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7.25 05:49
강경희 사회정책부장
강경희 사회정책부장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어제(24일)로 100일을 맞았다. 지난 100일간 우리 사회는 304명의 아깝디아까운 희생을 치르고 얼마나 배우고, 깨치고, 바뀌었을까.

4월 16일, 476명을 태운 배를 바다 한가운데서 뒤집은 건 부패와 비리의 사슬이었다. 돈에 눈이 팔려 법과 안전규정을 어기고 사람을 짐짝 취급하면서 화물을 신줏단지 모시듯 실어간 게 직접 원인이었다. 부패의 정점에는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과 그 일가, 그들과 유착된 세력이 있었다. 그로 인해 억장 무너지는 일을 겪었지만 사회를 갉아먹는 '악성 종양'을 뿌리까지 도려내고 단죄한다면 건강한 사회로 거듭날 수 있으리라는 일말의 희망은 있었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 이후 100일이 지나면서 희망은 보이질 않고 실망만 하게 된다. 우리 사회가 이번 사태를 수습할 실력이 없다는 자괴감, 타성과 무능에 젖어 건성 일하는 '만성 질환'이 만연해 헛돈 쓰고 헛수고를 엄청 했다는 무력감 때문이다.

40여 일 전 변사 신고를 받고 출동한 순천경찰서의 현장 감식은 과학수사계 경위까지 출동했다는데 건성이었다. 시신 옆 천가방에 걸려 있던 지팡이와 가방 안에 있던 매실도 수거하지 않았다. 대충 챙겨 간 유류품 목록이나마 보고받은 담당 검사와 부장검사조차 눈여겨보질 않았다. 시골 경찰, 지방 검사도 최소한 자신이 맡은 변사체가 '누구일까, 왜 그 노인은 그런 곳에서 죽게 됐을까' 궁금해하며 한 번쯤 단서를 짚어보는 공감 능력은 발휘해야 하는 것 아닌가. 순천은 매일 변사체가 감당 못할 만큼 쏟아져 들어오는 곳도 아니다. 순천경찰서에 접수되는 변사 건수는 1년 통틀어 130건(2012년 기준) 정도다. 한 달에 10건 남짓이다.

유병언이 숨어 있는 통나무 별장을 수색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국산 막장 드라마 몇 편 본 주부도 그 정도 상상력은 발휘한다. 막장 드라마의 악인들이 흔히 갖고 있는 비밀 통로와 벽 뒤의 비밀 금고 같은 것 말이다. 하물며 그 어떤 막장 드라마보다 더 기막힌 현실을 만들어낸 유병언을 쫓으면서 보이는 데만 뒤지고 돌아서는 순진무구한 수사력을 어찌 믿으란 말인가.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세월호 사고 소식을 처음 접했던 전남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의 건성건성 일하는 죄도 심각했다. 2월에 근무한 영상에서 한 해경은 골프 퍼팅 연습하느라 운항 선박을 지켜보지 않았고, 혼자 근무하면서 엎드려 자거나 스마트폰을 보느라 근무는 뒷전인 경우도 있었다.

건성건성 일하는 건 주인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눈치껏 월급만큼만 일하고, 아니면 월급 받는 것보다 적게 일하는 게 좋다는 태도다. 그런 생각은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폄하하는 행위다. 역설적이게도 진도관제센터를 지키던 말단 해경, 유병언 시신을 현장 감식한 시골 경찰, 습관처럼 부검신청서에 서명한 지방 검사 등은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가를 뒤늦게 깨달았을 것이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자신이 지금 서 있는 곳에서 주인의식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라는 뜻이다. 높은 자리, 낮은 자리 할 것 없이 이 땅에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이 많지 않다면 유병언 같은 대도(大盜)를 잡기는커녕, 좀도둑으로부터도 우리 아이들을 지켜내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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