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코메티 옆 고려불화… 예술은 交感이다

입력 : 2014.08.19 05:41

[삼성미술관 리움 10주년 특별전 '교감']

현대미술과 고미술 작품이 나란히… 아이웨이웨이 등 유명작가 총출동
작품간 교류·미술과 관객 소통 나서

"이태원 '리움'으로 가주세요." 택시 운전기사에게 리움이란 목적지만 말했는데 단번에 알아들었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리움'을 아는 기사는 많지 않았다. 이름도 낯설고, 가는 길은 더 낯설었다. 그 사이 리움은 확실히 대중과 가까워진 걸까.

10년 전 국내 최고, 최대의 미술 컬렉션을 보유한 '삼성미술관 리움(Leeum)'이 서울 남산 자락, 이태원 주택가에 들어섰을 때 미술계는 흥분했지만 대중에겐 그저 언덕 위 문턱 높은 미술관일 뿐이었다. 리움과 대중의 거리는 평범한 서민의 일상이 엉킨 이태원 허름한 골목과 남산 자락 이태원 고급 주택가의 거리만큼이나 멀었다.

고미술상설전시실과 현대미술상설전시실을 잇는 계단에 설치된 덴마크 작가 올라퍼 엘리아슨의 빛 조각 ‘중력의 계단’. 반원 형태 조명이 벽면과 천장에 설치된 거울에 반사되도록 해 태양계를 형상화했다. 맨 앞쪽 큰 고리는 태양을, 나머지 고리는 수성·금성·지구 등 행성을 나타낸다
고미술상설전시실과 현대미술상설전시실을 잇는 계단에 설치된 덴마크 작가 올라퍼 엘리아슨의 빛 조각 ‘중력의 계단’. 반원 형태 조명이 벽면과 천장에 설치된 거울에 반사되도록 해 태양계를 형상화했다. 맨 앞쪽 큰 고리는 태양을, 나머지 고리는 수성·금성·지구 등 행성을 나타낸다. /사진가 김현수 제공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의 세월 동안 리움을 둘러싼 물리적·사회적 지형도 변했다. 미술관은 부단히 문턱 낮추기에 노력했고, 이태원은 다양한 비주류 문화까지 포용하는 서울의 문화 지역이 됐다. 10돌을 맞이하는 리움은 이 작은 변화의 의미에 초점을 맞췄다.

19일부터 시작하는 리움 개관 10주년 기념전의 주제가 '교감(交感)'인 이유다. 기획전 취지에 각종 미사여구가 동원됐지만, 우혜수 학예연구실장의 담백한 말이 기념전의 고민과 지향점을 분명히 해준다. "어떻게 하면 '편안한 미술관'이 될 수 있을까 고민했던 초심으로 돌아갔어요."

교감은 작품끼리의 교감, 작품과 관객과의 교감을 아우른다. 전자는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미술의 교류를, 후자는 관객 참여형 전시를 말한다. 개관 이래 처음으로 3주 휴관을 감행하며 총력을 부어 넣은 전시는 '제2의 개관'으로 불릴 만큼 획기적이다.

한국고미술상설전시실(뮤지엄1)에서는 '시대 교감'이 주제다. 앙상한 뼈를 과감히 드러낸 자코메티의 조각이 고려 불화 '지장도'와 나란히 놓였다. 자신의 그림이 선과 악을 넘나드는 현대판 종교화이길 바랐던 마크 로스코의 추상화와 극락왕생을 염원하는 '아미타삼존도'(국보 218호)가 마주했다. 서양 현대미술 거장들과 우리 고미술의 메시지를 엮어내는 '창조적 해석'에 눈길이 간다. 시대를 넘나드는 교감은 한국 젊은 작가들에게도 이어진다. 북한 회령의 흑자(黑瓷) 조각을 붙여 만든 이수경의 '달의 이면'은 조선의 백자호와 고금의 대화를 나누고, 1.5㎝ 사람 모양의 미니어처 수만 개로 한반도 지도를 형상화한 서도호의 설치 작품 '우리나라'는 '환어행렬도'와 함께한다.

백자호와 함께 놓인 이수경의 ‘달의 이면’ 사진
백자호와 함께 놓인 이수경의 ‘달의 이면’(왼쪽). /사진가 김현수 제공
'동서 교감'이란 주제의 현대미술상설전시실(뮤지엄 2)은 1950년대 이후 한국 미술이 세계 미술계와 교감하면서 형성돼 왔음을 보여준다. "한국 현대미술이 서양 미술의 아류라는 선입견이 강해 그 사이 두 장르를 한 공간에서 섞어 보여주는 게 두려웠다. 이젠 한국 미술이 서양 미술과 함께 놓일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홍라영 총괄부관장의 말이 우리 미술의 한층 높아진 자신감을 드러낸다. 중국 남부 고목을 잘라 다시 재조합해 만든 아이웨이웨이의 '나무', 브라질 작가 에르네스토 네토의 '심비오테스튜브타임' 등이 전시된 기획전시실은 관객 참여를 이끌어낸다.

백미는 덴마크 작가 올라퍼 엘리아슨의 '중력의 계단'이다. 2003년 전구로 런던 테이트 모던에 초대형 인공 태양을 만들어 일약 세계적 스타가 된 그가 이번엔 빛과 태양계에 주목했다. 거울과 고리로 폭 6m, 길이 23m의 계단 공간을 태양계로 변신시켰다.

전시를 보며 문득 10년 전 리움이 문을 열 때 이어령 전 장관이 한 말이 떠올랐다. "'Leeum'은 두음법칙을 쓰면 '이움'으로 읽히는데, 이는 순우리말 '이음'을 연상시킨다. 국보급 문화재와 전위 예술품을 소장한 리움은 새 문화와 동과 서를 서로 이어주는 접합점이다." 이번 전시에선 리움이 그간 소홀했던 '이음'을 위해 고심한 흔적이 묻어난다. 한나절 '만원의 행복'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기꺼이 추천한다. 이만한 예술의 성찬이라면 1만원의 입장료가 아깝지 않을 것 같다. 전시 12월 21일까지. (02)2014-6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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