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9.26 11:07
면역기능이 강하게 되는 4박자를 고루 갖춘 조헌 선생은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에서 전사하지만 않았다면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 비결 중에는 신장이 강한 체질을 타고났고, 규칙적인 생활과 함께 열심히 농사를 짓고 글방에 다니느라 운동이 되었던 것이 있습니다. 나머지 2가지 비결을 알려드리죠.
조헌
조헌
조헌 선생의 면역기능이 강했던 비결

셋째, 의지와 끈기가 강하고 정신양생법을 잘 지켰습니다. 당대의 뛰어난 학자였던 우계 성혼, 율곡 이이 선생으로부터 성리학, 경세론을 배웠습니다. 또한 토정비결의 저자로 알려져 있는 토정 이지함을 스승으로 모시고 유유자적하는 삶을 배웠죠. 그러니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는 ‘마음 건강의 달인’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랬기에 면역력이 강해서 염병이 들어오지 못했던 것이죠.

마음을 잘 다스렸기에 귀양을 갔지만 상심하지 않아

조헌 선생은 벼슬살이가 임명과 파직을 밥 먹듯이 했을 정도로 순탄치 못했습니다. 나라의 기강과 시책을 바로잡고자 수도 없이 상소를 올리는 바람에 벼슬자리에서 쫓겨나거나 귀양을 가거나 혹은 스스로 벼슬을 내던졌던 겁니다. 당시 조선은 사화를 겪고 동서분당이 되어 당쟁이 시작되어 나라가 어지러울 때였기에 선생은 직언(直言)을 해야만 했던 것이죠. 그렇지만 선생은 의지와 끈기가 엄청났기에 상심하지 않고 의연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46세 때는 지부상소(持斧上疏)를 올렸는데, 자신의 결연한 의지를 표시하기 위해 작은 도끼를 들고 가서 올리는 상소입니다. 그 바람에 왕의 노여움을 싸서 함경도 길주로 유배되었던 것이죠. 임금 앞에 나아가 도끼를 들고 상소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기가 넘쳐흐르는 분이라야 가능한 것이죠. 그러니 선생은 ‘기가 왕성한 분’이었던 겁니다. 강인한 정신력을 가졌기에 정기가 강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사업에 실패했다거나 중병에 걸리는 등 인생에서 중대한 위기가 닥쳤을 때 정신력이 강한 분들이 잘 극복해 내었다는 것을 보셨을 겁니다.

육체의 건강보다 정신의 건강이 더 중요

인간은 정신과 육체가 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그런데 정신이 주체가 되기에 정신의 질병이 근원입니다. 마음이 건강해야 몸이 건강해지는 것이니 정신양생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후나 음식으로 인한 질병은 비교적 쉽게 나을 수 있지만 마음의 문제로 생긴 질병은 쉽게 낫지 않습니다. 그래서 ‘질병을 치료하려면 먼저 그 마음을 치료하라’고 하였죠. 비교하는 마음, 욕심, 의심 그리고 분노, 우울, 두려움 등의 감정이 지나쳐서 수많은 질병을 몰고 오는 것이죠. 그러므로 마음 다스리는 것을 소홀히 하고 질병을 고친다는 것은 도마뱀의 꼬리를 자르는 것과 같아서 다시 돋아나게 마련입니다. 심지어 감정이 풀어지지 않고 몸속에 쌓여서 맺히게 되면 암이 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스트레스가 암의 주된 원인이라고 하지요.

기가 강해서 면역력이 강했던 인물

요즘도 그렇지만 조선시대에는 면역력이 강해야 장수할 수 있었겠죠. 우암 송시열, 고산 윤선도, 동계 정온 등은 엄청난 기를 소유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백사 이항복,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같은 분이 보여준 대단한 정신력과 집념의 원천도 역시 샘솟듯 솟아나는 ‘기’에서 나왔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분들이 힘든 귀양살이를 오래 하면서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 역시 기가 강했던 때문으로 여겨집니다. 모두 의지의 한국인이죠.

반면 기가 약하거나 의지가 꺾이면 중병이 들고 일찍 죽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산군은 중종반정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나 강화도의 교동도에 귀양갔는데, 불과 31세의 한창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2달 만에 역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 말았죠. 조선에서 처음으로 세도정치를 했던 홍국영은 권좌에서 쫓겨나 고향으로 가서 불과 1년 만에 사망했습니다. 불과 34살이었죠. 마음을 잘 다스리고 기가 강한 것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아셨을 겁니다.

