이 친구가 가난하기 짝이 없는 나를 그렇게까지 믿어주었다는 점이 진심으로 고마웠다. 하지만 그 후로 나는 그 예쁘다는 한백군의 이종 여동생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 친구와는 사회에 나와서도 친하게 지냈다. 그 역시 남보다 빠르게 고급공무원으로 승승장구하다가 고혈압으로 50대의 이른 나이에 저 세상 사람이 되고 말았다. 지금도 가끔 그 티없이 밝은 웃음으로 친절하게 대해 주던 그의 얼굴이 떠오르곤 한다.

일러스트=김성규 기자
일러스트=김성규 기자

앞에서 되돌아가고 싶지 않은 대학생활이라고 했지만, 고학의 어려움 속에서도 낭만의 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밤새워 막노동을 하면서도 술 한잔으로 피로를 말끔히 씻을 때였다. 중·고등학교의 새 학기가 시작할 무렵 종로2가에 있는 검인정교과서주식회사에서 전국의 중·고등학교에 교과서를 배급하는데 나는 밤새워 무거운 책뭉치를 트럭에 싣는 작업을 하였다. 한참 일을 하다가 새벽 1시쯤 쉬는 시간이 되면 그 앞 큰 도로 옆에 줄지어 있는 동동주 집에 가서 찹쌀 동동주를 마시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일에 지쳐 몸이 축 늘어지다가도 찹쌀 동동주를 서너 잔 마시면 알코올 기운이 온몸에 퍼지면서 피로가 싹 가시고 기분이 붕 떠 흥얼거리면서 밤을 새워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같은 일꾼들끼리 동동주 잔을 부딪치면서 걸걸하게 주고 받는 대화는 잘난 체하는 대학생들의 고담준론보다 훨씬 재미있고 정감이 가곤 하였다. 그 때 동동주 마시면서 떠들어대던 친구들은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는지 다시 만나 옛날 이야기를 하면서 소주잔이라도 부딪치고 싶다.

또 하나, 아직까지도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추억이 있다. 내가 군에서 제대하고 복학하여 잠시 가정교사로 있을 때, 남자 막내 동생 형우가 시골에서 상경하여 다른 동생들과 마포구 공덕동에서 자취를 하며 균명중학교 야간부에 다니고 있었다. 형우는 다른 동생들보다 성격이 적극적이어서 내가 가정교사로 있는 집을 자주 찾아오곤 하였다.

동생은 형이 보고 싶어서 찾아오겠지만 나는 괴로웠다. 당시 어렵게 고학을 하고 있을 때라 먹거리도 시원치 아니하여 동생을 불러들여 따뜻한 밥이라도 먹여 보내고 싶었지만 그것도 한 두 번이지 매번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가진 돈도 없어 용돈도 못 주고 대문 밖에서 잠깐 만난 뒤 냉정하게 가라고 소리질러 돌려보낼 때 내 마음은 쓰리고 아팠다.

형이 돼 가지고 자기는 따뜻한 밥 먹고 편히 살면서 어쩌다 찾아온 동생을 따뜻하게 대해 주지 못하고 대문 밖에서 그대로 되돌려 보냈으니 얼마나 못된 형이었는가. 나는 지금도 그 때 동생이 찾아왔다가 힘없이 되돌아서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동생에게 미안했고, 내 자신이 미웠다. 동생은 아마도 그 때의 일을 잊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죽을 때까지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다행히 동생은 열심히 공부하고 사회에 나와서도 열심히 노력해 남부럽지 않은 부를 누리고 살고 있다. 더욱 고마운 것은 형이 공무원의 박봉으로 오남매를 키우는 것을 옆에서 보고 조카들이 대학에 들어갈 때나 결혼을 할 때, 몫돈을 내 놓아 형을 도와줬다. 제발 내 자식들이 삼촌의 은혜를 잊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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