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8.02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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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석조 국제부 기자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한류(韓流)에 빠져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현지인 친구가 한밤중에 불쑥 연락을 해왔다. 그는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의 메시지에서 화난 얼굴의 이모티콘과 함께 "KBS '개그콘서트'의 새 코너인 '만수르(지금은 '억수르'로 변경)'가 이슬람의 선지자 무함마드를 모독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평소 한국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동영상 전문 사이트 유튜브에서 챙겨본다.

무슬림인 이 친구가 지적한 부분은 '억수르'에서 이슬람의 선지자 무함마드의 이름을 '무험하다드'라고 패러디해 부르는 대목이었다. 이 코너의 주역인 개그맨 송준근씨는 아랍 최고의 부호(富豪)인 자신의 자녀답지 않게 행동하며 반항적인 모습을 보이는 아들을 향해 "아이고, 우리 사랑하는 아들 무험하다드"라고 말한다. 아랍의 한 사춘기 아들상(像)을 희화화하기 위해 아랍인에게 친숙한 이름인 무함마드에 그 발음과 비슷하면서 해당 캐릭터의 성격과도 맞는 '무엄하다'라는 단어를 합쳐 쓴 것이다. 이를 알아챈 이집트 친구는 "선지자 무함마드의 이름으로 장난을 치는 것은 이슬람에서 금기 중의 금기"라면서 "다른 무슬림들이 볼까 걱정된다"고 했다. 지난해 카이로에 취재를 갔을 때 친해져 그동안 SNS로 연락해 온 이집트 청년의 우려 섞인 충고였다.

'억수르'처럼 비(非)이슬람권에서 이슬람의 금기를 건드린 사례는 적지 않다. 하지만 그 대부분은 예상치 못할 정도로 격렬한 무슬림의 반발에 직면해야 했다. 2012년 이집트계 미국인이 제작한 코미디 단편영화 '무슬림의 순진함'은 무함마드를 비하한다는 논란에 휩싸여 중동·아프리카·동남아·유럽 등 세계 전역 무슬림의 대규모 시위를 촉발시켰다. 이 시위 과정에서 리비아 주재 미국 대사가 피살됐다. 덴마크 일간지 율란트 포스텐이 2005년 무함마드가 머리에 돌돌 말아 얹은 천 뭉치인 터번을 폭탄으로 풍자해 그린 만평 역시 수많은 사상자를 낳는 폭력 시위를 불렀다. 이 언론사는 폭탄 테러 위협에 오랫동안 시달렸다. 인도계 영국인 살만 루시디는 1988년 소설 '악마의 시(詩)'에서 악마를 뜻하면서 독일어로는 개(hund)를 연상시키는 영어 단어 '마하운드(mahound)'를 무함마드의 지칭어로 썼다는 이유로 이란의 최고지도자 호메이니가 암살 대상으로 공개 지목했다.

무슬림은 종교가 곧 삶 그 자체이기 때문에 이를 모욕하는 것에 극도의 예민함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이슬람 눈치를 왜 봐야 하느냐' '나쁜 의도는 없지 않으냐'고 항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종교와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최소한의 선(線)은 지켜주는 것이 문화를 다루는 예능인의 소양이 아닐까.

'억수르'는 애초 코너명을 아랍에미리트 부총리의 이름인 '만수르'로 내걸었다가 우리 석유 사업에 차질이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 들어와서 코너 이름을 변경했다고 한다. 만약 세계 16억 인구의 무슬림 사이에 '무험하다드 문제'가 퍼지기라도 한다면 석유 사업 정도는 문제도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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