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8.22 07:28 | 수정 : 2014.08.22 09:31

타고 난 보스의 사람 사랑과 인재관(上)

1980년대 초 정회장이 출장 중 미국 워싱턴 D.C.에 들리게 되면 공식 일정이 없을 때 현대그룹 현지 지사 대표, 이 비서 그리고 필자 등 소위 ‘집안 식구’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자주 들르던 고즈넉한 한정식 집이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한정식 집인데 춘원 이광수의 딸이 해방 후 이민 와서 운영하는 한식집이라고 했다.

정회장은 강원도 통천 산골에서 어린 시절 동네 이장 집에서 틈나는 대로 빌려다 본 책 중에 개화기 시절을 무대로 한 춘원 이광수의 소설들을 감명 깊게 읽었는데 소설에 나오는 도시 얘기에 심취하여 바깥 세상에 대한 동경을 품게 되었고 그것이 아버지의 소 판돈을 몰래 가지고 서울로 가출을 하게 되는 동기가 되었다는 것을 자서전에서 술회한 바 있다. 아마 정회장이 이 집을 좋아했던 데는 그런 춘원에 대한 추억과 어린 시절의 향수가 한몫을 했는지도 모른다.

일행이라야 정회장을 포함하여 대여섯 명이라서 조선시대 고가구들이 놓여있는 한식 장판방에 자리를 잡았다. 특히 이런데 들어서면 정회장은 자상한 집안의 큰 어른 같은 분위기를 더욱 풍겼다. 이 방의 벽에는 지금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춘원의 글씨로 추정되는 ‘德不孤’ (덕불고)라는 고색창연한 휘호 액자가 걸려 있었다.
“저건 참 좋은 말인데 원래는 ‘덕불고 必有隣 (필유린)’이란 말을 줄여서 쓴 거야. 사람이 항상 덕망을 잃지 않고 살면 마음을 나누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이웃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라는 뜻이야. 항상 마음에 새기고 살만한 귀중한 가르침이야.”
우리들은 그저 그의 가르침이 황송할 따름이었다.
정주영 회장과 부인 변중석씨.
정주영 회장과 부인 변중석씨.
이어서 음식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집의 음식을 상에 들여오는 방식이 한식이지만 한꺼번에 미리 다 차려 놓는 것이 아니라 서양식을 절충하여 코스마다 그때 그때 요리 접시를 들여오는 식이었다. 먹기 편하게 미리 토막을 친 큼지막한 생선 요리가 들어왔다.
“그 생선 요리 접시를 이리 줘요.”
우리들이 의아해하는 순간 정회장이 웨이터로부터 접시를 넘겨받았다. 그리고 그는 젓가락으로 그 생선을 한 토막씩 좌중의 우리들 접시에 일일이 직접 옮겨 놓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막상 자기 몫으로 남겨 맨 나중에 그의 접시에 담는 것은 먹을 것이 별반 붙어있지 않은 초라한 생선 머리와 꼬리 부분이었다. 당황스럽고 황공했지만 우리는 그저 별 수없이 감지덕지 잠자코 음식을 먹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저녁을 끝내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많은 생각이 필자의 머리 속에 떠올랐다. 한 국내 최대 재벌 그룹의 회장이 주재하는 사장단 회의에서 새로 영입되어 아직 그 그룹의 기업 문화에 익숙하지 못한 한 사장급 인사가 그럴만한 분위기에 이르러서 소리나게 웃었다고 나중에 그의 책상에 주의하라는 경고 메모가 놓였다는 애기가 생각났다. 또한 선대 창업주에 이어 그룹을 승계 받은 겨우 삼십대 후반의 젊은 회장이 전경련 주관 해외파견 경제 사절단에 참여하기 위해 출국하거나 귀국할 때 공항에서 나이로는 그의 아버지 뻘되는 창업 공신 그룹 사장단 5~6명이 좌우로 도열하여 굽신 거리며 뒤따르던 모습이 함께 교차 되었다. 정 회장의 면모와 대비되었기 때문이었다.

