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8.13 11:08

정주영의 사람 키우는 법(上)

정회장을 처음 보면 결코 미남이거나 자상한 인상을 주는 그런 모습은 아니다.

그 세대 사람으로는 드물게 180㎝에 이르는 큰 키에 소박하다 못해 다소 무뚝뚝하고 투박한 전형적인 시골사람의 풍모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회사 간부회의를 주재할 때는 집요하게 몰두하는 자세와 핵심을 찌르는 질문으로 분위기를 긴장시킨다. 그리고 그는 성격이 매우 급한 편에 속한다. 보고내용이 산만하거나 필요없이 길어지면 바로 결론부분을 제시할 것을 채근한다. 철저한 현장맨인 그가 현장에서 문제를 발견하여 불호령이 내려지면 현장 분위기는 순식간에 일종의 공포 분위기가 감돌았다. 어떤 현장 책임자는 그가 무서워서 그 자리를 면피하고 보려는 속셈에서 일단 줄행랑을 쳤다는 일화도 있다. 그러나 그의 불같은 질타와 호령은 얼마 가지 않아서 언제 그랬느냐는 듯 사그러 든다는 것을 그를 오래 보좌했던 사람들은 알고 있다. 정회장이 주위에 사람을 키우고 아끼는 데는 평소 그가 풍기는 분위기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면모가 있다.

1979년이었다. 그 해 정주영 회장과 전경련은 북한에 편향되어 한국에 외교적으로 비우호적인 자세를 보였던 비동맹국인 인도, 나이지리아 등과의 관계 개선에 정부를 대신해서 많은 공을 들였다. 세상에서 가장 바쁜 최고 경영자라고 할 수 있는 정 회장은 이런 일이 생기면 열 일을 제치고 정부를 대신해서 앞장 섰다. 그래서 일정만 해도 자그마치 2주가 넘는 기간 동안 인도, 나이지리아에 머물며 그 나라의 대통령, 경제각료, 기업인들 등 지도급 인사들을 만났다. 정부의 외교적인 접근이 먹혀 들지 않는 이들에게 정치 외교 얘기는 쏙 빼고 경제 협력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접근하는 전략이었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이미 널리 알려진 현대그룹의 총수이고 한국 대기업 모임인 전경련 회장 정주영은 어느 나라에서건 장관이나 심지어는 국가 원수 보다도 더 환영을 받는 편이었다.

그러나 성과와는 별도로 일정의 중반 쯤에 해당하는 나이지리아에 이르러 한국 경제 사절단 일행은 거의 녹초가 되어 있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진행되는 정부 부처 방문과 회의, 상담에다 더위와의 싸움도 보통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한 것은 항상 일에 욕심이 넘치는 정회장이 출발전의 계획된 것보다 더 많은 인사들을 만나고 행사를 추가시킨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과의 면담 자료를 새로 만들어 내야 되고, 연설문도 새로 작성하는 등 엄청난 준비 업무가 따라야 했고 이런 일들은 필자의 몫으로 행사가 없는 밤에 해야 했다. 많은 경우 여러 날 밤을 새우기가 다반사였다.
정주영 전경련 회장(왼쪽에서 두번째)등 4개 경제단체장이 1984년 10월 13일 오전 세종문화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남북교역 및 경제협력에 관한 합동성명을 발표하고 있다./조선일보DB
정주영 전경련 회장(왼쪽에서 두번째)등 4개 경제단체장이 1984년 10월 13일 오전 세종문화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남북교역 및 경제협력에 관한 합동성명을 발표하고 있다./조선일보DB

일정이 끝나 정회장과 대표단이 귀국한 뒤에도 현지 기관들과 후속사항 협의 등 잔무들을 처리하고 며칠 늦게 귀국했다. 2주가 넘는 긴장 상태와 격무, 그리고 잠을 못 잔 것, 스무 시간 가까운 비행시간, 거기에 시차까지 겹쳐 서울에 도착했을 때는 심신이 거의 파김치가 된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정회장은 본인 스스로 일을 놓고 쉬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필자는 그의 호출에 대비해 귀국 다음날 바로 출근을 해야만 했다. 출근은 했으나 컨디션은 그야말로 비몽사몽 말이 아니었다. 수면 부족으로 머리가 어질어질한데다 누적된 피로로 인해 몸은 땅속으로 가라앉을 것처럼 무겁기만 했다.

당시 전경련 사무국은 삼일로 빌딩을 쓰고 있었다. 인터폰이 울렸다. 28 층 회장실에서 정회장이 찾았다.
“박군, 언제 도착했어?”
“어제 저녁에 도착했습니다.”
“그래? 그러면 말이야 이번에 만나고 온 사람들한테 각각 내 이름으로 편지를 써.”
“아, 인사 편지 말씀입니까?”
“그래. 자네 우리 만난 사람들 명단 가지고 있지? 한 사람도 빼놓지 말도록 신경을 써서 작성 해. 그리고 의례적인 인사말만 쓰지 말고, 그 사람들하고 나눴던 얘기 내용 메모 가지고 있지? 그걸 가지고 구체적인 후속 업무 제안까지 포함해서 우리측 계획도 이야기하고.”
“알겠습니다. ”
“그리고 말야, 내일 아침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니까 그때 가지고 와서 내 싸인 받도록 해.”

