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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줌마, 김치 좀 주세요… 한 접시에 9000원입니다

입력 : 2014.08.16 07:28

'김치=공짜'라는 인식을 깨다… 식당들의 반기
김치, 돈 받고 판다 - 일부 한식당·외국계 레스토랑… "최고의 재료로 제값 받겠다"… 생산자 이름 표기, 맛으로 승부
구색 메뉴 아닌 '요리' 돼야 - 공짜 김치에 質 기대하긴 무리… 손님들 손 안대 쓰레기로 낭비… 돈을 내야 식당도 긴장하고… 고객도 당당히 맛 논할 수 있어
김치 경쟁력에 도움될 수도 - 低價의 중국産 물량 공세에 '김치 종주국' 위상 흔들려…
日 김치 시장 발빠른 성장엔… '有料 김치 문화의 힘' 분석도

'글 쓰는 요리사'로 유명한 박찬일씨가 최근 서울 마포구에 술집 '몽로(夢路)'를 열었다. A4 용지 두 장 분량의 간략한 메뉴판 윗부분에 '신기한' 요리가 올라와 있다. '오이소박이 by 박승자'. 김치를 돈 받고 파는 것이다. 옆에 적힌 가격을 보면 신기하다 못해 대담하다 싶다. 9000원. 오이소박이 한 줄이 백반 한 그릇보다 비싸다. 그래도 새 식당을 재미 삼아 찾는 손님들의 호기심 덕분인지 하루에 10그릇 이상 팔린다. '돈 받는 김치가 있더라'는 소문에 김치 구경 좀 하자며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도 있다고 한다.

지난 11일 만난 박찬일씨는 "우리 김치가 제값을 못 받아 몰락의 길을 가고 있다는 생각에 오기로 시작했다"고 했다. "김치를 돈 받고 파느냐는 항의를 일부 받기는 했지만, 자존심을 걸고 만드는 이의 이름을 메뉴에 일부러 박고 최고의 재료를 써서 판다."

단독 요리로 돈을 받고 파는 김치들. 왼쪽부터 웨스틴조선 일식당 스시조의 조선호텔김치(64g, 3000원), 한식당 봉피양의 프리마 김치(170g, 3000원), 샤오룽바오 전문점 딘타이펑의 대만식 오이김치(5500원), 서교동 술집 몽로의 오이소박이(9000원). / 신정선 기자
단독 요리로 돈을 받고 파는 김치들. 왼쪽부터 웨스틴조선 일식당 스시조의 조선호텔김치(64g, 3000원), 한식당 봉피양의 프리마 김치(170g, 3000원), 샤오룽바오 전문점 딘타이펑의 대만식 오이김치(5500원), 서교동 술집 몽로의 오이소박이(9000원). / 신정선 기자

◇누가 김치를 공짜라고 했나

'김치=공짜'라는 한국의 식(食)문화에 과감한 도전장을 던지는 식당이 늘고 있다. 밥값에 무조건 포함되고, 무한 리필까지 당연시됐던 김치의 조용한 '독립운동'이다. 공짜로 내는 김치에서 질을 기대하기는 무리다. 재료비가 적게 들어가게 되고, 맛과 태생이 불분명해지면서 고객에게 외면당하다 재활용 끝에 음식 쓰레기로 망가지는 악순환을 막겠다는 의지의 소산이다. 무료 김치는 따지고 보면 공짜가 아니다. 무료 반찬이 음식점 측에 안기는 비용 부담은 다른 메뉴로 전가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발언권이다. 한 접시에 3000원이라도 일단 돈을 내면 소비자는 당당히 맛이 없다고 항의한다. 내놓는 식당에서도 긴장하고 만들어 팔지 않을 수 없다. 1990년대 초반에야 김치를 먹기 시작한 일본이 연간 8억3000만달러(22만t)에 이르는 김치 시장을 빠르게 확보하게 된 것도 제값 받고 제대로 만들어 내놓는 유료(有料) 김치 문화의 힘이 뒷받침됐다는 분석도 있다.