정회장이 사람을 가름하는 특징 중에 하나는 실질적인 알맹이에 비해 언변이 유창한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점이었다. 같은 자질을 가졌다 하더라도 언변이 유창하면 정회장의 눈에 드는데 도리어 손해를 보는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현대그룹사 사장들 중에는 말솜씨가 아주 돋보이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던 것으로 기억 된다. 정 회장은 말을 다듬고 조심하는 스타일보다는 소탈하고 솔직하게 생각을 표현하는 사람들을 선호하는 것 같았다. 어떤 때 비서진이나 그룹사 사장들과의 대화나 업무회의를 듣고 있으면 대그룹 총수와의 대화라기보다 가족들이 집안 어른을 모시고 일을 의논하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물론 이러한 것은 정회장 자신의 스타일, 그리고 성격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었다. 이러한 그의 특징은 거의 14년 가까이 정회장을 보좌하는 동안 국내외에서 그가 외국 인사들을 접견하거나 원고 없이 예정에 없던 연설을 할 때도 통역을 맡은 필자가 큰 어려움 없이 그와 호흡을 맞춰 편하게 내용을 전달하는데도 도움이 되었다. 미사여구를 써서 말을 꾸미거나 주부와 술부가 구분이 안 되게 길게 중언부언하는 것을 싫어하는 정 회장의 스타일 때문이었다.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 부부와 정몽헌 현대아산이사회장 부부와 자녀들의 모습.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 부부와 정몽헌 현대아산이사회장 부부와 자녀들의 모습.
정회장이 간부들에게 자주 들려주던 리더의 덕목에 관한 얘기 하나를 소개한다.
“나폴레옹이 흥망을 가름하는 전투를 직접 지휘하고 있었는데 상황이 급박해 지고 있었대. 앞의 능선 아래 벌판에서 적군이 벌 떼처럼 진격해 오고 있었대. 그걸 신속히 제압하지 못하여 그들이 우군진영 능선 방어선을 넘어 오게 되면 숫자적으로 절대 불리한 우군이 전멸하게 될 것이 분명한 상황이 되었대. 그걸 제압하기 위해서는 신속히 우군의 포대를 사계가 확보되는 능선 위로 올려놓고 몰려오는 적군을 향하여 집중 포격을 해야 되는데 문제가 생긴 거야. 수레에 실은 포대가 못 올라오고 있는 거야. 나폴레옹이 황급히 말을 타고 현장으로 달려갔어. 마침 비가 온 뒤라서 능선 아래 길이 진창이 되었는데 맨 앞의 포차 수레바퀴가 진창에 박혀서 여남은 명의 병사들이 달려 붙어 기를 쓰고 밀어도 수레가 꼼짝도 안하고 있는 거야. 그 옆에서는 말을 탄 지휘관 장교가 고함을 지르며 병사들을 독려하고 있는 거야. 이것을 본 나폴레옹은 즉시 말에서 뛰어내려 두말없이 병사들과 합세하여 수레를 밀었어. 순간 꼼짝도 안하던 수레는 거짓말처럼 수렁을 빠져나와 능선위로 올라갔고 다른 포차들도 뒤따라서 능선 아래 적군에게 집중 포격을 할 수 있게 되어서 그 전투에서 승리 할 수 있게 되었대.
그런데 여기서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점이 있어. 수레가 움직인 것이 힘이 유별나게 센 장사도 아닌 나폴레옹 장군 한사람의 힘이 더해졌기 때문일까? 아니야, 나폴레옹은 도리어 키가 작고 왜소한 체격을 가진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어. 수레가 올라 갈 수 있었던 것은 천하의 나폴레옹 장군이 일반 병졸들과 합세하여 함께 수레를 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병사들의 감동으로부터 새로이 뿜어 나온 물리적 차원을 넘는 용기와 힘 때문이야. 조직을 이끌기 위한 직위와 위계질서, 그리고 권위는 필요하지만 그것이 단지 군림하는 권위가 되어서는 안 돼. 항상 현장 식구들과 소통하고 공감대를 넓혀가야 현장 사정을 제대로 파악 할 수 있고 제대로 조직을 이끌어갈 수 있는 거야.”

정회장은 이러한 리더의 덕목을 철저히 스스로 실천하고 산 사람이다. 요즈음의 레미콘이 나오기 전 현장에서 삽으로 콘크리트를 그 보다 더 잘 갤 수 있는 건설현장 직원은 없었다. 실제 그는 잘 알려진 것처럼 경부 고속도로 건설 기간 중 대부분 찝 차를 개조한 비좁은 탑차에서 밤잠을 자며 현장에서 보냈다. 뿐만 아니라 터널 난공사 구간에서 착암기를 들고 수직 절개 면의 바위를 부셔낼 때 자칫 보이지 않던 수맥이 터져 순간 토사와 이수가 폭발적으로 분출해 나올 경우 매몰의 위험이 두려워 작업자가 겁이 나서 주저하고 있을 때 정회장은 서슴치 않고 착암기를 뺏어들고 직접 바위를 깨는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고속도로 건설에 있어서 국내 업계의 일천한 기술과 경험, 열악한 장비, 부족한 예산, 유난히 산과 계곡이 많은 우리나라 지형 특성 상 수없이 많은 난공사 구간에도 불구하고 단위 길이 당 세계 최저가, 최단기간 완성이라는 기록을 남기게 된 것은 정회장의 이러한 현장주의와 리더십이 뒷받침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세계 토목공사 역사에 ‘정주영 공법’이라는 말로 하나의 전설이 된 아산 방조제 폐선 이용 물막이 공사라는 발상은 늘 현장의 작업 상황을 예리하게 지켜보며 상상력을 발휘한 그의 현장주의 리더십이 아니었다면 떠오르지 못했을 것인지도 모른다. 정통 토목 공학 교과서나 현장 설계도면 만 들여다보며 몰두해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발상이다. 요즘 많이 얘기되고 있는 창조와 혁신의 극적인 산 예를 일찍이 정회장이 보여 주었다고 할 수 있다.(하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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