정회장이 지시한 편지란 단순히 시간 내 만나줘서 고맙고, 이야기가 유익했고, 두 나라 사이의 이해 증진에 도움이 되었고, 베풀어준 후의에 보답할 수 있도록 한국을 방문해 주길 바란다는 식의 형식적이고 획일적인 인사 편지가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과 나눴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경제협력 사업을 위한 실제적인 방안을 함께 모색하고, 인적 교류나 향후 추진 계획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되기 때문에 일사천리로 써 내려갈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방문 했던 사람이 어디 한 둘인가. 인도의 레디 대통령, 나이지리아의 부하리 석유 장관까지 포함하여 양국의 경제부처 장관들, 기업인 등 자그마치 30명이 넘는 인사들에게 하나하나 상황에 맞춰서, 그것도 하루 저녁 안에 편지를 쓸 일을 생각 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게다가 몸과 마음은 어질어질 정신이 없는 상태고, 편지는 영문판과 정회장 결재를 위한 국문판 두 가지로 준비해야 했다. 지금처럼 컴퓨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일일이 타자기로 그 수많은 편지를 그토록 짧은 시간에 정회장 기대에 맞게 작성해 낸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것도 상황과 전후 좌우 면담 내용을 알고 있는 것은 필자 뿐인데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처지도 안되었다.

그러나 정회장 앞에서는 ‘불가능합니다’ ‘못하겠습니다’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는 말을 감히 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저 ‘알겠습니다’ 할 수밖에. 그러나 수화기를 내려놓는 내 마음은 무겁기 그지 없었다. ‘이 일을 어떻게 하나?’ 한참 동안 고민에 빠져 있던 나는 이윽고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다. 일종의 묘수를 발견한 것이다.

편지를 세 부분으로 나눴다. 그것은 보통 의례적인 내용이 포함되게 마련인 편지 앞부분의 인사와 다음날 정회장이 서명할 끝부분만 영문으로 타자하여 먼저 준비하고 따로따로 구체적인 내용이 들어가야 되기 때문에 많은 구상과 기안 노력, 시간이 필요한 중간 부분은 우선 그 내용을 정회장이 결재할 수 있도록 우리말로 요약 작성하고 이 부분 영문은 정회장 서명이 들어가는 부분이 아니니까 하루 이틀 시간을 두고 작성하여 먼저의 앞부분과 정회장의 서명을 받아 놓은 끝 부분을 합하여 발송하는 요령이었다.

필자는 일단 집으로 작업장을 옮겼다. 아무래도 밤새워 일하자면 사무실보다는 집이 편했고, 집에는 여벌의 타자기가 있었다. 그리고 정회장이 볼 우리말 부분을 깔끔하게 정서해 줄 조수 역할을 할 집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밤새 정회장이 접촉한 인사들의 명단을 앞에 놓고 하나 하나 편지를 작성해 나갔다. 물론 중간의 주요 내용은 남겨둔 채 앞부분 첫 장과 정회장이 직접 서명 할 뒷장의 인사 부분이었다. 그리고 구체적인 사안 별 내용이 포함되는 가운데 부분은 각각 면담 내용을 기초로 우리말로 내용을 요약해 정회장이 검토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밤을 꼬박 세워 겨우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정회장 앞에 밤새 타자 쳐놓은 영문 앞부분과 서명부분이 있는 뒷장과 추후에 영어로 채울 중간의 본론 부분 편지 내용의 우리말 요약을 정회장 앞에 내놓았다. 필자가 내민 것을 검토하던 정회장은 이내 가운데 본문 부분이 우리말 요약만 있고 영문 부분이 없다는 것을 발견해 냈다. 필자는 그것이 물리적인 한계 내에서 최선이었다는 것을 설명할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정회장이 갑자기 껄껄대며 웃기 시작했다. 나는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필자가 예상했던 것은 꾸중을 듣되 얼마 정도의 꾸중을 듣느냐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자네, 밤새 한잠도 못 잤지?”
“예.”
“내 그럴 줄 알면서 일부러 시켰어. 자네가 어떡하나 보려구 말이야. 잘했어. 아주 잘했어. 이제 끝장은 내가 사인을 할거고 중간은 여기 우리말 내용대로 영어로 작성해서 보내면 되겠구만.”

아울러 중요한 수신인에게 보내는 본문 내용 요약을 검토한 후 몇가지 추가할 사항들을 지시했다. 그리고 정회장은 아주 밝은 표정으로 편지 마지막장 한장 한장에 정성들여 자필 서명을 해주었다. 그리고 서명이 된 편지들을 필자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박군, 내가 왜 이렇게 일을 시키는 줄 아는가?”
“…….”
나는 마땅한 대답이 생각나지 않았다.

“이봐, 사람이 일을 하는 데는 물리적인 한계라는 게 있어. 하지만 난 이렇게 생각해. 10일 걸릴 일이 있다고 할 때 20일 기간을 주면 일을 두 배 더 잘하는가? 그렇진 않아. 또 5일만 주면 엄청나게 부실해지나? 그것도 아니지. 문제는 말이야 남들하고 똑같이 해서는 남들보다 결코 앞설 수가 없다는 거야. 남들 열흘 걸릴 일이라면 2-3일에 해치우고, 남들 두달 걸릴 일이라면 한 달에 끝내야 앞설 수 있는 거야.”
구체적인 사항이 담긴 본문 내용을 영문화해서 편지는 다음날 발송되었다.

(하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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