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프채 아닙니다 '셀카봉'입니다

입력 : 2014.07.30 05:33

전세계적으로 부는 셀카봉 열풍
막대 끝에 휴대폰 매달아 찍어… 젊은층 비롯해 50~60대도 선호

셀카봉으로 사진 찍기를 즐기는 지구촌 곳곳의 사람들.
셀카봉으로 사진 찍기를 즐기는 지구촌 곳곳의 사람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셀피스틱닷컴 제공
남성 전문 구두 편집숍을 운영하는 강재영 '유니페어' 대표는 최근 이탈리아 밀라노 출장을 갔다가 깜짝 놀랐다고 했다. 관광 명소마다 마주치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기다란 막대를 손에 쥔 채 독특한 자세로 사진을 찍고 있었기 때문이다. 휴대폰을 막대 끝에 매달아 놓고 높이 쳐든 채 그걸 바라보며 '셀카'를 찍는 식이었다. "여기서도 저기서도 다들 그 막대기를 빼들고 사진을 찍더라고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요. 정말이지 희한한 풍경이었어요."

강 대표가 말한 그 '막대기'는 다름 아닌 요즘 '셀카봉'이라고 불리는 물건. 각종 온라인 쇼핑몰에서 불티나게 팔려 나간다는 화제의 제품이다. 이 막대기는 작게 접을 수도 있고 길게 펼 수도 있다. 끝엔 거치대가 달렸다. 셀프 타이머를 설정해 놓은 휴대전화를 이 거치대에 끼워넣고 막대기를 길게 늘이면 혼자서도 넓은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가격은 8000원~1만5000원 정도다.

'셀카' 도구라고 해서 젊은 사람들의 전유물처럼 생각하면 오산이다. 온라인 쇼핑몰 G마켓 측은 "작년 말부터 나오기 시작한 상품인데 최근 판매율이 200% 가까이 뛰었고, 50~60대 구매율도 무척 높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셀카봉'을 가장 쉽게 많이 목격할 수 있는 장소 중 하나는 산(山) 정상이다. 40~60대 남성 등산객이 산봉우리에 올라 산을 배경으로 '등정 기념사진'을 찍는 장면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등산 동호회 온라인 커뮤니티에 이미 '셀카봉 사진 올리기'라는 코너가 등장했을 정도다. 등산 마니아 김준현(43)씨는 "배경을 널찍하게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일반 셀카보다 만족도가 높을 뿐 아니라, 남에게 굳이 찍어달라고 말하지 않아도 되니 여러모로 편하다"고 했다.

셀카봉의 인기는 최근엔 전 세계적인 유행으로 번지는 추세다. 아시아·유럽·미국·중동에서도 애용된다. 외국에선 흔히 '셀피 스틱(selfie stick)', '모노포드(monopod)'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셀피(selfie)는 '자가촬영사진(self portrait photograph)'의 줄임말. 2013년 옥스퍼드 대학 출판사가 '올해의 단어'로 선정하기도 했다. 최근엔 셀카봉으로 찍은 사진을 뜻하는 소위 '셀피 스틱 포토'를 누구나 자발적으로 올릴 수 있는 커뮤니티 웹 사이트가 속속 등장할 정도로 인기가 뜨겁다. 도구를 활용한 '셀카'가 어느덧 전 세계적인 '놀이'가 된 것이다.

사진가 조세현씨는 셀카봉 유행을 이렇게 분석했다. "셀카봉으로 스스로를 찍는 행위는 '멀리서 나를 보는 것'인 동시에 '내가 원하는 나'를 보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내 얼굴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 자신뿐이다. 누구에게 부탁해도 어느 정도는 불만족스럽기 마련이다. 우리는 어느덧 '내가 원하는 내 모습'만을 보여주고 노출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셀카는 결국 지극히 개인적이면서 사회적인 행위이고, 셀카봉은 그 극단의 유희를 돕는 도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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