널리 알려진 외식업체 중에서 일찌감치 김치 독립운동을 시작한 곳은 최고급 한우 음식점인 벽제갈비와 한식당 봉피양이다. 두 곳은 벽제외식산업개발의 대표 브랜드로, 2011년부터 모든 직영점에서 한 그릇(170g)에 3000원으로 김치를 팔기 시작했다. '프리마 김치'라는 이름으로 포장 판매도 하는데, 맨입에 먹어도 짜지 않을 정도로 염도가 낮다. 김영환 벽제외식산업개발 회장은 지난 12일 "흔히 한식은 싸고 좋은 게 좋다고 여기는데, 정말 좋은 것은 쌀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좋은 재료로 만들어 제값에 팔아 김치의 위상을 되찾아 보겠다"고 했다. 김 회장은 2020년 도쿄올림픽 개막에 맞춰 롯폰기에 개업할 한식당에서도 프리마 김치를 판매할 예정이다.

전통 있는 한식당인 한일관에서도 보쌈김치가 값을 따로 매긴 단품 요리다. 기본 반찬으로 배추김치가 나오는데도 보쌈김치(8000원)를 따로 주문하는 고객이 꾸준하다.

한식당뿐 아니라 외국계 레스토랑에서도 유료 김치가 인기다. 대만계 샤오룽바오 전문점인 딘타이펑은 명동중앙점 등 6개 매장에서 대만식 오이김치인 라웨이황과를 판다. 딘타이펑 측은 "적정한 가격을 책정하면 다른 메뉴 값을 올리지 않아도 되고, 자칫 쓰레기로 낭비되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라웨이황과는 구색에 맞춘 메뉴가 아니라 대표 인기 요리다. 최근 2년 새 매출이 2배로 늘었다. 크기에 따라 3500원(小)과 5500원(中)으로 나뉜다. 오이를 고추기름에 절였는데, 느끼하지 않게 아삭거린다.

특급 호텔에도 있다. 서울 웨스틴조선의 일식당 스시조에서는 한 접시(64g)에 3000원이다. 신세계백화점에서 판매 중인 '조선호텔 김치'다. 벽제갈비의 프리마 김치처럼 짜지 않게 만든 김치로, 5도 냉장고에서 하루 절여 내놓는다. 이희종 스시조 지배인은 "고정 고객 중에 스시를 먹으면서 김치를 찾는 손님이 적지 않다"고 했다.

돈 받는 김치에 대한 음식 전문가의 전망은 엇갈린다. 식당 평가서 '블루리본'의 김은조 편집장은 "김치는 당연히 공짜여야 한다는 소비자 저항이 강해 모든 식당이 도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음식평론가 황교익씨는 "김치를 새롭게 보는 교육 효과가 충분히 있다"고 했다. "공짜로 내놓는 메뉴다 보니 식당에서 김치 맛에 신경을 쓰기 어렵다. 소비자도 젓가락질을 하지 않는다. 제대로 된 김치를 내려고 하는 고심이 김치를 살리는 방법이 될 수 있다."

▶ 한식당 한일관에서 단품 요리로 파는 보쌈김치(8000원).
▶ 한식당 한일관에서 단품 요리로 파는 보쌈김치(8000원).

◇중국 김치 공습에 '종주국' 위상 흔들리는데

외식업계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김치가 저가 물량 공세를 퍼붓는 중국의 맹공으로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나라 김치 수출은 지난해 8920만달러로 전년보다 16% 줄었다. 반면 중국산 김치 수입은 같은 기간 6% 늘어 1억1774만달러였다(한국무역협회 집계). 지난해 수입한 모든 김치가 중국산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연내 한·중 FTA를 앞두고 있다. 현재 중국산 김치는 1㎏에 600원 정도. 국산 김치의 5분의 1이다. FTA로 관세가 사라지거나 낮아지면 더 싸진다. 공짜 김치만 찾다가는 어느 식당에서도 한국 김치는 찾아보기 어렵게 될 지경이다. 유료 김치의 등장은 중국 김치에 흔들리는 한국 김치의 미래를 재고해볼 계기다.

최근 영국 일간지 가디언도 이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가디언은 '김치가 종주국인 한국에서 위기에 처해 있다(South Korea's national dish is in crisis in its country of origin)'는 기사에서 중국산 수입 김치와 소비 하락 등을 위기의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탄식만 할 일은 아니다. 가디언은 "지난해 김치를 포함해 영국이 수입한 한국 음식이 2012년에 비해 135% 늘었다"며 "김치가 영국인에게 점점 친숙해지고 있다"고 썼다. 김치 담그는 법까지 자세하게 소개했다. 당시 가디언이 취재한 음식 컨설팅 업체 온고푸드커뮤니케이션의 최지아 대표는 "양(量)으로 중국을 앞설 수 없으면, 안전하고 깊이 있는 맛으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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