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9.17 07:45

이병철-정주영 회장의 위대한 화해의 용기(상)

1985년 11월 20일, 전경련은 며칠 앞으로 다가온 정주영 회장의 고희에 앞서 전경련 자체의 고희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평소 검소한 것을 좋아하는 정회장인지라 번거롭게 잔치를 벌이는 것을 극구 사양했지만, 전경련 회장단과 원로들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정회장 고희연을 사무국에 준비시켰다. 전경련 회관 20층에 오찬 형식으로 고희연 자리가 마련되었다. 연회장은 정회장의 고희를 축하해주기 위해 재계 중진들이 많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뤘다. 김용완·이원순 명예회장 등 정 회장 보다 연로한 재계 원로들도 자리를 같이 했다. 재계의 현역 중진들과 원로들이 모두 모인 자리였다.

“곧 정주영 회장님의 고희연을 시작하겠습니다. 내빈 여러분께서는 자리에 앉아주시기 바랍니다.”
이윽고 사회자가 좌정을 권유했다. 여기저기 둘러서서 담소를 나누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정해진 자리를 찾아 앉았다. 전경련 고문을 비롯한 내빈들의 간단한 축하 인사가 이어지고, 마침내 정주영 회장이 단상에 올랐다.

“이렇게들 모여서 축하를 해주시니 정말 고맙습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축하를 받아도 되는 것이 괜찮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예로부터 나이 70이 넘도록 사는 사람이 드물다 하여 고래희(古來稀)라고 해서 매우 드문 일로 축하를 해왔습니다만 이젠 고희가 아니라 고다(古多)라고 해야 할 정도로 칠순을 넘겨 장수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때문에 저는 이런 축하를 받는 것이 격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회장 특유의 재담이었다. 구십 살까지 현역으로 열심히 일하고 그 뒤에나 여생을 즐기겠다는 정회장의 평소 지론을 잘 알고 있던 사람들이었으니 그의 말이 터무니없이 들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때였다. 누군가 뒤늦게 연회장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이미 모든 내빈이 자리를 잡고 정돈된 상태였던 지라 자연히 모든 이들의 시선은 들어서는 사람을 향해 쏠렸다. 내빈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뜻밖에도 간호사를 포함하여 두 세 명 의료진의 부축을 받고 아주 어렵게 발걸음을 옮기며 들어오는 삼성그룹의 이병철 회장이었다. 사람들은 놀라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1985년 11월 25일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왼쪽)과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정주영 회장의 고희기념회장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조선일보DB
1985년 11월 25일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왼쪽)과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정주영 회장의 고희기념회장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조선일보DB
첫째, 당시 이병철 회장은 어려운 지병으로 이미 오래 전부터 외부 거동을 안 하는 상태인 것을 모두 알고 있었던 때문이었다. 실제 그때 이회장의 얼굴에 나타난 병색이나 몸 거동은 수시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을 걱정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그런 상태인데도 그 자리에 이회장이 나타난 데 대하여 그 자리의 사람들은 놀라움과 함께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둘째 이유는 그때 세간에 널리 알려진 이병철 회장과 정주영 회장의 뿌리 깊은 갈등과 반목관계 때문이었다.

이병철과 정주영. 이병철 회장이 1910년생으로 정회장보다 다섯 살이 많았고 둘은 1960년대부터 그 시기까지 한국 재계를 이끌어온 쌍두마차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성장 배경은 물론 주력하는 사업, 경영 스타일까지 어느 하나도 공통점이 없을 만큼 판이했다. 강원도 산골에서 찌들게 가난한 집안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가출 소년으로 상경하여 온갖 거친 노동자 생활을 거쳐 맨손으로 시작해 상상을 초월하는 도전정신과 뚝심으로 재계의 거목으로 우뚝 선 정주영 회장. 그는 매번 모험을 마다 않고 황소와 같은 추진력과 창의력을 발휘하여 건설업부터 시작해 자동차, 조선 공업을 비롯해 한국 중공업 분야의 토대를 이룩한 인물이었다.

반면 이병철 회장은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일본 유학을 한 엘리트 출신으로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확인하며 꼼꼼하고 치밀한 경영 방식을 기조로 하며 주로 가전제품과 소비재 사업을 근간으로 하여 삼성을 한국의 거대 그룹으로 성장시켰다. 이처럼 두 사람은 삼성이 나중에 참여한 조선과 건설 정도를 제외하곤 사업 영역은 물론 성장과정과 성격이 판이하게 달랐다.

이런 두 사람이지만 무엇이 단초가 되었고 누가 먼저 감정 싸움을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여러 면에서 둘 사이는 원만하지 못했다. 현대는 동아일보, 삼성은 중앙일보 지면을 통하여 각기 창업 초기에서부터 사소한 사업 상의 일 등 개인 신변의 일까지 들춰가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불행한 감정 싸움을 오래 지속해오고 있었다.
“그래 자기는 부잣집 아들로 자라 유학도 가 보고 기업을 일궈서 국보급 골동품으로 가득한 서재에 앉아서 고려자기를 쓰담으며 정원에 노는 공작새를 감상하는 고상한 양반이고 나는 막 노동자 출신이라 무식한 사람이라 이거야!”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악화 일로에 있던 시기 측근들과의 어느 사석에서 감정이 북받친 끝에 노기에 찬 정회장의 표현이 당시의 상황을 잘 말해주고도 남는다. 이러던 끝에 두 사람 모두와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던 당시 김용완 전경련 명예 회장의 중재로 겨우 표면상 휴전상태를 유지하고 있던 차였다.(하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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