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7.11 04:33
월드컵이 열리면 축구팬의 한 사람으로서 행복하기 그지없지만, 정형-재활의학과 의사로서는 마냥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선수들이 몸싸움을 하다 넘어질 때면 ‘저러다 무릎 인대 다칠텐데…’ 하는 생각이 먼저 들기 때문이다. 일종의 직업병(?)이다. 세계청소년축구대회나 올림픽 대표팀 팀 닥터 또는 주치의를 맡았던 경험으로 미뤄 선수들의 부상이 눈에 보이는 듯해서 가슴을 쓸어내릴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일반인들은 국가대표 운동선수라고 하면 최고의 몸을 갖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막상 상태를 확인해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

문제는 이런 상태로 A매치나 월드컵, 올림픽 경기에 출전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국가대표팀에 선발됐다면 그 분야에서는 최고의 기량을 갖고 있다고 봐야 하지만, 부상이 있으면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상당수 선수들은 부상을 무릅쓰고 경기에 출전한다. 언론에는 ‘부상 투혼’이라는 말로 묘사된다. 결과가 나쁘면 ‘컨디션이 좋지 않아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해명한다. 하지만 선수의 몸 상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선수의 부진은 예견할 수 있다. 팀 경기라면 팀의 성적도 좋게 나오기 어렵다.

냉정하게 말하면, 오래된 부상이면 국가대표 선발 과정에서 제외시켜야 하고, 부상을 숨기고 대표 팀에 선발됐다고 해도 경기 출전을 막아야 한다. 대표 팀의 성적 이전에 해당 선수의 운명이 달린 문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상 투혼은 그럴 듯하게 보일지는 몰라도 의학적으로는 최악이다. 자칫하면 선수 생명이 끝날 수도 있고, 평생 후유증에 시달릴 수도 있다. 그래서 감독의 최종 결정에서 팀 닥터, 주치의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의사로서 고민이 여기에 있다.
프로농구 선수에게 "무릎 수술 받고 3개월 쉬어야 한다"고 하자...
국제 시합에 팀 닥터로서 참가했을 때 경험이다. 한 선수는 허리디스크가 심해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하고, 의무실에 와서 매일 치료만 받았다. 뿐만 아니라 무릎이나 발목에 이상이 있는 또 다른 선수들도 있었다. 이런 몸 상태로 어떻게 국제 경기까지 왔는지 물어보았더니 “아픈 것을 숨겼다”고 했다. 월드컵이나 올림픽은 최고 선수들이 기량을 겨루는 엘리트 스포츠 선수들의 무대이다. 운동선수들에게 이들 경기에 출전하는 것, 그리고 메달 획득이나 우승은 수년~수십년 간 흘린 땀에 대한 보상이다.

부상 때문에 이런 경기에 출전을 못한다고 하면 어떨까? 국가 대표로서의 명예도 있지만, 성적에 따라 미래의 몸값이 달라질 수 있다. 현역 프로선수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런 찬스를 부상 때문에 날려버리기는 너무나 아깝다. 그래서 상당수 선수들이 '속인다'. 감독이나 코치에게 아무 이상이 없다고 말한다. 언론에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의료진을 속이는 것은 쉽지 않다.

본의 아니게 고자질도 해야 하는 팀 닥터

팀 닥터 또는 주치의는 선수들의 부상 예방과 치료는 물론 감독이나 코치가 베스트 선수들로 팀을 구성할 수 있게 하는 의학적 자문을 해준다. 그러다 보니 부상을 숨기고 싶어 하는 선수들의 간절한(?) 소망에도 불구하고 본의 아니게 그 사실을 고자질해야 하는 상황도 종종 만난다. 팀 닥터나 주치의가 감독에게 모든 사실을 다 이야기해버리면 부상 선수는 출전 기회가 없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가급적 있는 그대로를 코치진에 이야기해준다. 자칫 무리하게 출전했다가 선수의 몸이 더 망가질 수 있을 뿐 아니라, 국가대표 팀 성적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부상 투혼으로 팀 승리에 기여했으나, 경기 후 아파서 신음하는 선수를 지켜보는 것은 견디기 힘든 고통이다. 따라서 의사는 스포츠를 통한 국위 선양보다 대표 팀 선수 한 명 한 명의 건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는 모든 종목의 감독들이 경기에 앞서 선수를 선발할 때 팀 닥터 또는 주치의의 의견이 더 많이 반영하길 바랄뿐이다.

유명 프로 농구선수를 진료한 적이 있다. 그 선수는 착지 도중 무릎 인대가 파열돼 인대재건술을 받아야 할 상황이었다. 선수에게 수술을 받으면 3개월간 운동을 쉬어야 한다고 말하자, 고민하던 그는 "수술 받지 않겠다"고 했다. 그 대신 인대 강화 주사만 맞고 운동을 계속하겠다고 했다. 수술 받고 재활 치료를 받고 출전을 못하면, 팀 성적에 미치는 영향, 자신의 몸값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에 아픈 사실을 숨겨야 하는 선수의 심정이 오죽하랴 싶었지만, 그런 몸 상태로 시합을 강행하면 무릎이 망가질 게 뻔하다고 생각하니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스포츠 팬의 한 사람으로서 한국 팀이 국제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의사로서는 선수들이 다치지 않고, 부상이 악화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더 강하다. 팀 닥터나 주치의는 ‘애국심’과 ‘의사로서의 냉정한 판단’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누가 알아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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