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9.25 05:36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얼마 전 애플사에서 새로운 스마트폰과 웨어러블 디바이스들을 소개했다. 언제나 그렇듯 애플이 만든 기기들은 세련돼 보였다. 물론 웨어러블의 본질적 필요성은 여전히 의문이다. 인류가 정말 손목, 발목, 허리에 새로운 기계를 달고 다닐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우리는 스마트폰도 필요로 하지 않았었다. 누구도 스마트폰을 만들어달라고 데모한 적도 없었다. 의식주를 제외한 인류의 대부분 욕구는 만들어지는 것이지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이다.

소개된 기기 중 가장 '충격적인' 제품은 훨씬 더 커진 화면을 장착한 애플의 스마트폰이었는지 모른다. 우선 새로운 게 하나도 없다는 점이 충격적이다. 국내 기업들은 오래전부터 큰 화면의 휴대폰을 팔지 않았던가? 더 충격적인 건 이거다. 새로운 것이 없는 것을 새롭다고 재포장할 수 있는 애플의 능력, 그리고 '새롭지 않은 새로운 것'을 사기 위해 밤을 새우는 소비자들. 국내 기업들엔 억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디 국내 기업들뿐이겠는가? 소니는 첫 전자책을 만들었지만 돈은 아마존이 벌었고, 카메라 달린 휴대폰은 교세라가 제일 먼저 제시했지만 시장에서는 성공하지 못했다.

오늘날 지구의 주인은 우리 호모 사피엔스들이다. 하지만 아프리카를 먼저 떠난 인류의 친척은 네안데르탈인들이었다. 네안데르탈인들은 단단한 뼈와 현대인들보다도 더 큰 뇌를 가졌었다. 그러나 그들은 멸종하고, 더 약하고 더 작은 뇌를 가진 호모 사피엔스는 살아남았다.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의 하라리(Yuval Harari) 교수는 '픽션을 만들어내는' 호모 사피엔스의 능력 덕분이라고 주장한다. 전설과 신화로 만들어진 정체성으로 똘똘 뭉친 100명, 1000명의 힘을 모아 네안데르탈인들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다는 말이다. 더 빠르고, 더 큰 것만을 여전히 최고로 생각하는 국내 기업들. 새로운 전설과 스토리를 만들어낼 줄 아는 미국 기업들. 이제 우리도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들의 싸움을 기억할 때다.

김대식 | KAIST 교수·뇌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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