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7.21 05:42
아침 10시쯤 식당은 한산했다. 늦은 아침을 드는 예순 줄 남자에게 주인 할머니가 말을 건넨다. "많이 묵고 돈 많이 벌어. 요즘 택시 벌이가 시원찮아서 하루 벌어 하루 밥 묵기도 힘들다대. 그러려니 하고 너무 속 태우지 말어. 어쩌겄는가, 그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제." 남자는 택시 기사인 모양이다. 주방으로 들어가 밥통에서 밥을 더 퍼 온다. 집처럼 천천히 편안하게 먹고 일어나면서 인사한다. "잘 묵고 가네." 손님·주인이 스스럼 없이 말을 놓는다.

▶지난주 여름휴가 길에 여수 유진식당을 찾았다. 차림은 딱 한 가지다. 둘이 앉기 바쁘게 꽃 그림 찍힌 커다란 양은 쟁반째 백반 상이 나온다. 한눈에 집 밥 같은 손맛이 보인다. 짭짤하게 묵은 깍두기는 지금도 아삭거린다. 젓갈 진한 배추김치, 수더분한 열무김치, 새콤달콤 오이냉채, 무채, 콩나물에 씨알 섭섭지 않은 조기 구이 네 마리가 올랐다. 한 사람에 두 마리여서 한참을 발라 먹는다.

[만물상] 한 끼 3000원 백반 집
▶풋고추에 곁들인 된장은 짭조름한 것이 맛 깊게 구수하다. 요즘 드문 집 된장이다. "고추가 뻣뻣하고 보기보다 맵네." 둘이서 하는 이야기를 들었던지 할머니가 풋고추를 한 주먹 쥐고 와 놓아준다. "요거 내가 키운 건디 안 맵고 맛있어." 정말 부드럽고 싱싱하다. 여덟 찬에 콩나물국, 된장까지 모두 할머니가 차리고 담갔다. 소박해도 맛깔스러운 한 끼가 3000원이다. 식당 연 16년 전 값 그대로다.

▶일흔네 살 정순심 할머니는 큰딸이 다섯 살 때 남편을 앞세웠다. 건설 현장 따라다니는 밥집을 하며 두 딸을 키웠다. 다른 집보다 싸게 맛있게 정성껏 했더니 소문이 나 일이 끊이지 않았다. 그렇게 24년을 모은 돈으로 화장동 주택가 큰길가에 아담한 이층집 짓고 유진식당을 차렸다. 식재료는 새벽 도매시장에서 사 오고 웬만한 채소는 텃밭에서 가꿔 댄다. 거드는 아주머니 한 사람 두고 아침 여섯 시부터 저녁 일곱 시까지 문을 연다.

▶손님은 주로 운전기사, 환경미화원, 일용 근로자다. 어찌 알고 여행자들도 찾아온다. 기사 밥집으로 삼은 버스 회사 사장이 할머니에게 "쉬는 날을 만들어보시라"고 해도 기사들 생각하면 명절도 쉴 수 없다. 할머니는 어렵던 시절 동네 사람들이 도와줬던 일을 잊지 못한다. 물정 모르는 과수댁 대신 영세민 등록도 해줬다. 할머니는 "배 곯아 봐서 배고픈 사람 마음 안다"고 했다. 잘 먹고 나서는데 할머니가 문밖까지 쫓아 나와 불렀다. 입구에 둔 공짜 자판기에서 "커피 한잔 뽑아 먹고 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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