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8.19 09:11

정주영의 사람 키우는 법(下)

(上편에서 계속)

이렇게 부하직원에게 무리한 일까지 하도록 요구하는 정회장의 스타일은 때로 원망을 받기도 하지만, 이렇게 단련 받아 성장한 사람들은 그야말로 ‘정주영맨’이자 ‘현대맨’으로 거듭나게 된다. 정회장의 인재 단련의 또 다른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당시 현대중공업 유럽본부장을 지낸 황전무 얘기다. 당시 정회장이 유럽이나 중동 아프리카 지역 출장 때마다 현지 동원되어 정회장을 보필하며 그가 보여준 모습은 회사라는 조직 내에서 충성스러운 부하 임원의 차원이 아니라 집안 어른을 공경하듯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성과 극진함이 옆에서 보기에도 감동스러울 정도였다. 정회장은 특히 해외출장 시 온도 차가 심한 지역간 이동으로 감기가 들거나 무리한 일정으로 피로하여 컨디션이 안 좋거나 일이 맘에 안 들면 현대 직원들한테 마치 편한 가족들한테 대하듯 짜증을 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황전무는 정회장에게 어떤 꾸중을 듣든 표정 한번 변함없이 한결같은 태도로 성의를 다하여 정회장을 보필하였다. 그와 단둘이 있게 되었을 때 필자가 물었다.
“황본부장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어쩜 회장님을 그렇게 온 정성을 다해 극진하게 모실 수 있습니까?”
“저도 전에는 그분이 그냥 직장 상사, 우리 회사의 창업주 뭐 그런 생각이었습니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이러했다. 마산 출신의 황전무는 서울대 조선공학과를 나와 대한조선공사에서 엔지니어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그가 현대조선에 스카우트된 것은 그의 실무 경험과 능력 때문이었다. 당시만 해도 현대에는 조선 실무경험자가 많지 않은 상태였다. 특히 해외 조선 관련 업체들과의 교섭이나 납기 관리 등의 경험자가 드물었다. 덕분에 그는 현대에 스카우트되면서 젊은 나이에 부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되었다. 당시 정회장은 출범 초기의 현대조선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거의 조선소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젊은 황부장의 의욕적이고 성실한 모습을 지켜보고 많은 신뢰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정회장의 이런 기대는 간부회의에서 구체화되었다.
“앞으로 이번 수주받은 선박 건조와 공기 관리는 모두 황부장이 주관을 하도록 해. 그리고 위의 임원들은 황부장을 지원하란 말이야. 섭섭하게들 생각할 필요 없어. 실무 경험이 많은 친구가 여기 황부장이니까.”

2014년 현재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2014년 현재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느닷없이 선배들을 제치고 선박 건조의 현장 총책을 맡게 된 황부장은 이후 배를 다 만들 때까지 밤낮 없이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하지만 아무리 현장 경험이 있다 하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업무를 책임지고 배를 만들어본 경험도 없었던 데다 애초에 계약상의 인도 날짜 자체가 맞추기 힘든 무리한 것이었다. 황부장을 비롯하여 모든 직원들이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배는 납기 날짜까지 만들어지지 못했다. 이제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거액의 지연 배상금이 배 값에서 빠져나가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정회장은 황부장과 현장에서 밤낮을 함께 지내며 그의 불같은 작업독려가 시작되었다. 아울러 달라진 게 있었다. 황부장을 대할 때마다 정회장의 입에서는 ‘병신 같은 거, 나가 죽어’라는 말이 수시로 나오게 된 것이다. 그는 술회했다.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현대에 얼마나 큰 손해를 끼쳤나, 그리고 그런 소문이 다른 선주들한테 알려지면 앞으로 회사의 수주에 어떤 악영향을 미칠까를 생각하면 정말 회장님 말씀대로 딱 죽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그때 죽어 버리면 배는 더 늦어 질 것이고 하루라도 더 늦으면 늦을수록 손해가 엄청나게 커진다고 생각하니 죽을 수도 없더군요.”

인도 기일은 지연됐지만 이런 노력 덕분에 배는 오래지 않아 하자 없이 선주에게 인도되었다. 납기 지연에 따른 배상은 당연히 물어내야 했다. 그리고 황부장은 현대를 떠날 준비를 했다.
“현대조선은 물론 이제 한국의 조선업계에선 이미 버린 몸이라고 생각하니까 막막하더군요. 그래서 마산 본가에 있는 형한테 내려가 농사나 지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정회장은 그를 내쫓기는 커녕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를 승진시켜주었던 것이다. 덕분에 그는 누구보다 빨리 이사가 됐고 곧 이어 전무가 되어 해외 핵심 지점인 유럽 본부장이라는 중책을 맞게 되었다. ‘병신 같은 놈’이라고 질책을 하며 그를 몰아 부쳤지만, 정회장 역시 그가 얼마만큼 최선을 다했나를, 그리고 그가 얼마나 성실하고 유능한 재목인가를 간파했던 것이다.
“회장님은 내게 단순한 회사의 상사가 아닙니다. 나는 그분과 회사를 위해서라면 내 모든 죽을 힘을 다해도 여한이 없습니다.”
그렇게 정회장은 그를 확실한 자기 사람으로 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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