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9.16 05:40
영화 '브레이브 하트' 실존 인물… 독립 英雄을 사지절단刑 처한 잉글랜드 향한 스코틀랜드의 恨… 합병 후 300여년간 지속적 분출
우리 東西·貧富·南北 간 증오가 그 분노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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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갑식 선임기자
그들이 살다간 시대는 암흑이었다. 적국(敵國) 잉글랜드 왕이 에드워드 1세였기 때문이다. 하필 스코틀랜드 왕 알렉산더 3세는 낙마한 뒤 바위에 부딪혀 숨졌다. 후사(後嗣)도 없이 왕이 홀연 세상을 뜨자 시인이 읊었다.
"맥주와 빵, 포도주와 양초, 오락과 유희로 가득했던 부귀가 사라졌네. 이제는 기도하네. 하나님만이 혼돈에 빠진 스코틀랜드를 구원할 수 있기를…." 역사에서 이런 경우 묘수(妙手)가 나온 적은 거의 없다.
에드워드 1세는 용맹한 장군이자 지혜로운 왕이었다. 거기에 야심마저 넘쳤으니 잉글랜드엔 복(福)이요, 스코틀랜드엔 화(禍)였다. 에드워드 1세는 웨일스를 점령해 후방의 근심을 없앤 뒤 스코틀랜드마저 정복했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실존 모델 월리스는 이런 잉글랜드에 맞서 연전연승했다. 호민관(護民官)으로 선출됐는데 여기까지라면 세상에 망하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국민의 인기를 얻은 월리스를 질시한 두 부류가 있었다. 에드워드 1세의 미움이 당연하다면 스코틀랜드 귀족들의 그것은 배신이었다. 1298년 폴커크 전투에서 패한 뒤 도망다니던 월리스는 친구의 밀고로 붙잡혔다. 그는 목이 베이고 사지(四肢)가 잘려 런던 브리지에 내걸렸다.
월리스가 분투(奮鬪)할 때 브루스는 적(敵)에 가담하고 있었다. 그 운명을 바꾼 것은 잉글랜드 장수들의 험담이었다. 전투가 끝나고 핏자국 묻은 손을 닦지도 않은 채 저녁을 먹으려고 식탁에 앉았을 때 몇몇이 수군댔다. "자신의 피를 빨아먹는 저 스코트인(人)을 좀 보시오." 충격과 혐오감에 방을 차고 나온 브루스는 부근 교회로 가서 하나님께 울며 죄(罪)를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그렇다고 마음 고쳐먹은 그가 독립투쟁에서 혁혁한 전과를 세운 건 아니었다. 싸우는 족족 져 초라한 침상에 누워 부하들을 해산시킬까 궁리하는데 거미 한 마리가 보이는 것이었다. 거미는 집을 넓히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가만히 세어보니 여섯 번째 실패였다. 브루스의 패전(敗戰) 횟수도 6회였다.
그는 거미에게 운명을 걸었다. "네가 이번에 성공하면 나도 조국의 독립에 명운을 걸겠노라." 그때 거미가 줄을 치는 데 성공했다. 전설 따라 삼천리 같지만 역사는 그후 브루스가 성공해 마침내 로버트 1세 왕이 됐으며, 전설은 이 가문의 후손들이 절대 거미를 죽이는 일이 없었다고 기록한다.
에드워드 1세는 어떻게 됐을까. 그는 아들에게 이런 유언을 남긴다. "내 시신을 솥에 넣고 끓인 후 뼈를 소가죽에 싸 스코트인들이 자유를 찾겠다고 들고일어날 때마다 잉글랜드 군대의 선두에 지니고 다니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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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이런 은원(恩怨) 때문인지 양국은 그 뒤로도 싸우다 1707년 합병했다. 그런데 300년이 넘은 지금도 독립을 두고 갈등을 빚고 있다. 우연인지 올해는 브루스가 기념비적인 배넉번(Bannockburn) 전투(1314년)에서 이긴 지 꼭 700년이 되는 해다. 스코틀랜드에선 '스코틀랜드의 꽃'이란 노래가 사실상의 국가(國歌)인데 그 가사가 바로 배넉번 전투를 다룬 것이다. "오, 스코틀랜드의 꽃이여. 언제 우리가 다시 볼 수 있을까… 에드워드의 군대와 맞서 싸운 사람들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앙숙이다. 잉글랜드인들은 부인하지만 스코틀랜드인들은 "우리 동포를 학살하고 지금은 천연자원을 착취하는 악당이 잉글랜드"라고 말하고 있다. 광활한 7만8000여㎢에 인구가 520만명에 불과한 것을 두고 스코틀랜드인들은 "과거에 너무 죽임을 당해서…"라고 말한다. 지금은 북해(北海) 유전에서 나오는 석유를 잉글랜드가 교묘하게 강탈해간다며 이를 부득거린다.
18일 스코틀랜드 분리 독립 투표는 역사와 경제 중 누가 승리자가 될 것이냐의 결전이다. 과거사로 보면 분리가 당연한데 홀로 먹고살겠느냐는 영국 정부의 협박이 통할 가능성이 더 많다. 이래저래 먹고사는 건 힘든 일이다.
나는 한국과의 시차가 8시간이나 되는, 지구 반대쪽에 있는, 그래서 남의 일처럼 여겨온 스코틀랜드의 역사에서 돌연 섬뜩함을 느꼈다. 인간에게 과거라는 것은, 그리고 증오란 것은 밟아도 밟아도 살아나는 마물(魔物)이다.
우리의 동서(東西) 감정이, 빈부(貧富) 격차에 대한 분노가, 남북(南北) 관계가 잉글랜드에 대한 스코틀랜드의 분노보다 낫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인천아시안게임에 참가한 북한이 그리 중요해 보이지도 않는 응원단을 보내네 마네 하며 발끈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니 투표를 앞둔 스코틀랜드보다 대한민국의 팔자(八字)가 더 기구해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