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8.14 08:53 | 수정 : 2014.08.14 10:17

몽골제국 이야기(中)

1. 칭기스칸이 탄생하고 성장한 몽골고원

몽골에는 특별시에 해당하는「울란바토르」와 21개주(아이막:aymag)가 있다. 이중 동북쪽의「헨티」주가 바로 칭기스칸이 태어나고 세력을 모아 세계제국을 건설한 발원지다. 헨티주는 면적 8만㎢로 우리나라보다 약간 작으나 인구는 7만2천명에 불과하다. 주도는「온드르항」으로, 지난해 말부터 이름을「칭기스칸市」로 바꿨다. 헨티주에는 群에 해당하는 솜(sum)이 18개가 있는데 이중 북동쪽끝 러시아와 경계에 있는「다달솜」이 칭기스칸이 태어나고 성장한 곳이다.

칭기스칸이 태어나고 자란 곳은 과연 어떤 곳일까. 그에 대해 생각하고 생각할수록 그곳을 직접 보고싶은 마음 역시 커졌다. 그래서 찌는 듯한 더위 속에 다시 몽골을 찾았다.

다달솜을 방문하려면 먼저 울란바토르에서 칭기스칸시까지 330㎞를 달려야한다. 포장도로지만 비포장과 다름없어 휴식시간을 포함하여 7시간이 걸렸다. 이어서 다달솜까지는 275㎞의 비포장 초원길로, 휴식시간을 포함해서 11시간 걸렸다. 오후1시에 출발하여 다음날 아침 7시까지 밤을 꼬박 지새우며 총 18시간의 강행군 이었다. 일반 차량으로는 어림도 없다. 웬만한 물속과 뻘판을 지날 수 있는 특수 RV차량이 필요하고, 사고·고장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적어도 2대 이상이 워키토키로 교신하면서 가야 한다. 동북쪽 러시아 국경쪽으로 갈수록 숲은 울창하고 강물은 맑아졌다. 가는 중에 몽골의 3대 강인 톨강, 헤를렌강, 오논강을 모두 만났다.
몽골지도(위)와 칭기스칸시 입구(아래). 붉은색으로 표시한 부분이 헨티주다.
몽골지도(위)와 칭기스칸시 입구(아래). 붉은색으로 표시한 부분이 헨티주다.
2. 테무진의 탄생과 아버지의 죽음

몽골제국의 창시자이며 초대 대칸은 ‘칭기스칸’이다. 그는 미미한 세력이었던 고원동부 주변부족을 통합하여「전몽골칸국」을 세웠다. 이어 메르키트, 타타르, 케레이트, 나이만 등 강성한 이웃 몽골부족을 차례로 정복하여 몽골고원을 장악하고 마침내「대몽골국」을 출범시켰다. 이에 그치지 않고 유라시아 전역에 걸친 역사적인 대원정에 나서 세계 제국을 건설했다. 그가 있었기에 몽골제국이 존재했고, 몽골제국으로 인해 세계는 통합과 교류라는 역사상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됐다.「세계화」는 이미 그때 시작된 셈이다. 그런 위대한 칭기스칸이지만 300년간의 청나라 지배와 러시아 영향력하에 있던 시대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1960년대 이후에야 비로소 재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1995년 미국의 워싱턴포스트지는 새 밀레니엄을 앞두고 지난 1000년간 가장 중요한 인물로 칭기스칸을 선정했다. 그의 고향을 돌아보면서 그의 시대를 다시 떠올려 보았다.

「몽골비사」는 몽골인들의 조상과 건국과정에 대해 몽골어로 기록된 방대한 초기문헌이다. 주인공은 ‘테무진’(후에 칭기스칸)이다. 일찍이 부친을 잃고 황량한 초원에 버려졌던 그가 어떻게 외로움과 굶주림과 위험을 이겨내고 약탈과 보복이 횡횡하는 유목민의 근원지 몽골고원을 통일한 후 정복전쟁을 통해 대몽골제국을 건설했는지, 그 과정을 그리고 있다.

몽골의 한 부족 ‘보르지기드’의 부족장 ‘예수게이 바아타르’는 메르키트족의 ‘칠레두’가 신부를 데려오는 길을 습격해서 신부를 빼앗아 버리는데 이 신부가 칭기스칸의 어머니 ‘후엘룬 카툰’이다. 1162년 예수게이와 후엘룬 사이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예수게이는 그가 사로잡은 타타르장수 이름을 따서 테무진이라 이름지었다. 그 장소가 오논강변의「델리운 볼닥」이다.

테무진이 아홉 살이 되자 예수게이는 후엘룬의 친정인 옹기라트족 마을에 가서 ‘부르테’라는 처녀와 결혼시킨 후 풍습에 따라 테무진을 처가에 남겨두고 돌아오다 타타르족 게르에서 독이 든 음식을 먹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곧 숨졌다.
칭기스칸 탄생지(위·1962년 지정)와 칭기스칸 탄생 후 목욕한 냉천(아래).
칭기스칸 탄생지(위·1962년 지정)와 칭기스칸 탄생 후 목욕한 냉천(아래).
3. 테무진에게 닥친 시련과 불굴의 투혼

