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7.10 05:39
김행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
김행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
등산길, 유독 많이 들리는 새소리가 있다. 속칭 '홀딱벗고 새' 소리다. 이 새가 울면 등산길 남자들은 걸쭉한 농담을 한마디씩 걸친다. "홀딱벗고, 홀딱벗고" 후렴까지 넣어가면서. 여자들은 민망하지만 따라 웃을 수밖에 없다. 요놈의 새가 진짜 "홀딱벗고, 홀딱벗고" 하고 울어대는 통이다.

'솔바람 기행팀'과 함께 강원도 최북단 금강산 건봉사로 답사를 다녀왔다. 이번 GOP 사고가 난 바로 그곳이다. 불과 이십여일 전에 다녀왔으니 삶과 죽음의 경계가 있기나 한 것인지 모르겠다. 건봉사 북쪽 '해탈의 길'을 따라 군사분계선 안에 위치한 등공대에 올라가니 극락이 따로 없다. 폭풍같이 휘몰아치는 솔바람에 혹여 날아갈까 굵은 소나무를 꽉 붙잡고 솔바람 샤워를 했다.

등공대는 신라 원성왕 3년인 787년, 1만일 동안(27년 5개월) 기도하시던 스님들이 허공으로 떠올라 육신의 허물은 땅에 떨어뜨리고 맑고 밝은 정신만 등공했다는 곳. 대부분 불자인지라 "부처님 가피로 하늘을 날아볼까"라며 날갯짓도 하고, 소설 '폭풍의 언덕'에 나오는 캐서린처럼 "머리 풀어헤치고 사랑하는 이름 '히스클리프'를 크게 외쳐 보자"라며 소리도 질러댔다.

그때 갑자기 바람을 가르는 소프라노가 울렸다. "홀딱벗고, 홀딱벗고". 어찌 들으면 올드 팝송 '리듬 오브 더 레인(Rhythm of the rain)'의 첫 4음절과 여지없이 똑같다. '이 깊은 산 속에도 저 새가?' 하는 생각에 모두 박장대소했다.

동행자 한 분이 점잖게 말씀하셨다. "이 새의 이름은 '검은등뻐꾸기'로 스님이 환생하신 겁니다. 홀딱 벗고, 마음 가다듬고, 아상도 던져 버리고, 망상도 지워 버리고, 욕심도, 성냄도, 어리석음도 다 벗고 정신 차려 정진하라는 뜻이지요." 한데 어쩌랴! 중생들은 새소리를 들으며 엉뚱한 생각만 하니!

[일사일언] 홀딱벗고 새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에 취임한 뒤로는 이런 생각도 한다. "저 새, 성희롱 죄에 걸리는 거 아니야?" 마르크스의 말대로 존재가 의식을 결정하나 보다. 어쨌거나 그저 울 뿐인 새소리를 "홀딱벗고"로 듣는 사람들이 죄인이다.


김행 |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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