조헌 선생의 면역기능이 강했던 비결

넷째, 보양 음식이나 보약을 먹는 것입니다. 선생의 집안은 아주 가난하였기에 별다른 보양식이나 보약이 있을 리는 만무한데, 내려오는 보양식이 하나 있었습니다. 율곡 선생이 세상을 떠나자 조헌 선생은 관직에서 물러나 옥천군 안읍 밤티의 궁벽한 산골로 들어가 ‘후율정사(後栗精舍)’를 짓고 제자 양성과 학문을 닦는데 정진하였습니다. 학문에만 몰두하는 제자들의 건강을 염려하여 보양식을 먹이려고 하였는데 여유가 없다보니 좋은 식재료를 사용할 수 없었죠. 그래서 푸줏간에 가서 당시에는 별로 먹지 않던 소의 위장을 아주 싼 값에 사서 끓여 먹였던 겁니다. 그것이 바로 ‘양탕(䑋湯)’인데, 요즘의 양곰탕이죠. 그 후 선생의 집안에서는 본격적인 농사철로 접어들 때, 체력 보강을 위해 큼직한 무쇠 솥에 양탕과 양죽을 끓여 온 식구가 먹었다고 합니다. 400년 넘게 내려오는 전통음식이죠.
소의 위장인 양
소의 위장인 양
소의 위장을 끓인 양탕

‘양(䑋)’이란 양고기가 아니라 소의 위장으로서 요즘은 상당히 비싼 식재료입니다. 소는 위장이 4개로 구성되어 있어 먹은 것을 차례로 옮겨가며 되새김질을 하는데, 그 중에서 첫째와 둘째 위장이 바로 ‘양’입니다. 첫 번째 위장의 맨 위쪽 두툼한 부위를 ‘양깃머리’라고 하는데, 소 한 마리를 잡아도 기껏 수백 그램 정도밖에 나오지 않아 가장 귀한 부위이죠. 양깃머리는 냄새가 나지 않고 부드러워 구이로 많이 먹습니다. 양깃머리 아래에 붙은 얇은 부위는 보통 양곰탕 재료로 사용하지요. 두 번째 위는 벌집 모양처럼 주름이 있어 ‘벌집양’이라고 부릅니다. 이를 뒤집어 놓으면 마치 검은 수건처럼 생겼지만 먹어보면 맛이 좋습니다. 벌집양은 이탈리아, 중국 등지에서도 요리 재료로 사용하는데, 육질이 매우 질기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선 오랜 시간 가열해서 양곰탕으로 먹지요. 세 번째 위가 천엽이고, 네 번째 위가 ‘막창’ 또는 ‘홍창’이라고 부릅니다.

‘양’이 보양식이 되는 이유는?

동물은 부위에 따라 사람의 같은 부위에 효과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을 ‘이유보류(以類補類)’, 혹은 ‘동기상구(同氣相求)’라고 합니다. 동물의 간이나 쓸개가 간장이나 담낭 질환의 치료에 좋다는 것은 널이 알려져 있고, 세종대왕께서 수탉의 고환을 드신 것이나 연산군이 백마(白馬)의 음경(陰莖)을 먹은 것은 동물의 생식기가 성기능 향상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죠. 물개의 생식기인 해구신(海狗腎)도 마찬가지죠. 닭의 모이주머니인 계내금(鷄內金)은 닭이 먹어치우는 모이를 무엇이든 삭여내기에 한방 소화제로 활용되어 왔습니다.

육류 중에서 소고기는 비위장을 보하는 효능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위장인 ‘양’은 사람의 비위장을 보익하는 작용이 더욱 강합니다. 그래서 ‘양’은 비위장이 제 기능을 잃어 소화가 잘 되지 않고 속이 더부룩하거나 혹은 체하여 ‘식적(食積)’, 즉 음식을 먹은 것이 내려가지 않고 응어리가 맺혀 있는 것을 치료합니다. 그러므로 체질적으로 소화 기능이 약하거나 혹은 병을 오래 앓은 뒤에 소화력이 약해진 분들의 체력 보강에 아주 좋습니다.

‘양’이 면역기능을 높여주는 이유

한의학에서 비위장은 ‘후천의 근본’으로서 면역기능에 중요한 몫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만약 비위장의 기가 허약해지면 제대로 먹지 못하거나 흡수되지 못해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없으니 힘을 쓸 수 없지요. 실제로 비위장이 허약해지면 기(氣)와 혈(血)이 생성되지 못해 원기가 생겨나지 못하여 장부와 조직의 기능이 손상되고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약화되므로 밖으로부터 나쁜 기운이 쉽게 들어와 질병이 생겨나는 것이죠. 그러니 비위장을 튼튼하게 해 주는 ‘양’은 면역력을 높여 주는 보양식이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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