예수게이가 죽자 그 통치하에 있던 몽골부족은 후엘룬과 테무진을 비롯한 어린 자식들만 버려둔 채 다른 목초지로 이동해 테무진 일가는 몰락한다. 이때부터 여장부 후엘룬은 어린 자식들을 홀로 기르면서 초원에서 생존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테무진은 이복형 ‘베르테크’를 살해하고 가장으로서 일가가 초원에서 자리를 잡도록 한다. 그러나 장래를 우려한 몽골족 일파(타이치우트)가 다시 공격했다. 테무진은 포로가 되어 수년간 처참한 노예생활을 하다 천신만고 끝에 탈출했다. 우여곡절 끝에 가족과 재회한 테무진은「부르칸 산」남쪽으로 옮겨가 어렵게 생활을 이어가다 어느날 전 재산인 말 여덟마리를 도둑맞았다. 테무진은 즉시 잃어버린 말을 찾아 정처 없이 나섰고 그 과정에서 ‘보르추’를 만나 함께 힘을 합해 말을 되찾았다. 테무진이 찾은 말 중 일부를 나누어 주겠다고 하자 보르추는 “나는 좋은 동무에게 도움이 되겠다고 왔다. 무슨 전리품이라고 내가 갖겠는가?”라고 답했다. 이후 둘은 평생 동지가 되었다.
칭기스칸과 보르추가 만난 오논강변(위)과 칭기스칸이 피신한 부르칸산(아래).
칭기스칸과 보르추가 만난 오논강변(위)과 칭기스칸이 피신한 부르칸산(아래).
테무진은 자리를 잡자 헤를렌강을 따라 내려가 아홉 살때 정혼한 부르테를 찾아 돌아왔고 세력도 늘어갔다. 그러나 이런 안정도 잠시. 과거 예수게이에게 후엘룬 신부를 빼앗겼던 초원의 강자 메르키트족이 원한의 보복 공격을 해 이번에는 예수게이의 며느리이자 테무진의 부인인 부르테를 납치해갔다. 테무진은 부르칸산으로 도주했다.

기운을 차려 돌아온 테무진은 부족을 재건하면서 아버지 예수게이와 안다(형제맹약)관계였던 케레이트의 ‘토그릴칸’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토그릴칸은 쾌히 응하고 자신의 2만 군사와 안다인 자다란의 ‘자무카’ 2만 군사로 메르키트를 협공하여 와해시켰다. 테무진은 부르테를 되찾았다. 부르테는 납치되어 잉태된 것으로 추정되는 ‘주치’(손님이란 뜻)란 아들을 낳았다.

4. 전몽골 칸 → 대몽골국 대칸 → 대몽골제국의 출범

테무진은 토그릴칸, 자무카라는 동맹군과 보르추, 젤메, 무칼리 등 동지들의 도움으로 분열된 나라를 다시 통합한 후 1189년 귀족회의인 쿠릴타이에서「전 몽골국」의 칸으로 추대되어 칭기스칸이란 칭호를 받았다. 테무진은 28세로 전 몽골족을 부흥시켰고, 이것이 대몽골국의 기초였다.

칭기스칸은 전체 몽골부족통일을 위해 매진했다. 1190년「달란 발주트」평원에서 자무카와 최초의 전쟁을 벌였으나 자무카가 승리했다. 그러나 자무카는 동족 약탈로 신망을 잃어 오히려 많은 부족이 달아나 칭기스칸 진영에 합류했다. 1196년에는 토그릴칸과 연합하여 금나라 군대에 쫓긴 타타르 부족을 섬멸했다. 이때 금나라는 토그릴에 ‘옹칸’이란 칭호를 내렸다.

1201년 자무카는 타타르, 메르키트의 잔존세력과 나이만을 자기세력으로 편입해 칭기스칸, 옹칸과 더불어 초원을 나누어 지배했으나 헤를렌강 하구「쿠이텐」전쟁에서 패배해 세력을 잃었다. 1202년 칭기스칸과 옹칸은 메르키트, 타타르를 이어 정복했다. 1203년 케레이트 옹칸의 아들 셍굼은 자무카와 결탁하여 칭기스칸에 대항했으나 결국 멸망했으며 이듬해 칭기스칸은 나이만까지 정복하여 메르키트, 타타르, 케레이트, 나이만 등 주요 소칸국과 휘하의 부족들을 모두 복속시키게 되었다. 드디어 1206년 오논강 상류에서 역사적인 대쿠릴타이가 열리고 칭기스칸은 대몽골국의 대칸으로 추대 됐다.
자무카와 대결했던 달란 발주트 평원(왼쪽)과 다달솜, 칭기스칸 비석 앞의 필자.
자무카와 대결했던 달란 발주트 평원(왼쪽)과 다달솜, 칭기스칸 비석 앞의 필자.
이는 그 후 세계사에 불어 닥친 대폭풍의 서막에 지나지 않았다. 몽골제국은 불과 25년만에 로마가 400년간 정복한 땅보다 훨씬 넓은 땅을 지배했다. 이런 이유로 칭기스칸은 뛰어난 군사지도자인 동시에 정치인으로, 천년의 역사위인으로 꼽힌다. 칭기스칸 군대는 상상을 초월하는 기동력과 전 세계에 걸친 역참과 정보네트워크를 통한 강력한 군사력으로 적을 압도해 전쟁에서 승리했다. 이것은 오늘날 현대 경영의 키워드로 꼽히기도 한다.

칭기스칸은 시대를 앞서 보고, 남의 말을 경청하며, 철저히 능력본위로 인재를 쓰고, 동지를 아끼고, 법과 원칙을 앞장서 지키고, 생각과 종교의 자유를 존중했다. 한마디로 진정한 리더, 그 자체 였다. 이러한 탁월한 리더쉽이 「대제국-몽골」의 탄생을 가능케한 기본중의 기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