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7.24 09:25 | 수정 : 2014.07.24 16:42
2002년 12월 북한에서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희귀한 초대형 사기사건이 발생하였다. 김정일의 비자금을 마련하던 대외보험총국에 대 낮에 김정일의 아들로 가장한 인물이 찾아와 미화 3만달러를 사취해 달아난 것이다. 대외보험총국은 당시 중앙당 조직행정부 1부부장이었던 장성택이 직접 관장하던 기관이다.

범인은 인민보안성 산하 131(원자력)지도국의 간부부원이었다. 북한에서 원자력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은 방사능 피해 등 치명적인 피해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싶어한다. 그러려면 뇌물을 제공해야 한다. 뇌물로 쓸 돈이 없었던 범인은 자기 얼굴을 잘 분장하면 김정일과 비슷해질 수 있다고 판단, 치밀하게 연구해 사기극을 벌였다.

범인은 자기 부인을 대외보험총국 총국장을 찾아가게 했다. 부인은 총국장에게 간 뒤 ‘중앙당 서기실 80호(김정일의 가계를 보는 부서)에서 전화가 왔다’며 자기 남편과 총국장을 연결시켜줬다. 범인은 전화통화에서 총국장에게 ‘오후 2시에 중앙당에서 대외보험총국의 사업을 파악하기 위해 나갈 것”이라고 통보하였다.

이어 범인은 중앙당 청사 앞에 서있는 고급 승용차(당시 216번호를 단 벤츠) 운전사에게 100달러를 주면서 자기를 약 2km 떨어진 대외보험총국청사 앞에 데려다 달라고 했다. 대외보험총국은 중앙당 근처 러시아 대사관 뒤쪽에 있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북한군 1112군부대를 시찰하면서 수행 중인 군부지도자들과 함께 웃고 있다. 이 사진은 2006년 11월4일 공개한 것이다./조선중앙통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북한군 1112군부대를 시찰하면서 수행 중인 군부지도자들과 함께 웃고 있다. 이 사진은 2006년 11월4일 공개한 것이다./조선중앙통신
그는 당시 김정일과 수행 고위간부들이 현지시찰을 나갈 때마다 입던 연한 회색빛의 동복을 착용, 고위 신분이라는 인상을 주도록 위장하였다. 오후 2시에 청사 앞에 나와 기다리던 대외보험총국장과 당비서는 먼저 전화 통지를 받은 뒤라 고급 승용차에서 내리는 그에게 깍듯이 인사를 하며 정중히 맞이하였다. 총국장과 당비서가 마중 나와 맞이하자 청사 보초를 서던 보안원도 경례를 하면서 신분증 확인을 하지 않았다.

외부인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대외보험총국에 무난히 들어간 그는 약 2시간동안 대외보험총국 청사 곳곳을 다니며 사업 지도를 하고 총국장 방에 들어가 잘못된 부분에 대한 지적을 한 뒤 갑자기 ‘당에서 돈이 필요하니 미화 3만달러를 가져오라’고 총국장에게 지시하였다. 그의 외모가 너무나도 김정일과 비슷하다보니 총국장은 아무런 의심 없이 부기실 금고를 열고 3만달러를 가져다 주었다.

돈을 받고 난 범인은 당비서에게 ‘저녁 6시에 모든 직원을 회의실에 대기시켜 놓으라. 내가 직접 김정일 비서에게 보고하고 다시 내려와 김정일비서의 이름으로 감사의 뜻을 전하겠다’고 하였다.

총국장과 당비서는 너무도 황송하여 그를 깍듯이 바래주고 저녁 6시에 총국의 전체 직원들을 회의실에 모이게 했다. 그런데 6시 30분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도 없자 그때서야 의심이 생기고 당황한 총국장은 낮에 있은 일을 장성택에게 보고하였다.

장성택은 어이가 없어하며 즉시 대외보험총국에 내려와 욕설을 하며 꾸지람을 했다. 중앙당에서 돈이 필요하면 몇 명의 사람이 내려오고 자기도 전화를 했을 것이 아니냐고 하면서 총국장과 당비서를 머저리라고 몰아세웠다.

즉시 사건을 보고받은 김정일은 우리 가문의 명예와 관련된 문제이니 절대 소문내지 말고 수사를 하여 무조건 잡으라고 불호령을 내렸다.

북한 정권수립 기념일인 9.9절을 일주일 앞둔 개성의 외각지역. 금안골노동당사에 주민과 학생들이 집회준비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조선일보DB
북한 정권수립 기념일인 9.9절을 일주일 앞둔 개성의 외각지역. 금안골노동당사에 주민과 학생들이 집회준비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조선일보DB
북한에서 김정일 가문에 대하여 특급비밀로 하고 설사 알고 있어도 사실을 누설하면 정치범관리소에 잡아가니 누구도 말을 못하고, 누구도 알지 못하는 현실을 이용한 아주 대담하면서도 주도 세밀한 사건으로 일반 주민들이 알면 안 되는 사건이므로 보위부와 보안부, 검찰기관에서는 공개는 하지 못하고 은밀히 사건수사를 진행하였다.

그런데 다행인 것은 대외보험총국이 보유하고 있는 모든 외화의 화페 번호를 기록하여 보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수사기관들은 북한 전역의 외화상점들과 식당 등 외화를 쓰는 기관들에 사기당한 화폐의 번호를 통지하고 그 화페를 지불하는 사람은 무조건 신고하라는 지시를 하였다.

이후 수사 진척 없이 4개월이 지난 2003년 4월 말, 평양시 보통강구역에 있는 경흥외화상점에 한 여성이 문제의 100달러짜리 화폐를 들고 나타났다. 그녀는 상품을 사려다가 판매원의 신고로 보위부에 체포됐다.

당초 범인은 범행 직후 부인에게 ‘사건수사가 끝날 때까지 절대로 돈을 쓰지 말고 보관해놓으라’고 했지만 부인은 아들이 학교에서 봄철 체육대회를 하는데 돈이 필요하게 되자 남편 몰래 400달러를 들고 나갔다. 그는 달러가 필요하다는 자기가 잘 아는 여성을 찾아가 달러를 주고 북한 화페를 받았다. 미 달러를 교환한 그 여성은 아무 영문도 모루고 외화상점에 상품을 사러갔다가 체포된 것이다. 이어 범인도 체포됐음은 물론이다.

수사 결과를 보고받은 김정일은 범인 가문을 멸족시키라는 지시를 내리었다. 이에 범인의 직계가족 뿐 아니라 팔촌까지 보위부에 체포됐다. 엄격한 통제사회라는 북한에선 이처럼 남한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희한한 범죄들이 발생하고 있다. 한 사람이 모든 권력을 쥔 경직된 사회에서 통할 수 있는, 어이 없는 범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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